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의원은 “지금의 ‘도로 민정당’식 당청관계 유지는 총선 필패로 이어진다”며 수평적 당청관계 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최근 수직적 당청관계에 반기를 든 사람이 새누리당 안에서 나왔다. 3선의 정두언 의원(서울 서대문을)이다. 당청이 ‘뻥뻥’ 웃음을 터뜨리며 찰떡궁합을 과시할 때 그는 ‘도로 민정당은 안 된다. 해괴망측하고 파렴치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정두언 의원은 ‘할 말 하는 정치인’이다. 개혁적 보수, 여당 안의 야당 등의 별명이 있다. 타협을 싫어하고 직설로 정국을 헤쳐 나간다. 굽실거리지 않고 소신 있게 얘기하니 ‘힘 있는 분’에게 부담스런 존재이기도 하다.
정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개국공신이었지만 정권 출범 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실세에게 찍혔다. 자신의 말대로 정치보복 수사를 받았고 옥고를 치렀다. 너무 억울해 죽음으로써 결백을 주장하려고도 했다. 대법원 무죄판결로 누명을 벗었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깊고 큰 상처를 입었다. 고통의 나날 속에서 삶의 진지한 성찰과 인간적 성숙이라는 열매를 얻기도 했다. 옥살이 대가로 받은 6000여만 원의 배상금은 힘겨운 아이들을 위해 모두 내놓았다. 1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고 있던 정두언 의원을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있는 지역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청관계가 초상집에서 잔칫집 분위기로 바뀌었다.
“기가 막힌다. 대통령과 당 대표, 원내대표가 아무 일 없었던 듯 청와대에서 웃음꽃을 피우면 도대체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의 노여움에 꼼짝없이 굴복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당청 갈등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나. 또한 야당과 어떻게 협상을 해나가겠는가. 노여움 정국을 한시바삐 봉합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당 지도부가 진로와 퇴로를 모두 막은 형국이 됐다.”
―대통령이 저렇게 나오면 당 대표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언행일치는 교과서에만 있는 말이 아니다. 당 대표 당선 때 ‘할 말 한다’고 했고, 특히 이번에 ‘당이 뽑은 원내대표를 지킨다’고 했다. 김무성 대표는 대권 주자다. 말에 책임을 지려면 차라리 본인이 대표직을 버리고 원내대표를 살리는 게 맞았다. 당 대표의 소신은 고사하고 명분조차 없이 대통령에게 끌려가고 있으니 앞이 캄캄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국정혼란은 대통령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새누리당에 있지 않다. 근원이 대통령과 청와대인데 이를 집권당이 지겠다는 모양이니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국정 부실운영이다. 시스템 작동도 원활하지 않다. 위기 상황에서 대처능력이 부족하니까 예방능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월호, 메르스사태 등과 같은 위기가 언제든지 올 수 있다. 모든 원인이 일차적으로 대통령의 불통에 있다. 이것 때문에 국민 신뢰가 떨어지는데 어떻게 국정운영이 원활해질 수 있겠는가. 여당이 견제해도 힘든 판에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손아귀에 넣으면 더욱 힘들 것이다. 총선을 앞둔 집권당이 민심을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예속되면 승리는 더욱 어려워진다.”
―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협치보다 통치가 국정운영에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이다. 요즘 시대흐름과 맞지 않다. 왕이 통치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왕으로 인식되던 대통령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그런 대통령의 전형이다. 승자독식에 의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그랬지만 공공재인 권력을 사유화하는 모습을 보면 민주공화국에 맞는 지도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이 ‘통치하는 대통령에서 정치하는 대통령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정치인 유승민을 배신자로 몰아세웠지만 도리어 그는 대선 후보로 깜짝 등극했다. 불의에 맞서는 정치인을 대통령 후보로 키우려는 게 민심이다. 대통령도 이렇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레임덕이 없을 수도 있다.
“대통령과 측근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안 된다. 시간은 단임제 대통령에게 늘 불리하게 작동한다. 또한 선거를 앞둔 정당은 자기생존 본능이 있다. 특히 이번 갈등 정국에서 대통령은 국민에게 내려오지 않았다. 레임덕을 막으려면 국민 가까이 내려와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국회의 이기심을 견제하며 정국을 이끌었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무서운 칼을 들고 통치를 선언했다. 권력자가 힘을 쓰면 더욱 빨리 망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지난 8일 사퇴의사를 밝힌 유승민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그런데도 김무성 대표는 유승민 의원을 버리고 박 대통령을 선택했다.
“이것 때문에 대통령 후보 되는 길이 더욱 험난해졌다. 정치인은 상황에 따라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다만 설명이 돼야 한다. 특히 김 대표 같은 대선 후보는 더욱 그렇다. 대통령의 비위에 몸을 맞추려는 관리형 당 대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청관계 복원으로 국정이 원활해지겠다고 했으니 대통령의 성과가 곧 김무성 대표의 성과가 될 것이다. 반대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대통령과 함께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김 대표가 큰 비를 피하면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카드로 던졌다.
“쇼처럼 보인다. 나는 제도로서 오픈프라이머리에 동의한다. 중앙당의 독점적 공천구조를 깰 수 있는 방안이다. 다만 이 제도는 기존의 중앙당 폐지를 전제로 한다. 당 대표도 없어지는 것이다. 김 대표의 정치적 승부수라면 제도 합의 후 바로 당 대표직을 던지겠다는 선언이 있어야 한다. 대표직 유지와 오픈프라이머리는 앞뒤가 맞지 않다. 지금이라도 김 대표가 진정성 있는 실천방안을 내놓고 다양한 논의를 부쳐야 한다. 그게 제안자의 임무다.”
―현 지도부 체제로 내년 총선 치를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일시적 봉합상태가 유지될 수 있지만 불행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당 밖에서 올 수도, 당 내부에서 올 수도 있다. 그만큼 위태롭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여야를 넘나드는 제2의 ‘유승민 현상’이 생길 수 있고, 국가적으로 제2의 ‘메르스사태’가 올 수도 있다. 만약 총선을 눈앞에 두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정치판 전체가 요동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도로 민정당’식 당청관계 유지는 총선 필패로 이어진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감한 당의 혁신, 수평적 당청관계 유지, 청와대의 소통 확대 등이 절실하다.”
―김무성 대표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피하지 말고 무엇이 옳고 바른 것인지 판단을 해야 한다. 정치인 박근혜의 선례를 참고하면 된다. 박근혜 의원은 2002년 탈당 때 이회창 총재의 1인 지배정당 반대, 상향식 공천, 당권 대권 분리 등을 외쳤다. 또한 2012년 소위 친박 공천학살 때 청와대 거수기 국회, 일방공천 반대를 주장하며 친박 후보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다. 정치인 박근혜는 혈혈단신으로 원칙과 소신이라는 깃발을 들고 가장 위엄 있는 장벽에 맞섰다. 정의인지 불의인지 판단은 국민 몫이었다. 지금 김 대표에겐 정치제도가 아니라 소신 있는 자기 목소리가 필요하다.”
지난 8일 유승민 사태와 관련해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정두언 의원. 이종현 기자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큰 불꽃이 되었고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보수진영의 영토확장에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치인 유승민 의원에게 하늘이 기회를 준 셈이다. 한계도 있다. 불꽃을 스스로 만든 게 아니라 대통령이 만들어준 것이다. 변환을 위한 콘텐츠 재생산이 뒤따라야 한다.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던 활동 스타일도 바꿔야 한다. 대통령감으로서 느낄 수 있는 인간미 같은 것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본인이 풀어야 할 숙제다. 이번 사태가 유승민 의원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국민이 최종 평가할 것이다.”
―정두언 의원이 국정혼란 진원지로 야권을 지목했는데 ‘주제넘은 비판’ 아닌가.
“주제넘어도 꼭 얘기하고 싶다. 새누리당 잘 하는 것 별로 없다. 그런데 야당이 너무 못하니까 국민의 견제심리가 발동하지 않는다. 야당이 존재감을 잃으니 정부와 여당이 오히려 부실해지고 있다. 정치 전체를 망치는데 야당이 앞장서고 있다는 얘기다. 유승민 갈등으로 어찌됐든 여당은 플러스 정치를 하고 있는데, 야당은 하는 것마다 마이너스 정치뿐이다. 이런 얘기 듣지 않으려면 정말 야당이 다시 태어나든지 아니면 해체되는 게 마땅하다.”
전계완 정치평론가 jkw68@hanmail.net
정두언 파격 주장, 소신인가 인기 영합인가 민심 당심 믿고 가야…각오 없인 아무나 못해 정두언 의원의 발언은 시원하지만 2%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원칙과 소신의 발언이기 때문에 호응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당의 단합을 저해한다며 비판을 받기도 한다. 정 의원뿐만 아니라 소신파 의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자기 신념을 지키는 정치인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반대진영에 대한 비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집권당 소속으로 대통령과 당 대표를 비판할 때는 각오 아닌 각오를 해야 한다. 민심과 당심을 믿고 하는 수밖에 없다. 행동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내 몫이다. 소신파 의원들은 그런 부담을 안고도 자기 신념에 따라 움직여왔다.” 정 의원은 소신파에 대한 세간의 ‘인기영합주의’ 비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대 대통령을 봐라. YS, DJ, 노무현, MB 등 모두 소수파, 소신파 출신이다. 소신파는 외롭게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모 국무총리처럼 이도, 저도 아닌 무색무취한 정치인은 최고 권력에 다가서지 못한다. 꿈을 크게 꾸는 정치인이 늘고 국회에 소신파 정치인이 많아지면 정치의 질이 훨씬 좋아진다는 게 지론이다. 자기만을 지키려고 불의에 굴하고 흐름에 편승하는 사람이 정치판에 널려있다. 이런 사람이 권력자 옆에 붙어 소장파들에게 인기영합이라고 비난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소장파 개혁세력의 움직임은 미미할 뿐만 아니라 다수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세력으로 만들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서로 연대해서 힘을 모을 때다. 통치형 대통령이 사라지고 소통하며 정치하는 대통령이 등장할 것이다. 세대교체, 시대교체가 정치권의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다. 내년 총선을 지나 2017년 대선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경필, 권영진, 원희룡, 유승민, 정병국, 오세훈, 김기현, 정태근, 김용태 등이 보수진영의 세대교체를 주도할 것이다.” 또한 본인의 역할에 대해 “백의종군한다. 시대변화를 주도할 개혁적 보수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두언 의원의 ‘거침없는 하이킥’은 여전히 소수의 목소리였지만 힘이 강하게 실려 있었다. [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