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문석씨 | ||
<일요신문>은 허씨의 제안을 받았던 대우증권의 관계자를 통해 “지난해 말(12월경) 허씨가 대우증권 PF(프로젝트 파이낸싱)팀에 찾아와 자신이 추진중인 북한 모래채취 사업과 관련된 펀드를 제안”했고 “올해 초까지 두 차례 정도 허씨를 만나 실무적인 차원에서 사업제안을 검토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제안을 받아 사업성을 검토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화되지는 못했다. 게다가 철도청의 유전사업 관련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연스레 취소됐다”는 입장을 전했다.
취재결과 허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초(2월)까지 최소 두 차례 이상 대우증권을 방문, ‘북한 모래채취 사업’과 관련된 펀드를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우증권에 모래 펀드 사업을 제안하면서 당시 허씨는 “내가 51%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선교 관련 법인((주)코린프 인터내셔널)이 최근 대북 사업권을 땄으며 이것을 이용해 사업을 할 생각이다”는 것과 “통일부로부터 이미 모래운반을 위한 철도사업권을 땄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코린프 인터내셔널은 2004년 7월 북한의 ‘조선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예성강 임진강 건자재 채취사업 추진계약’을 맺은 바 있는 골재채취업체로 허씨는 이 회사와 공동으로 지난해 5월 H&K에너지를 설립했었다.
이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송아무개씨는 최근 언론을 통해 “2004년 10월 말쯤 허씨가 (주)코린프 인터내셔널이 추진중인 신설법인의 지분 51%를 갖는 조건으로 20억원을 투자하기로 계약했다가 11월 말쯤 사업 포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허씨가 제안한 펀드는 “준비단계에서 중단됐다”고 대우증권측은 주장하고 있다. 대우증권측은 “대북사업의 경우 큰 수익을 낼 수도 있지만 리스크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허씨에게 실제로 북한의 모래를 철도를 통해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펀드사업을 구체화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었다. 국내 강모래 생산량이 극히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판매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허씨는 두 차례 정도 사업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지속적인 진행 보고도 없었다. 결국 이 사업은 계획단계에서 취소됐다”며 “회사(대우증권) 내에서도 윗선에 보고하거나 구체적인 보고서를 만들진 않았다”고 전해 왔다.
그러나 곳곳에서 의문점은 발견된다.
대우증권을 방문했을 당시 허씨는 자신을 ‘에너지 전문가’라고만 소개했다고 한다. 대우증권 PF팀의 한 관계자는 “허씨는 자신을 인도네시아 명예대사이자 미국 모 오일회사에서 일했던 에너지 전문가라고만 얘기했다. 한국쿠르드오일, H&K에너지라는 회사 이름은 나중에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허씨를 만난 직후 그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했고 큰 문제는 없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가 이광재 의원이나 이기명씨 등 정치권 인사들과 교분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시 허씨는 유전사업을 위해 철도공사, 전대월 하이랜드 대표 등과 함께 2004년 8월 설립한 한국쿠르드오일(KCO)과 (주)H&K에너지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허씨의 존재를 몰랐다는 대우증권측의 설명은 어딘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허씨가 과연 혼자 힘으로 펀드 사업을 추진했겠는가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통상적으로 펀드를 하나 만드는 데는 상품개발에만 3개월 이상이 걸린다. 성공가능성만큼이나 실패가능성도 높기 때문. 특히 선박·유전·모래 등 실물자산을 상대로 한 펀드의 경우 그 위험성은 더욱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모 증권사의 한 펀드개발자는 “펀드가 실패할 경우 펀드운용을 맡은 회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 지식이 있고 사업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고 전했다.
최근 검찰은 조사를 통해 김세호 이기명 이광재 등 실세들이 허씨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그런 허씨가 과연 이들의 힘을 빌지 않고 홀로 펀드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우증권측은 “허씨 외 누구와도 이 문제를 위해 접촉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펀드사업을 제안한 시점도 의문을 낳고 있다. 허씨가 대우증권을 찾아간 지난해 12월은 이미 유전사업뿐 아니라 대북사업도 좌초된 이후였다. 허씨가 대표로 있던 한국쿠르드오일이 추진하던 러시아 유전사업은 이미 11월15일 KCO측이 러시아에 ‘주식매매계약 해지 통보’를 하면서 계약이 파기된 상태였다. 허씨가 철도공사의 도움을 받아 추진했던 모래채취 사업은 철도공사가 ‘유전사업에 대한 리스크 보상차원’에서 허씨에게 역제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유전사업의 중단과 동시에 폐기되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허씨가 대우증권에 “‘철도운행 사업권’을 땄다”고 밝힌 부분도 사실이 아니었다. 허씨가 철도공사의 도움을 얻어 통일부로부터 철도운행권을 딴 시기는 올해 1월 말이었다. 통일부는 지난 4월 “지난해 11월 초 (주)H&K에너지가 통일부(교류협력국)에 경의선 철도를 통한 예성강 모래 반입 가능 여부를 문의하였으며 같은 달 중순 경의선 철도를 통한 모래 반입이 가능하다는 내부입장을 정리했다”며 “올해 1월26일 한국철도공사가 통일부에 남북간 철도차량 운행승인 신청을 한 다음날인 27일 승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허씨가 대우증권을 처음 찾아간 작년 12월은 러시아와의 유전사업과 관련, 감사원과 청와대 등이 내부감사를 시작한 이후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대우증권측은 “‘오일게이트’와 관련된 부분은 전혀 알지 못했고 알 수 있는 단계도 아니었다”는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