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류중일 감독의 고사로 칠순의 김인식 감독이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받아들였다. 사진은 2009년 1월 8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WBC 국가대표팀의 출정식에서 김인식 감독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일요신문 DB
2015 프리미어 12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이기도 하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팀들의 참가로 세계적인 야구 붐업을 조성하고 야구가 국제적인 흥행성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보여줘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회 취지에는 공감해도 각국의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2020 도쿄올림픽 개최국인 일본, 야구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대만, 인접국인 한국 정도를 제외하면 미국, 쿠바, 베네수엘라, 멕시코, 캐나다 등에서 최강팀 구성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움직일지는 알 수 없다. 프리미어 12와 관련된 이슈, 세 가지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 한국시리즈는 어떻게 하나
2015 프리미어 12의 개막전은 11월 8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린다. 예선 B조 한국과 일본의 첫 경기가 공식 개막전으로 진행된다. 개막전에 참가하려면 한국은 늦어도 11월 5일엔 대회 장소인 일본 삿포로에 도착해야 한다. 대회 참가 전 합동훈련 기간을 고려하면 늦어도 10월 31일까지 KBO 한국시리즈가 종료돼야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두 팀 선수들도 대표팀에 포함된다.
그러나 올 시즌 KBO리그는 경기수가 팀당 144경기로 늘었고, 우천으로 취소된 경기가 늘어남에 따라 과연 10월 말까지 시즌 전체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KBO 측에선 잔여 경기를 이동일인 월요일에 치르거나 더블헤더 등의 방법을 연구 중에 있다고 하지만, 성적과 관중 동원을 고려해야 하는 각 팀들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포스트시즌이 끝나자마자 충분한 휴식과 훈련 없이 프리미어 12에 출전한다면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준플레이오프 혹은 플레이오프를 치른 선수들이 한국시리즈까지 소화할 경우 체력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야구인들은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그래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팀의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뽑아 훈련을 시작하고, 최종 명단을 결정해야 할 때 포스트시즌 상황을 고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왼쪽부터 오승환, 이대호.
대표팀이 꾸려질 때마다 항상 나오는 문제가 해외파의 합류 여부다. 일단 어깨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LA 다저스 류현진은 제외됐다. 그 외에 추신수(텍사스), 강정호(피츠버그), 이대호(소프트뱅크), 오승환(한신) 등은 각 포지션의 주축 멤버로 꼽힌다. 이들 모두가 참가할 수만 있다면 대표팀을 이끄는 김인식 감독으로선 큰 힘이 될 터. 그러나 선수들이 소속돼 있는 팀에서 이들의 대표팀 합류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먼저 일본에서 뛰고 있는 이대호와 오승환은 일본이 프리미어 12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어 합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메이저리그의 추신수와 강정호는 지금으로선 합류 여부가 불투명하다. 일단 두 팀은 현재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중이고, 추신수나 강정호 모두 소속팀에서 성적 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치욕스런 시즌을 보냈던 추신수는 올 시즌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고, 메이저리그 1년차인 강정호는 현재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강정호는 프리미어 12 참가와 관련, <MK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아직은 소속팀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말로 정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추신수도 일단은 팀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시즌 마지막까지 경기를 뛸 수 있다면 흐름을 자연스럽게 대표팀으로 이어갈 수 있지만 변수 많은 상황 등으로 인해 지금으로선 선수가 나서서 명확한 대답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 선수들 반응은?
피츠버그의 강정호(왼쪽)와 텍사스의 추신수.
“나도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도 WBC에 이어 아시안게임 등에 잇달아 합류했고, 국제대회를 치른 이후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 프리미어 12로 이제는 2년에 한 번씩 국제대회를 치르고, 그 사이에 아시안게임도 소화해야 한다. 대표팀 선수들한테는 잦은 국제대회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솔직한 심정으론 이번만큼은 뽑힌다고 해도 정중히 사양하고 싶은 심정이다.”
반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선수 B는 ‘다시 한 번 더’를 외쳤다.
“대표팀에서의 성적에 따라 국민들의 칭찬과 비난이 극과 극을 달리는 걸 경험했다. 성적이 좋지 못했던 선수는 오랫동안 욕을 먹어야 했다. 그걸 지켜보면서 대표팀 자리가 만만치 않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표팀을 또 경험해 보고 싶다. 대표팀에서 내 야구가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야구 잘하는 선수들끼리만 모이다 보니 자존심 싸움이나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조차도 쉽게 접해 보지 못하는 경험이었다. 프리미어 12의 중요성보다 태극마크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
태극마크 경력이 많고, 실제 지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선수 C는 좀 다른 의견을 나타냈다.
“포스트시즌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2군 선수들 또는 아마추어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리자는 의견이 있던데 난 절대 반대다.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전력으로 출전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1.5군 선수들로 대표팀을 내보내는 건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후배들을 보면 병역 면제가 걸려 있는 아시안게임에는 서로 나가려 하고, 병역 면제 혜택이 없는 WBC나 이번 프리미어 12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선배들이 솔선수범해서 태극마크가 얼마나 소중한 훈장이고 기회인지 직접 보여줬으면 좋겠다.”
대표팀을 이끄는 수장 김인식 감독은 일단 코칭스태프 선임에 전력을 쏟고 있다. 김 감독은 프로팀 코치들을 대표팀으로 빼오는 건 어렵다고 보고 감독이나 코치 경력이 있는 재야 야구인들 중에서 코치들을 선임할 예정이다. 코치진 구성이 완료되면 오는 9월 10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예비 엔트리 45명의 명단 작성을 위해 바쁜 일정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시간은 4개월. 한국시리즈를 내다보고 있는 삼성 류중일 감독의 고사로 대표팀 감독직을 받아든 칠순의 김인식 감독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현장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던 김 감독이 국제대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