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표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제대로된 혁신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이종현 기자
최근 여의도에서 서울대 조국 교수(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행색’을 보고 놀라곤 한다.
“사진으로 보던 꽃미남 조국 교수가 아니었다. 조금 부은 얼굴에 배가 좀 나온 전형적인 이웃집 아저씨였다.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며 당의 미래에 대해 진정으로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표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김상곤 혁신위원회는 조국 교수를 영입해 낯을 세웠다. 그것도 잠시였다. 닻을 올리기도 전에 곳곳에서 파열과 고성이 오가고 있다. 과연 김상곤 위원장은 시대적 소명과 이행충돌의 현실 앞에서 혁신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일까.
“혁신위의 성공 열쇠는 문재인 대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달려 있다. 친노 패권과 비노 탄압 프레임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지난 17일 오후 여의도에서 만난 새정치연합 수도권 지역위원장의 말이다. 현재 싸움은 겉으로 친노 패권과 비노진영 간 계파갈등으로 보이지만 ‘자리를 빼앗고 차지하려는 배지전쟁’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양쪽이 결정적 공격을 할 수 없는 혁신위라는 ‘비무장지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혁신위 활동이 정점에 달할 때 양측의 생존전쟁도 본격화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 극한 전쟁을 뚫고 혁신을 이뤄내야만 한다.
앞서의 지역위원장은 “문재인 대표는 모든 사람이 혁신의 주체이면서 혁신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여기에는 문재인 대표도 예외일 수 없다. 이 말대로 김상곤호는 가장 먼저 혁신의 대상으로서 문재인 대표를 거론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실망은 문재인 대표에 대한 실망과 일치한다. 비노진영의 조롱이나 호남의 배신감 표출 때문에 문 대표가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 게 아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문재인 대표가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 상’에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지도력이 바닥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대안이 없다고 해도 민심은 아닌 쪽을 다시 쳐다보지 않는다. 이렇게 죽을 쑤는 박근혜 정권 앞에서도 “과연 문재인 대표가 대통령이었다면 이보다 더 나았을까?”라는 한숨 섞인 말도 당 안팎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혁신위 성공의 중심에 문재인 대표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한 인사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김상곤호가 문재인 대표를 금기시하는 순간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비노인사는 없을 것이다. 호남, 다선중진, 범법자 등과 같은 단어가 ‘비노탄압’으로 포장되며 끊임없이 반발할 것이다. 나를 먼저 육참골단하면 구태청산은 뒷방 쓰레기 같은 일개 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걸 놓치고 있으니 모든 게 각자 도생을 위한 목숨 건 다툼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표 입장에서 최선의 길은 무엇일까. 그로서는 다시 기회를 만들면서 동시에 친노패권 청산을 외치는 반대자들에게 혁신동참을 강제하는 전략으로 나가는 게 맞다. 친노 출신의 한 역사학자는 문 대표에게 정국 돌파의 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당 대표 경선 때의) 총선 불출마를 번복하고 부산 사상구 출마를 재선언하며 총선 패배 시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것도 하나의 돌파 전략이다. 김상곤호가 이런 요구를 하고 문 대표가 전격적으로 수용하면 호남 또는 다선 중진의 적지 출마 요청에 누가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혁신의 대상에 (문재인 대표를 포함한) 사람이 포함되지 않으면 그 혁신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혁신위 출범 뒤 지금까지의 상황은 좋지 않다. 김상곤 혁신위에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의 역사학자는 “혁신위가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았다. 구태청산과 공천개혁만을 혁신이라고 외치는 순간 김상곤호는 침몰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을 뿐 상황은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애초에 판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기다려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인내력 이외에 남을 것이 없을 듯하다”며 혁신위 앞날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혁신위가 이미 혁신의 프레임을 짜놓고 그것에 끼워 맞추기를 하는 이상 그 결과물은 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혁신위원들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혁신위원은 “문 대표가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김상곤호는 금세 좌초한다. 혁신위 회의를 했지만 아직까지 혁신의 구체적 대상에 대한 깊은 얘기가 오간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혁신위 성공 여부를 예측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라고 말했다.
김상곤 위원장에게 진심으로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김 위원장 주변에서 한때 그의 대선출마를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만큼 크게 보고 깊게 생각하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평소 모습대로라면 김 위원장은 이번 사안의 본질을 친노와 비노의 싸움이 아니라 김상곤과 문재인의 싸움으로 규정해야 한다. 그 안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안이 완성된다”라고 털어놓았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문재인 대표였다면, 또한 김상곤 혁신위원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부질없는 질문들을 던져본다.
“문재인을 살리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혁신안은 결국 문재인 대표를 죽이고 총선과 대선패배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김상곤 위원장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문재인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총선과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김 위원장에게 있다. 그 길은 문재인을 넘어서는 것이지 그를 맹목적으로 살리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며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생각해볼 때다.
전계완 정치평론가 jkw6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