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이 16일 국회에서 불법 해킹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정국을 강타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정국에서조차 메르스 대책특별위원장을 거절했던 안 전 대표가 국정원 해킹 의혹을 기점으로 기지개를 켜자, 정치권 안팎에선 차기 대권행보에 시동을 건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의사 출신이기도 한 안 전 대표는 지난 15일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 수락 당시 “메르스는 시스템만 갖추면 금방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은 전 국민이 대상이고 의사는 당내에 몇 분 더 있지만 컴퓨터 보안 전문가는 나밖에 없기 때문에 위원장직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원 해킹 의혹은) ‘인권 문제’인 만큼 국회 차원의 특위 구성이 있어야 하며 국정조사 실시 여부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때 SBS <힐링캠프> 출연과 <안철수의 생각> 발간 등을 통해 기성 정치권을 긴장시켰던 ‘특유의 타이밍’ 정치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당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자신만 할 수 있는 적절한 이슈에 안 전 대표가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안 전 대표가 짠 프레임 구도가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야권이 국정원 해킹 의혹을 ‘국정원 댓글 시즌2’로 규정한 상황에서 안 전 대표가 ‘인권 문제’를 고리로 대여공세에 나선 것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안 전 대표가 들고 나온 ‘인권 프레임’이 국민들 뼛속까지 전달된다면, 세대와 계층 등을 가리지 않고 국정원 사태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며 “분당 및 신당 움직임이 있는 상황에서 안 전 대표가 재기를 위해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0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50%)와 유선전화(50%)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한 결과, 응답자의 52.9%가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이 ‘대테러, 대북 업무 외에 내국인 사찰에도 사용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대테러나 대북 공작활동을 위해서만 해킹했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층은 26.9%에 불과했다.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이 대테러나 대북 공작활동 감시를 넘어 ‘내국인 사찰’ 용도로 쓰였을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26.0%포인트 높다. 국정원 정국에서 안 전 대표의 타이밍 정치가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안 전 대표는 국정원이 구매·운용한 해킹프로그램인 ‘리모트컨트롤시스템’(RCS)의 모든 로그파일을 포함한 7개 분야 30개 자료를 국정원 및 SK텔레콤에 요청하는 한편, 검찰 고발 및 국회 차원의 청문회, 국정조사, 특별검사제(특검) 도입 카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여권은 “국정원에 자료요청을 하는 것은 폭거”라고 비판했다. 안 전 대표의 대권 운명은 타이밍 정치의 성공 여부와 해킹에 대한 전문성, 즉 팩트 체크에 달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