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현직’ 시절 청와대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차를 마시는 고건 전 총리와 강금실 전 법무장관. | ||
일부 국회 출입기자들은 고건 전 총리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을 향한 여야 정치권의 ‘러브콜’을 이렇게 빗대서 표현한다. ‘고·강’ 두 사람은 ‘현역 정치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 때나 매스컴에 얼굴을 내미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야말로 ‘장외 정치인’인 것이다. 게다가 강 전 장관은 ‘정치인’으로 불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는 전언이다.
그럼에도 ‘고건·강금실 신드롬’은 좀처럼 그 기세가 꺾이질 않고 있다. 그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각종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고 있다. 특히 고 전 총리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상당 기간 부동의 1위를 이어가고 있다. 강 전 장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이다. 식을 줄 모르는 인기 탓인지 최근 정치권 일각에선 두 사람이 여야 후보로 경쟁하는 ‘2007대선 가상시나리오’까지 나돌고 있다. 그만큼 ‘묵언의 정치’를 펼치는 고 전 총리와 정치에 관한한 ‘묵언’으로 일관하는 강 전 장관이 정가에선 ‘블루칩’(대형우량주)인 셈이다. 그래서 여야 공히 영입 영순위에 속하는 인사들이다.
고 전 총리는 지난 9일 미니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에 정가에선 “대권 가도에 오르기 위한 워밍업이 아니겠느냐”고 관측한다. 특히 그의 아킬레스건인 ‘개혁-젊음’을 극복하기 위한 전술이 아니겠느냐는 것. 예상대로 그의 홈페이지는 연일 문전성시다. 현재까지 무려 8만여 명의 네티즌이 그의 홈페이지를 다녀갔다. 네티즌의 질문에 그가 직접 답글을 올릴 정도로 열성적이다. ‘오프라인’에선 정치에 관해 침묵하는 대신 ‘온라인’을 통해 정치 행보를 걷고 있는 셈이다.
강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장관에서 물러난 다음 해외여행이나 전통무용, 전시회나 영화 관람 등 사생활에 치중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자신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지평’으로 출근하면서 본격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면서도 여성인권대사인 그는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다녀오는가 하면 전직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모임 등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지극히 ‘비정치적’ 행사에만 참석하고 있는 것. ‘고·강’은 정치와 관련된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언론과의 접촉도 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종 여론조사 결과, 두 사람의 인기는 여전히 시들지 않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 13일 실시한 ‘대선 예비후보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고 전 총리는 26.2%로 1위를 고수했다. 다음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16.6%, 이명박 서울시장 10.4%, 정동영 통일부 장관 5.1% 순이었다. 여기서 강 전 장관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4일 ‘열린우리당 차기 대권후보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고 전 총리가 32.8%, 정동영 장관 12.4%로 1,2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이해찬 총리 6.7%였고, 강 전 장관(5.1%)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4.5%)이나 유시민 의원(2.3%)보다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지난해 5월 한 행사장에서 만나 악수하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고건 전 총리. 왼쪽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 | ||
특히 한나라당의 고 전 총리에 대한 애착은 강하다. 박근혜 대표는 지난 1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 전 총리의 영입 가능성’에 대해 “당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좋은 분은 많이 모셔올수록 좋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오랫동안 행정 관료를 맡으면서 안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던 것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진단하면서 “차기 대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고 전 총리가 서둘러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당에 입당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자신의 몸값을 더 올리는 데 치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고 전 총리 입장에선 벌써부터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볼 것이다. 조기에 대선 주자로 부각되면 도처에서 ‘정’ 맞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도 고 전 총리를 ‘탐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의 각료 제청권 요청을 거부한 채 총리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대중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고건 카드’를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열린우리당이 ‘방점’을 찍고 있는 사람은 강 전 장관이다. 지난해 총선 당시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강 전 장관을 영입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하지만 강 전 장관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히려 여권의 정계진출 종용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게 강 전 장관 주변사람들의 전언. 그럼에도 그에 대한 여권의 집요한 ‘러브콜’은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더 나아가 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 일각에선 차기 대선과 관련된 가상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일명 ‘2007대선 가상 시나리오’가 바로 그것. 열린우리당에서 ‘대통령 후보-정동영, 부통령 후보-강금실’, 한나라당에선 ‘대통령-고건, 부통령-박근혜’로 출마, 대권 경쟁을 벌인다는 것. 이 시나리오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로 개헌됐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일반적으로 남녀가 한 팀으로 구성되는 게 안정돼 보인다. 대부분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녀가 반장과 부반장을 나눠 맡았던 교육체계에서 자랐기 때문에 대선 심리에도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남녀 후보가 자리바꿈을 할 수도 있다는 것. 가령 ‘대통령 후보-박근혜, 부통령 후보-고건’ 식으로 출마할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후보 조합을 놓고 일각에선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군을 점치기도 한다.
대체로 ‘정동영-강금실’이 대권을 거머쥘 것으로 보는 이들은 ‘개혁성’ ‘참신함’ ‘젊음’ 등을 강점으로 꼽는다. 반면 ‘고건-박근혜’ 지지자들은 ‘보수성’ ‘중량감’ ‘안정성’ 등을 그 이유로 댄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여의도 정가 일각에 나도는 가상 시나리오일 뿐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가상 시나리오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잠재 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정치권에 짙게 배어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재의 여야 지도부를 포함한 정치권 인사들은 대체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에 대해 긍정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통령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결국 개헌 논의 결과에 따라서 대선 구도도 정해질 것이다. 따라서 앞서 소개했던 가상 시나리오가 “한편의 소설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치권에선 ‘고·강’ 두 사람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고 전 총리와 강 전 장관이 차기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르고 있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차기 지도자로서의 검증 작업이 없지 않았느냐. 그동안 국민들이 본 것은 총리나 장관 등으로 일할 때의 모습밖에 없지 않느냐”며 “두 사람이 특정 정당의 후보로 정해질 경우 각종 검증 작업을 통해 현재의 지지율이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 세력이 없는 후보들(고건 강금실 등)이 당내에서 세력을 갖고 있는 다른 후보들과 당내 경선을 치룰 경우 승리를 낙관할 수 없다. 2002년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처럼 ‘노풍’과 같은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본선 출마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고건·강금실 신드롬’은 쉽게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올해 67세인 고 전 총리는 2007년 대선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보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그의 ‘대망’을 의심하진 않는다.
이에 비해 강 전 장관은 ‘의도적으로’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여권에선 강 전 장관에 대한 미련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하고 있다. 과연 강 전 장관이 향후 정계입문을 선언할지도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