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장관(왼쪽)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계기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결국 황 장관이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며 사퇴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황교안 장관과 그의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채택된 채동욱 전 총장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목청을 높여 싸운 적은 없지만, 처음부터 데면데면했던 두 사람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황 장관은 사법연수원 13기, 채 전 총장은 14기로 한 기수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만큼 일선에 있을 때도 각자 일하느라 바빴을 것”이라며 “서로 가까워질 이유도, 기회도 없었으니 장관과 총장이 되어서도 그 간극을 좁히기는 쉽지 않았고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그렇다고 시작이 나쁘지는 않았다. 당시 서울고검장이었던 채 전 총장을 한상대 전 총장 후임으로 얼핏 조언했던 이가 황 장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채 전 총장은 당시 ‘검란(檢亂)’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실상 좌천돼 서울고검장으로 와 있었던 만큼 그가 한상대 총장 후임이 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채 전 총장도 스스로도 곧 옷을 벗고 나갈 생각에 짐까지 싸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는 3배수에 채 전 총장과 김진태 총장,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을 함께 포함시켜 검찰 안팎을 놀라게 했다. “설마 (채 전 총장을) 진짜로 시키려고 3배수 안에 포함시켰겠느냐. 다른 사람을 시키기 위한 들러리가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막판에 청와대가 채 전 총장을 최종 낙점했을 때도 “예상 밖의 결과”라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왜 채 전 총장을 선택했을까. 여기서 황 장관 역할론이 거론된다. 황 장관은 지난 2013년 3월 현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후 추천위가 검찰총장 후보를 3배수 추천하자 3명의 후보 중 “채 전 총장이 그나마 낫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세 사람이 모두 대구·경북(TK) 출신이 아닌 데다, 정권에 대한 로열티도 검증이 안 됐으니 청와대는 세 후보를 모두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며 “그렇다고 실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우리 편’을 앉힐 수는 없으니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이 무엇이냐를 고민했을 테고 그 과정에서 ‘채 전 총장이 그나마 낫다’는 황 장관의 조언이 반영됐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황 장관과 채 전 총장의 불편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다. 채 전 총장 취임 후 곧바로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이 꾸려지면서 허니문 기간조차 없이 두 사람 사이는 곧바로 초긴장 상태가 됐다. 특히 2013년 5월 말부터 채 전 총장과 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 했지만, 황 장관이 이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무엇보다 황 장관이 2주 동안 이 사건을 틀어쥐고 있으면서 황 장관과 채 전 총장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데도 단 한 번을 만나거나 전화통화조차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당시 길태기 대검 차장이나 송찬엽 대검 공안부장 등이 황 장관에게 불려가거나, 국민수 법무부 차관이 황 장관의 입장을 대검 수뇌부에 전달한 방식으로 소통이 이뤄졌다.
그러다 같은 해 6월 11일 당시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한 언론을 통해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지시가 명확한데 황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강력 반발하면서 황 장관과 채 전 총장 갈등은 공식화됐다. 법무부가 검찰과 정면충돌하는 것으로 비치자 황 장관은 그제서야 마지 못 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원 전 원장을 불구속기소 하는 것에 동의했고, 수사팀은 사흘 뒤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원 전 원장이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국정원 심리전단을 얼마나 조직적으로 움직였는지가 상세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검찰 인사는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 황 장관이 그때 온몸으로 막으려 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막무가내로 법리 적용이 잘못됐다면서 2주 동안 재검토만을 계속 주문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답답한 노릇이었다”고 떠올렸다.
이 인사는 특히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서 원 전 원장을 기소한 채 전 총장이 사실은 박근혜 정부를 오히려 도와준 측면이 있었다”며 “검찰이 그렇게 결론을 내지 않았으면 아마도 야당을 중심으로 대선 불복 운동이 거세게 제기됐을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고 강조했다.
채 전 총장 등은 이 같은 내용을 별도의 보고서로 만들어 청와대에 전달할 계획도 세웠지만 결국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문고리권력 3인방 중 한 사람과 어떻게 연결할 방법을 찾아서 그 사람을 통해서 보고서를 VIP(박근혜 대통령)께 전달하려고 했지만 결국 못했다”며 “다음날 만나기로 했는데 그쪽에서 안 나왔다”고 말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청와대는 TK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됐고 이후 모든 인사에서 이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황 장관과 채 전 총장 사이에도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불안한 침묵 속에서 3개월이 흘러갔다.
그러다 같은 해 9월 6일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 혼외아들 의혹을 보도하면서 현 정부 주류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채 전 총장은 “혼외자는 사실무근”이라며 버텼지만, 황 장관은 의혹이 제기되고 일주일 만에 법무부 차원에서 채 전 총장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채 전 총장은 “조직 수장으로 단 하루라도 감찰 조사를 받으면서 일선 검찰 지휘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이후 열흘 동안 혼외자 의혹과 관련한 진실공방은 지난하게 계속됐다.
채 전 총장은 이후 사표가 수리되고, 혼외자 의혹은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방의 어느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수양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지난해 연말 서초동에서 잠시 돈 적이 있지만 실제로 채 전 총장을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야당에선 채 전 총장을 8~10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참고인으로 채택했지만 그가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현재로선 그렇게 커 보이진 않는다.
누구는 채 전 총장이 정치에 뜻이 있다면 참고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해서 황 장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그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에 성완종 리스트까지 나왔는데도 여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이 국면에서 채 전 총장이 청문회에 출석해 뭐든 폭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황 장관과 채 전 총장, 두 사람 악연의 고리는 조용히 끊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