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은 연말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4곳의 면세점 사업자를 11월경 선정할 방침이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롯데면세점 본점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관세청 이돈현 차장은 특허심사 평가표에 따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를 최종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던 이 차장의 발언 가운데 발길을 돌리던 기업체 사람들을 다시 붙잡는 것이 있었다. 연말에 특허가 만료되는 시내면세점 선정 과정도 신규 면세점과 동일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간 업계에서는 기존 면세점 특허신청은 직원들의 고용안정성과 여행업계와의 연계성 등의 측면에서 기존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평가를 할 것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차 면세점대전이 HDC신라와 한화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2라운드 종이 울렸다. 관세청에 따르면 연말에 면세점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곳은 서울 3곳과 부산 1곳 등이다. 오는 11월 16일에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이, 12월 22일과 31일에는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롯데월드점이, 12월 15일에는 부산 신세계면세점 특허기간이 끝난다.
관세청은 4곳의 특허기간이 비슷한 시기에 만료됨에 따라 새 사업자 선정을 위한 특허 신청 및 특허심사위원회 개최 등의 절차를 통합해 진행하기로 했다. 오는 9월 25일까지 특허신청을 받으며 관세청은 특허심사위원회를 거쳐 11월경에 특허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과거에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면세점 특허가 10년마다 자동 갱신됐지만, 지난 2013년 개정된 관세법에 따라 기존 사업자도 5년마다 특허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에 따라 면세점 합작법인까지 설립한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은 물론 이랜드 등이 또 한 번 면세점 특허를 획득하기 위한 패자부활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는 시내면세점 공약으로 내세웠던 명동과 남대문시장, 남산을 잇는 관광벨트 형성을 위해 남대문시장 상권에 대한 지원을 계속 벌일 계획이다. 주변 상권 부흥과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노력을 통해 진정성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신세계는 서울 중구청과 함께 내년 하반기까지 신세계 본점과 옛 SC제일은행 건물,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등 근대건축물에 둘러싸인 분수대를 로마의 ‘트레비 분수’와 같은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남대문시장 옆 메사빌딩에 530석 규모의 한류공연장을 마련하고 남대문시장에 3년간 15억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남대문시장 활성화 지원은 면세점과 별개로 계속 추진하는 사업”이라며 “오는 9월 면세점 입찰 참여 여부는 아직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면세점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지난 2012년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을 인수하고 올해에는 인천공항 면세점 입성에도 성공해 2차대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현대백화점도 중소·중견기업과 합작법인 현대DF를 설립하면서 면세사업의 칼을 뽑은 만큼 다시 한 번 휘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에 신규로 선정된 시내면세점 부지가 용산과 여의도로 모두 강북인 만큼 무역센터점을 후보지로 선정했던 현대백화점은 ‘강남 안배론’을 강력히 주장할 수 있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기존 업체인 롯데와 SK네트웍스는 서울 사수를 위해 기업의 사활을 걸 예정이다. 롯데의 경우 이번 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에서 독과점 논란으로 소극적 행보를 보였지만, 업계에서는 연말 특허권 방어를 위해 힘을 비축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롯데처럼 독과점 이슈에 휩싸였던 HDC신라면세점이 신규 사업자에 선정되면서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로워졌다.
이번에 특허가 만료되는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롯데월드점의 작년 매출액은 각각 4조 3502억 원과 4820억 원으로 전체 롯데면세점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롯데그룹 차원에서는 두 곳 중 한 곳이라도 뺏기면 면세점 동력을 잃는 셈이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소공점과 롯데월드점은 롯데면세점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면세점 사업의 생존 자체가 걸려 있다”며 “특허권을 지키고자 그룹의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지난 35년 동안 면세사업을 운영하면서 수 없는 시행착오와 차별화로 생존해 국내 면세사업을 성장시켰다는 것을 강조할 예정이다.
SK그룹도 워커힐면세점을 쉽게 내줄 수 없는 상황이다. 워커힐면세점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각각 46%와 24% 증가한 2600억 원, 110억 원가량에 달해 알짜점포로 평가받는다. 특히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부재 속에서 번번이 신규 사업 진출에 실패해 워커힐면세점 사수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SK그룹은 지난 2012년 2월 SK하이닉스 인수를 마지막으로 최 회장 구속 후 신성장동력 확보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SK텔레콤과 SK E&S가 ADT캡스와 STX에너지 인수를 중도포기했고 KT렌탈 인수전에서 롯데그룹에 밀린 이후 서울시내 면세점에도 탈락했다.
재계에서는 면세점 2차대전에서 대기업 총수들의 대외 행보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오너가 직접 뛰어다니며 물밑 지원을 해준 대기업들이 모두 선정됐기 때문이다. 범현대가와 범삼성가의 깜짝 만남으로 이슈가 된 HDC신라면세점의 경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메르스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자 중국으로 날아가 현지 여행사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며 한국 방문을 호소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면세점의 설계·인테리어 등까지 직접 도면을 보며 챙겼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특유의 뚝심 있는 경영 스타일로 신규 면세점 사업권 신청을 가장 빨리 접수했고 약속한 기부금 규모도 컸다. 경쟁업체보다 열세로 평가받았던 한화가 승리한 이유도 김승연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면세점 2차대전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등이 사업권 획득을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업인에 대한 사면을 언급하면서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 기대가 커지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총수 부재 상황이 종료되면 SK그룹도 면세점 수성을 위해 오너가 직접 나설 수 있게 된다”며 “신규 면세점 입찰보다 2차대전이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진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