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에 오른 홍준표 의원이 혁신안을 둘러싸고 박근혜 대표와 대립하고 있다. | ||
홍 위원장은 최근 <나 돌아가고 싶다>라는 책을 펴냈다. 무능했던 아버지, 알코올 중독자였던 자형 등 과거사를 털어놓은 그는 “지난 50년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그의 최근 행보는 미래를 향한 듯하다. 현재의 단일지도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변경하는 혁신안이 발표되자, 당에서는 홍 위원장이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염두에 둔 사전포석으로 읽는 것.
지난 90년대 중반 기록적인 시청률을 올린 TV드라마 <모래시계>의 검사역 모델이기도 한 3선의 홍 위원장은 그간 ‘DJ(김대중 전 대통령) 저격수’로서 당의 특무상사 역할을 해 왔다. 그의 말마따나 궂은 일을 가리지 않고 머슴 역할을 참 많이 했다. 이른바 ‘홍삼트리오’로 불린 DJ 세 아들에 대한 비리 사건, 진승현 게이트 등은 그가 불씨를 지핀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때문에 정치적 손실도 적지 않았다.
그의 정치입문 계기도 단순했다. 그가 특수부 검사로 수사한 슬롯머신 사건으로 검찰 선배들이 줄줄이 법복을 벗게 되자, 그는 검찰 내에서 완전히 ‘왕따’가 됐다. 그래서 변호사를 개업했는데 이번에는 검사 시절 구속했던 조직폭력배들이 들고 일어났다. “애들(조직폭력배)이 검찰을 그만두자마자 집으로 전화를 걸어 ‘마누라를 없애겠다’, ‘아이들을 납치하겠다’고 하도 협박을 해서 국회의원이 되면 그런 전화가 사라질 것 같아서”가 그가 밝힌 이유다.
그런 그가 최근 박 대표와 혁신안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중이다. 박 대표가 “내 사전에는 재신임이란 없다”고 전당대회를 통한 지도부 선출 요구를 한마디로 일축하자, 그는 “박 대표 사전에는 ‘재신임’이란 단어가 낙장된 것 같다”고 받아쳤다. 또 박 대표가 “재신임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리면 (대표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배수진을 치고 나오자, 이번에는 “박 대표가 뭔가 오해하고 있다”고 받아 넘겼다.
그는 매달 일정한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들이 당직 및 공천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는 기존 개혁안에 대해서도 메스를 가했다. 책임당원의 당직 및 공천 선거권을 박탈해 버린 것. 막강한 권한을 가진 책임당원제가 도입될 경우 박 대표의 1인 독주와 사당화가 가속화되어 2007년 대권 후보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문수 이재오 박계동 의원 등 ‘반박’ 그룹의 비주류들은 박사모들이 대거 책임당원으로 등록해 박 대표 중심체제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며 책임당원제 도입을 반대해 왔다. 홍 위원장은 ‘반박’ 그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홍 위원장은 “지금 지도부를 선출하면 누가 박 대표를 이길 수 있겠느냐”면서 “지도체제 변화 등 당헌당규가 다 바뀌면 지도부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환골탈태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전대를 통한 지도부 재선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혁명위원회를 이끄는 계엄사령관의 심정으로 일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어 “혁신이란 이름으로 못할 것이 없다. 박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빅3’에다 강재섭 원내대표까지 포함해 빅4가 되든, 빅5가 되든 여러 명의 대권 후보들이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틀을 만들 것”이라면서 “갈등이 뉴스를 만든다. 혁신위는 당 대표의 자문기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주도할 실무에 비중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의 정권 창출에 방해가 되는 사람과 조직은 당 대표건, 의원이건 상관없이 칼날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홍 위원장의 당내 입지도 상당히 넓어지고 있다는 평이다. 그간 김문수 이재오 의원과 함께 ‘비주류 3인방’으로 분류됐던 그가 혁신위원장을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적 도약을 준비중이라는 것.
한나라당 한 중진의원은 “홍 위원장의 경우 기껏해야 대여 투쟁의 선봉장 역할 정도로 취급됐지만 혁신위원장을 맡은 후부터 그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며 “당 혁신을 제대로 해내면 당내 거물급 중진으로서 그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장파 한 의원은 “홍 위원장은 ‘금배지 세 번 달아봤으면 한두 번 더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의원들은 3선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해 왔다”며 “집단지도체제가 도입되면 홍 위원장이 지도부 경선에 나갈 것이고 최종목표는 서울시장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3인방의 동료이자, 나이로는 선배인 이재오 의원이 서울시장에 뜻을 품고 있다는 말에 “이 선배는 대권과 당권이 분리되면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며 “내가 3인방의 막내로서 뒤치다꺼리 많이 했으니 이번에는 선배들이 양보할 때도 됐다”고 서울시장에 대한 꿈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홍 위원장의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혁신위안에 대해 “혁신위 차원의 의견일 뿐”이라는 당내 견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혁신위가 제 2창당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가 용두사미로 끝난 뉴밀레니엄위원회와 국가혁신위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유영욱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