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표가 지난 3월22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박 대표는 방미 기간 중 전향적인 대북관을 피력하며 북한 프로젝트의 시동을 걸었다. 오른쪽은 지난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박 대표. | ||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차례로 방문한 뒤 기회를 보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경로를 밟아 북한을 방문한다는 게 그 요체다. 물론 이는 박 대표의 대권 구상과 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면 1=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7박8일 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지난 3월22일 귀국한 다음날, 비선조직에 있는 한 인사는 박 대표의 방미 활동을 평가한 한 장의 극비 보고서를 만들었다.
“…첫 공식 방미에서 박 대표는 전향적인 대북관을 보여줌으로써 차기 대권주자로서 이미지를 각인시켰음. 특히 최병렬 이회창씨 등 전 총재들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맹비판했던 것에 비해 박 대표는 ‘초당적 외교’의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했음…. ‘북한판 마샬 플랜’을 제시하면서도 상당히 참신성을 내보였음. 특히 북한에 대해 ‘대담하고 포괄적인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점을 미국에 제시해 눈길을 끌었음….”
이 보고서를 성안한 인사는 “특히 박 대표가 ‘북미 간의 상호불신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으며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미 간의 오랜 불신을 없애기 위한 북미 간 양자대화도 중요하다’고 말한 점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쉽게 내놓지 못할 발언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인사는 박 대표의 방미 성과를 한마디로 ‘한나라당의 보수 꼴통 이미지에서의 탈출’에서 찾았다.
박 대표는 방미 기간 동안 자신이 ‘북핵 해결사’로 나서겠다고 적극 앞장섰다. 박 대표는 3월18일 콜롬비아대학 연설에서 “이번 방미를 통해 미국의 정치인, 행정부 고위관료, 전문가들과 폭넓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이곳에 와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회가 되면 김정일 위원장에게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었다. 박 대표는 최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대북 특사 용의가 있다”며 방북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장면 2=한나라당 혁신위원회(위원장 홍준표)는 박 대표의 귀국 직후인 3월31일 박 대표에게 북한 방문을 건의했다. 혁신위는 “박 대표의 방미 성과를 극대화하고, 새로운 대북ㆍ통일 정책의 기조를 확인함과 동시에 교착상태의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박근혜 대표의 방북 추진을 건의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위원장은 이른바 반(反)박그룹의 대표 선수다. 그런 홍 위원장이 박 대표의 방미 활동과 관련해 “박 대표가 미국에 가서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고 들었다”며 극찬했다. 왜 일까.
북한 프로젝트 추진 배경
박근혜 대표의 북한 프로젝트는 한나라당 일각에서 일고 있는 전향적인 대북정책 수립 프로젝트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다. 즉 박 대표에게는 북핵 해법의 제시야말로 자신의 정치적 포부의 종착지인 대권 도전이라는 꿈을 실현시키는 주요한 도구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고, 한나라당 역시 대북관에서 파격적인 인식의 변화가 없는 한 다음 대선에서도 젊은층이나 개혁성향의 표를 끌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감이 있다. 따라서 박 대표와 반박그룹이 각각 갖고 있는 두 줄기의 현실 정치인식은 북한 프로젝트라는 지점에서 만나 합쳐지게 된다.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른바 북방정책에 대한 획기적 전환의 고리는 80년대 후반과 90년 초반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에서 비롯됐으며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과 민자당이 북방정책의 출발점을 제기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수도권의 한 의원은 “대북 유화정책은 이후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핵 위기로 중단됐다가 DJ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그 후로 이회창 총재 시절 전략적 상호주의 등 정체불명의 구호를 남발하면서 수구꼴통당으로 인식되고 한나라당은 무조건 대북강경, 반통일세력으로 낙인찍힌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대북정책 혁신의 연원을 6공화국 시절인 민정당에서부터 찾자는 주장인 셈이다.
따라서 박 대표는 이 같은 한나라당 내 분위기를 적극 끌어안으면서 궁극적으로 방북 프로젝트를 자신의 대권 획득의 유력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기는 2006년 말~2007년 초
박근혜 대표에게 북한 프로젝트는 정치생명을 건 승부수다. 4·30재보선 압승으로 국내 정치에서 한숨을 돌린 박 대표는 국제무대, 특히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권으로 시야를 넓혀 외교력을 발휘함으로써 나라 안팎으로 역량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발 벗고 뛰고 있는 것이다. 그 종착점이 차기 대선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박 대표는 북한 방문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일단 이달 하순에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할 계획을 잡고 있다. 캠프에서는 러시아 방문 계획도 이미 검토중이다. 북핵 외교차원에서 특히 한반도 주변 4강 중 대화가 절실한 사회주의권을 접촉해보겠다는 구상이다. 이미 확인된 국내 대중적 인기를 지지기반으로 해서 외교안보분야에까지 자신의 지도력을 확인하고 역량을 확대하고자 하는 계산법에서 나온 것이다.
박 대표는 23일로 예상되는 중국 방문 길에 중국 공산당 서열 2위인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협의중이다. 박 대표의 중국 방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북한 방문의 길을 예비하는 데 있다. 즉 꼬일 대로 꼬이는 북핵문제 등 한반도 이슈를 풀어내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등 4강을 차례로 돌면서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로서의 외교를 벌여나가고, 여건을 만들어 북한을 방문해 북핵문제의 해법을 찾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 대표 캠프에서 내다보는 박 대표의 북한 방문 시기는 내년 후반기에서 내후년 상반기 사이다. 즉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가 되는데, 이 시기는 곧 박근혜 북한 프로젝트가 완료하는 시점인 셈이다. 18대 대선을 코앞에 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근혜 북한 프로젝트가 그대로 실현되기엔 무수한 걸림돌이 있다. 무엇보다 당내 반발이 문제다. 박 대표의 구상이 현실화하는 순간 그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영남 보수세력이 전향적인 대북정책 자체에 반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설혹 당내 반발을 무마한다 하더라도 국제정세 및 이에 연동된 북한의 태도 여부가 큰 변수가 될 게 확실하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