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미애(왼쪽), 정균환 | ||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후 해외 유학길에 올랐던 정치권 인사들이 올해 ‘모두’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수·설훈 전 의원 등은 이미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의 짧은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상태. 하지만 추미애·정균환 전 의원 등은 지금도 미국에 머물며 귀국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해외 유학을 떠난 이들은 홀연히 정계를 떠나 학업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하지만 속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정계에 복귀할 것이냐’에 온통 관심이 집중돼 있다. 지금은 와신상담하지만, 머지않아 권토중래 하겠다는 것. 그러면 머나먼 타국에서 대중들과 떨어져 ‘외롭게’ 유학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의 유학 생활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17대 총선에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아 ‘3보1배’ 행보로 극적 반전을 꾀했던 추미애 전 의원. 민주당은 9석의 미니정당으로 전락했고, 그 역시 낙선의 쓰라림을 겪어야 했다.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그는 지난해 8월 두 자녀와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런 그는 지금 뉴욕 컬럼비아대 국제대학원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학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최측근은 “요즘엔 남북문제 특히 북한 경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정치적 아버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공(남북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강골’ 추 전 의원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그가 올해 들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2003년 2월, 노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을 수용할 당시만 해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짓밟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던 그다. 그런데 지난 2월, 워싱턴의 한 대학 연설을 통해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계승했다”고 재평가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추 전 의원은 여권 인사로부터 입각 제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면서 못내 미안했던지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진정성이 느껴져 고맙다”는 뜻을 전달했다. 올해 초엔 일부 여당 의원이 미국으로 건너가 그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한때 견원지간 같았던 여권과 추 전 의원 사이에서 교감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올해 귀국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추 전 의원의 최측근은 “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올해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언제쯤 귀국 할지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그렇지만 유학을 떠날 때 잠정적으로 1년 연수를 계획했기 때문에 오는 9월경에 귀국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의 귀국이 곧바로 정계 복귀로 연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추 전 의원의 남편인 서성환 변호사는 “(추 전 의원은) 공부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만 짧게 언급했을 뿐 더 이상의 언급은 회피했다. 추 전 의원이 아직 대중 앞에 나서길 꺼리는 듯한 인상이 역력했다.
▲ (왼쪽부터) 함승희, 전용학, 여택수 | ||
오는 8월 귀국 예정인 정 전 의원은 정계에 복귀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의 측근들에 따르면 내년 전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귀국과 함께 지방선거를 대비할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공통된 전언.
지난해 9월 출국한 함승희 전 의원도 같은 대학에서 국제 정보학과 국제 관계론을 공부하고 있다. 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가끔 귀국해 서울 광화문 인근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을 들리기도 한다. 측근에 따르면, 함 전 의원도 정계 복귀 의사가 분명하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복귀할지는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는 것.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미국 유학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대선 직전인 2002년 10월 민주당을 탈당해 한나라당에 입당했던 전용학 전 의원도 조지타운대에서 유학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출국한 그는 이 대학의 ‘재정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연수중이다. 가족(부인과 두 딸)과 함께 지내고 있어 타향에서 겪는 외로움은 덜 하다고. 국내 항공사에서 20년 근무한 경력이 있는 부인 윤오용씨는 현지 여행사에서 일하며, 남편과 두 딸의 학업을 뒷바라지 하고 있다.
전 전 의원은 학업과 함께 현지 지인들과 잦은 교류를 갖고 있다. 기자 출신인 그는 주미 한국특파원들과 자주 만나고 있으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미국을 방문했던 지난 3월에는 박 대표와 해후했다. 홍석현 주미대사와도 만났다고.
부인과 두 딸의 귀국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전 전 의원은 오는 10월경에 귀국할 예정이다.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의 측근은 “한나라당 후보로 충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뜻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심대평 충남지사가 추진 중인 중부권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한편 대기업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7월 석방된 노무현 대통령의 수행비서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도 지난 3월2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북핵 관련 6자 회담 등을 주제로 연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때마침 참여정부의 첫 외교부장관이었던 윤영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가 이 대학에서 연수중이어서 그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