▲ 손학규 지사(왼쪽)와 박근혜 대표가 14일 행정도시법 후속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도시 건설 특별법’(행정도시법)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이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경기지사의 연대설이 불거지고 있다.
행정도시법 통과 과정에서 ‘찬성’ 입장을 표방해왔던 박 대표와 손 지사. 반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이들 야권의 차기 대권 주자들이 행정도시법 통과를 계기로 합종연횡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행정도시 건설 철회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수도 지키기 투쟁위원회’(수투위) 소속 반대파 일부가 ‘친 이명박 계열’로 분류되면서 박 대표와의 대리전 양상까지 띠고 있다는 게 정가의 중론. 그런데 최근 ‘박 대표-손 지사 연대설’이 흘러나오면서 ‘제2의 DJP연합’으로 가시화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손 연대설’이 ‘이명박 왕따’를 노린 포석이라는 관측까지 덧붙여지고 있다. 이 같은 ‘연대설’이 불거진 가운데 14일엔 박대표와 손 지사가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만나 행정도시법 후속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박-손 연대설’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우선 이 시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손’의 입장에선 당연히 견제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칫하면 ‘이명박 대세론’이 확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행정도시법 통과 과정에서 ‘박-손’과 ‘이’의 견해가 명확하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박-손’이 후속대책 마련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반면 ‘이’는 행정도시 건설 자체를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 이렇게 해서 암묵적으로 ‘박-손’은 ‘한 배’를 타고 있는 형국이 됐다.
박 대표는 지난 4일 한 강연에서 “(행정도시법 통과 이후) 후속대책으로 과천에 대한 대책이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수도 서울의 청사진 못지않게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1백90개의 정부산하기관의 지방이전을 놓고 또 다시 중요한 협상이 있을 텐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는 “행정도시법의 위헌성을 검토하겠다”는 반대파의 견해를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수투위에 속한 반대파의 ‘행정도시법 철회’ 주장을 무시하겠다는 ‘박 대표의 고집’이 또 한번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반대파의 선봉인 이재오 의원은 “당이 매우 잘 못 가고 있다. DR(김덕룡 전 원내대표) 사퇴 때 박 대표 중심으로 당을 추스르라고 한 것은 박 대표에게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었다”며 “모든 책임은 당 대표에게 있는 것이다. 다만 원내전략부재 책임을 지고 DR이 사퇴한 마당에 박 대표마저 자리를 내놓으면 사태 수습이 힘들어지니 당을 추스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표는 마치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박 대표를 맹공격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도 “당 대표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을 ‘반박’으로 분류하다보면 나중엔 박 대표 혼자 남게 되고 전부가 반박이 된다”고 경고하며 “원내대표 경선도 위기를 극복하고 야당성을 회복할 것이냐의 문제였는데, 친박-반박 구도로 나눠졌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박 대표측은 반대파와 이명박 시장의 ‘보이지 않는 끈끈한 공조’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박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박 대표는 (반대파가) 이명박 시장과 끈이 닿아 자신을 흔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며 “그분(반대파)들의 행보가 상당히 그렇게 비치고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미국을 방문중이던 손 지사도 지난 10일 현지 특파원들과 만나 “(여야간 행정도시법 통과) 합의안은 존중하고 후속대책 마련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와 마찬가지로 당내 일각의 행정도시법 반대 투쟁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행정도시법이 통과되기 이전부터 손 지사는 행정도시 건설을 찬성, 곤경에 처해 있던 박 대표를 ‘측면 지원’한 모양새를 띠었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서 ‘박-손 연대설’이 흘러나왔다.
지난 11일, 친박으로 분류되는 강재섭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박 대표로선 한숨 돌린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당 내홍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당 안팎에선 ‘친 이명박’으로 분류되는 이재오 홍준표 정두언 이상득 의원 등과의 화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오히려 박 대표와 ‘박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친 이명박 계열이 ‘마이 웨이’를 선택할 개연성이 더 커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박 대표와 반대파 일부의 관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진단했다.
최근 들어서는 반대파 일부가 주축이 된 ‘이명박 신당’이 뜰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수투위는 ‘수도분할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칭)를 결성키로 한 상태. 지난 8일엔 수투위 조직을 정비, 박성범 이재오 안상수 전재희 김문수 박세일 김광원 의원을 공동대표로 선임하고, 이재오 의원을 상임대표로 추대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신당설’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박 대표-손 지사 연대설’도 탄력을 받고 있다. 정가에 회자되는 ‘박-손 연대설’의 요체는 이렇다. 박 대표와 손 지사가 연대해 이 시장의 지지 세력을 견제한다는 것. 지난 97년 DJP연합이 그 모델이라는 얘기다. 만약 ‘박-손 연대’가 성사된다면 박 대표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TK(대구 경북)와 친위그룹인 김무성 사무총장 등의 지지로 세가 확대되고 있는 PK(부산 경남) 그리고 손 지사의 기반은 경기 지역 일부 의원들이 ‘박-손 연대’의 주축을 형성할 것이라는 ‘설’이다. 이는 박 대표가 리더십을 확보하는데 유리하며, 국민 지지율이 낮은 손 지사에게도 불리할 게 없다는 논리다.
더군다나 여야가 공히 “개헌 논의는 2006년 하반기가 적당하다”고 밝히고 있어, 개헌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졌다. 따라서 4년 중임제 개헌이 성사될 경우 ‘박-손 연대=정-부통령 후보’ 구도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설사 개헌이 성사되지 않는다 해도 앞서 ‘박-손 연대=97년 DJP연합’도 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행정도시법 통과 이후 박 대표와 손 지사의 ‘암묵적인 공조’가 끈끈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반대파가 행정도시 건설에 반대하는 것도 박 대표와 손 지사를 더 가깝게 하는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손 연대설’에 고개를 젓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표가 대표로 있는 동안 흔들릴 수 있는 변수는 얼마든지 있고, 과거사 문제도 남아 있다. 손 지사가 벌써부터 연대를 모색할 이유는 없다”며 ‘박-손 연대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막판에 가서 대통령과 총리, 당권 등을 놓고 역할 분담을 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박-손 연대’가 당장 가시화되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그럴 개연성은 잠재돼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