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철거업체 다원그룹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가 철거용역 폭력의 구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황을 누리던 1990년대 재건축시장에서 ‘적준’이란 회사는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적준은 전국 철거 물량 80% 가까이를 독점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적준은 철거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철거 하나만큼은 그 어떤 업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해냈다. 철거민에겐 저승사자 같았겠지만 건설사 입장에선 최고의 업체였던 셈이다. 한 건설사 임원은 “적준이 철거를 하면서 조폭을 동원하는 등 좀 무리했던 것은 잘 안다. 그런데 솔직히 건설사로선 철거를 빠르게 해주는 적준이 일 잘하는 회사로 생각됐다”고 털어놨다. 적준은 1994년 다원건설로 이름을 바꿨고, 2000년대 후반까지 ‘철거업계의 삼성’으로 불리며 부동의 1위를 달렸다.
1998년 천주교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12개 단체가 펴낸 <다원건설(옛 적준) 철거범죄 보고서>를 살펴보면 적준의 철거 작업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알 수 있다. 철거민들의 생생한 진술을 기반으로 작성된 보고서엔 적준이 임산부를 폭행하고, 저항하는 여성의 옷을 갈기갈기 찢은 뒤 성추행까지 자행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1~1998년까지 적준이 실시한 철거현장 31곳에서 폭력으로 인해 2명이 사망했고, 490명이 다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방화, 재산손괴 등도 무수히 발생했다. 보고서에서 김승훈 신부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백주대낮에 자행되는 불법적인 폭력에 대해 ‘이제, 그만!’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1970년생인 이금렬 전 회장이 해병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취직한 곳이 바로 철거업계를 장악한 적준이었다. 운전기사로 입사했던 이 전 회장은 남다른 운동신경을 인정받아 불과 20대 중반 나이에 철거현장 행동대장 역할을 맡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철거민들에게 이 전 회장과 그가 이끄는 적준 직원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고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했던 이유에서였다. 이 전 회장은 철거민들로부터 ‘무자비하다’라는 평을 들었지만 회사에선 승승장구하며 1998년 다원건설 대표로 취임했다. 직원으로 출발했지만 사실상 회사의 실소유주가 됐던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전 회장이 철거로만 수백억대의 돈을 모은 자산가로 소문이 나 있던 때였다.
거칠 것 없던 이 전 회장이 수사선상에 오른 것은 지난 2012년 말이다. 검찰은 다원그룹 계열사가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세무 공무원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혐의를 잡고 수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회사 압수수색 등을 통해 이 전 회장이 수년간 1000억대 회사 자금을 횡령한 정황을 포착했다.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진 이 전 회장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이 전 회장은 2013년 1월 잠적했다. 대포폰과 지인 명의로 개설된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수사진의 추적을 피하던 이 전 회장은 2013년 7월 22일 서울 상도동에서 체포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수사관들을 보고 도망을 갔다. 상당히 빨라 잡는 데 애를 먹었다. 자칫 놓칠 뻔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7월 25일 검찰은 이 전 회장을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 전 회장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다원그룹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를 확대했다. 경찰이 2012년 이 전 회장 의혹에 대해 내사하고도 별다른 혐의 없이 종결한 부분 역시 수사 대상이었다. 검찰은 이 전 회장 측근이 숨겨 둔 자금 내역 USB를 발견, 현금 45억 원이 로비에 사용됐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검찰은 서울시와 수도권 의회 전직 의원들, 재건축 담당 공무원 등을 구속했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 전 회장이 15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역대 정권 실세들과 마당발 인맥을 구축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어급이 걸려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검찰 역시 “로비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며 수사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을 비호해주던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법조계 주변에서 검찰이 이 전 회장 배후를 알고도 손을 대지 못했다는 소문만 파다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전 회장이 수배 중이던 2013년 5월경 측근들을 불러 비밀회의를 소집했던 것으로 전해져 관심을 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회장은 그동안 자신이 돈을 건넸던 유력 인사들 실명을 일일이 언급하며 리스트로 정리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이 전 회장 법적 자문을 맡았던 한 측근은 “폭로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 구명을 위한 로비 차원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면서 “이 전 회장이 여러 구설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왜 승승장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전 회장은 여러 번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번번이 빠져나가지 않았느냐. 전직 대통령 친인척의 경우 과거 일주일에 한 번 만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고 했다. 사업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기자에게 사진 파일로 보여준 해당 리스트에는 과거 총리를 지냈던 정치인, 전직 대통령 친인척, 서울시청 전직 공무원, 검찰·국세청·경찰 고위 간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사들이 빼곡히 기록돼 있었다.
이 전 회장은 앞서의 로비 리스트를 만드는 것과는 별개로 현 정권 실세들을 상대로 구명 작업도 병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전 회장은 수배 중임에도 불구하고 2013년 6월 친박계의 한 전직 의원과 직접 만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회장 지시로 작성된 로비 명단에 이름이 오른 전직 정치인과 함께 말이다. 앞서의 이 전 회장 측근은 “이 전 회장이 검찰로부터 쫓기고 있었지만 로비를 잘 하면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정치인을 통해 친박 실세를 만나 구명을 청탁했다. 그러나 ‘민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실패한 로비였지만 이 전 회장이 어떻게 처신을 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이 전 회장은 측근들과 회동을 가진 지 2개월여 만인 2013년 7월 붙잡혔다. 그러나 이 전 회장 측이 만들었다는 리스트는 증발된 상태다. 이 전 회장 측근들은 하나같이 그 존재에 대해선 인정하지만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이 전 회장이 남긴 ‘불씨’만이 화약고처럼 남아있는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비밀 장부를 만들었다는 제보가 있어서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가족들 중 누군가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 전 회장은 수사 과정에서 존재 자체에 대해 부인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의원 역시 “이 전 회장이 수배 중인 상황에서 현 정권인사를 만났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금렬 리스트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 규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