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이) ‘문재인의 사람’이라고 낙인찍힐까 꺼리는 것 같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 의원실 보좌관이 문재인 대표의 당직 후임 인선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한 말이다. 지난 5월 22일 양승조 사무총장을 비롯해 김현미 비서실장, 강기정 정책위의장, 김영록 수석대변인, 유은혜 대변인 등 원내 정무직 당직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재·보궐 참패 책임론으로 혁신을 위해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의지였다. 일괄 사퇴는 혁신을 주도할 김상곤 혁신위 출범을 앞두고 이뤄졌다. 하지만 혁신위 출범 직전까지 문 대표는 마땅한 후임지도부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상 지도부가 ‘공회전’ 중이었던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양승조 사무총장 등 원내 정무직 당직자들이 재·보궐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했지만 당직 인선이 미뤄지고 있다. 양 사무총장(왼쪽)과 문재인 대표가 6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앞서의 보좌관은 “사표를 냈는데 아직 사표 수리도 안 됐다. 사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직을 유지한다 해도 성과를 내기가 힘든 상황이다. (지역구 관리 등을 위해) 우리는 빨리 사표처리가 됐으면 한다. 그런데 맡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 사무총장만 바뀌고 나머지는 그대로 갈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면서도 “혁신위가 출범했으니 혁신위에 발맞출 인사들로 바뀌지 않겠느냐”라고 예상했다.
한 새정치민주연합 고위 당직자도 혁신위가 구성되기 전 당직 인선에 대해 “주요 당직을 맡은 의원들은 사퇴를 기다리고 있는데 후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총선 1년 남겨놓고 재보궐 선거도 패배한 마당에 당직을 맡을 의원들이 어디 있겠나. 후임 당직 자리를 추천받은 몇몇 의원들도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도부 당직 교체가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친노 위주의 혁신위 구성 논란이 당직 인선에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지난 10일 새정치민주연합은 김상곤 혁신위원장을 필두로 당내·당외 인사 각각 5명씩 총 10명의 위원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사들이 친노계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선 최인호 부산 사하갑 지역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비서를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부대변인과 국내언론비서관 등을 거쳤다. 김근태계인 우원식 국회의원과 박우섭 인천남구청장도 범친노계로 분류된다. 문재인 대표가 대통령 후보였을 때 그를 적극 지지한 조국 서울대 교수도 문 대표가 이번에 혁신위원장으로 고려했을 만큼 친노와 가까운 인사다.
문 대표 입장에서는 당내 의원들이 당직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친노 혁신위에 대한 비판론을 잠재울 만한 인물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친노 위주의 혁신위 비판을 막기 위해서는 비노계 인사를 선발해야 하지만 해당 인사가 문 대표를 포함해 혁신위와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도 고심해야 한다.
문 대표의 노력에도 혁신위에 친노 인사 논란이 일면서 비노계의 불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혁신위와 지도부에 거물급 인사가 없다는 점에서도 100일(김상곤 위원장이 100일을 혁신기한으로 못 박음) 뒤 본격적인 지도부 교체론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의 고위당직자는 “혁신위 구성 전부터 당사에서는 7층이 혁신위 실무자들로 채워졌다. 이미 혁신안에 대한 실무가 시작됐다. 당에는 혁신안 연구가 많이 돼 있어 더 이상 새로운 안이 나오기도 힘들다”며 “새로워봤자 교수들 위주의 안이 추가되는 정도일 텐데, 문제는 의원들이 문재인 지도부를 그 혁신을 추진할 만한 인물들로 여기고 있느냐다. 혁신안이 나오면 비노계에서 그 안을 실행할 지도부를 다시 구성하자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정치경력이 없는 김상곤 전 교육감이 혁신위원장이 됐을 때 의원들 사이에서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분위기와도 맞물린다. 지난 11일 김상곤 위원장은 전국 시·도당 위원장들과 비공개 오찬을 가졌다. 정치권에서는 이 자리에서 혁신과 인사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눈에 띌 만한 대화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날 오찬에 참석한 계파색이 없는 한 의원은 “김 위원장은 공식적으로 했던 말을 또 했고 시·도 위원장들이 돌아가면서 저마다 ‘우리 지역이 위험하다’고 주장한 정도다. 다들 당의 위기의식에 대해 말했고 김 위원장은 듣는 쪽이었다”며 “김 위원장과 혁신위에 대해 모두가 반신반의하고 있다. 제대로 혁신이 될지 다들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라고 전했다. 전국의 ‘노회한’ 시·도당 위원장들도 김상곤의 미래에 대해 일단 유보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는 현재의 혁신위 체제에 대한 당의 회의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이 의원은 “100일 뒤 문재인 사퇴라는 최악의 카드가 나타날 가능성”에 대해 “비노계에서 그렇게 나올 위험은 항상 있다. 혁신위 구성이 대부분 친노와 386인데, 오히려 혁신해야 할 사람들이 들어가 있다. 혁신위가 제대로 혁신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한 이유”라며 “문 대표가 이번에 탕평을 할 줄 알았는데 잘 못하는 것 같다. 비노계에도 인물은 없지만 그나마 기회도 안주고 있다. 본격적으로 친노 지도부 정국으로 가는 분위기다”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