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는 공천 및 선거제도 개혁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김무성 대표(왼쪽)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고 나서자 문재인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내세워 통 큰 합의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지난 2월 11일 김 대표와 문 대표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경남중·고 동창회에 참석해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차기 대권 경쟁과 맞닿아 있는 내년 총선룰을 두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한치 양보 없는 공방을 펼치고 있다. 김 대표와 문 대표 모두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만큼 대권 교두보인 내년 4월 총선에서 미리 승기를 잡기 위해 당분간 양보 없는 기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내년 4월 총선에 나설 여야 후보를 같은 날 일반 국민이 참여해 선출하는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고 있다.
김 대표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김 대표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정치인생에서 꼭 하나 남기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당원과 국민이 실질적 주인이 되는 정당민주주의의 확립”이라며 “만악의 근원인 공천제도를 혁신해 민주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선거철이 끝나면 어김없이 불거지는 공천헌금과 관련된 잡음이 반복되면서 김 대표의 발언에 공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정당민주주의의 확립’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에 정치개혁 선봉자의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으니 차기 대권주자에게는 매력적인 승부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 공천 방식으로 내년 4월 총선을 치러도 김 대표는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게 정설이다. 기존의 방식처럼 여론조사나 당내경선, 국민참여 경선 방식을 혼합해 객관적 지표로 후보를 선출한다 하더라도 공천은 당내 실력자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당권을 쥔 김 대표에게는 현재의 공천 방식대로 해도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굳이 ‘판을 흔드는’ 오픈프라이머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김 대표는 공천제도의 폐해를 겪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2008년 총선 당시 친박계의 좌장 격이었던 김 대표는 당을 장악한 친이계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했다. 당시 김 대표는 한나라당을 탈당하며 여론조사에서 앞서면서도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 의원이 적지 않다며 당 여론조사 자료를 폭로하기도 했다. 2012년 총선에서는 당의 주류가 친박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선 정치인 배제 방침에 따라 다시 공천에서 탈락했다. 당시 김 대표는 낙천 반발의 구심점으로 평가받았다가 곧 “이번 총선에 불출마한 뒤 정권재창출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하며 극렬하게 반발하는 낙천자들의 목소리를 봉합하고 나섰다. 이듬해 재보궐선거로 다시 여의도에 입성했지만 김 대표는 어찌됐든 공천제도의 폐해로 연거푸 두 번이나 낙천의 쓴맛을 본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권가도에 들어선 김 대표의 홀로서기 과정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면 계파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까지 차단할 수 있다. 당대표로서 다진 기반을 청와대의 입김을 배제시킴으로써 더욱 입지를 단단히 하겠다는 속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로 불거진 계파갈등이 공천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동시에 청와대의 공천 영향력을 봉쇄하겠다는 복안이라는 분석이다.
단순히 김 대표의 대권 수순 밟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성공한다면 ‘공천개혁’의 선봉자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오픈프라이머리는 정치신인보다 현역의원에게 유리한 제도로 평가받기 때문에 현역의원들의 거부감은 거의 없다. ‘개혁 정치인’ 타이틀을 얻는 동시에 현역의원들과 공천갈등 없이 대권가도를 달릴 수 있어 김 대표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김 대표가 던진 오픈프라이머리를 받아든 야권도 셈법이 복잡해졌다. 문 대표 또한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오픈프라이머리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당내 반대기류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던 사이 오픈프라이머리를 전면에 내세운 김 대표에게 정치개혁 선봉의 기세를 건네 준 모양새가 됐다. 문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비례대표 ‘빅딜’을 제안하며 조건부 수용 입장을 밝혔지만 여전히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문 대표가 줄기차게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요구하는 것도 명분은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인구비례에 따라 권역별 의석수를 정한 뒤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다. 특정정당의 지역 독식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만일 문 대표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성공할 경우 역시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새누리당에 불리한 제도라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득표율을 기준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새누리당은 11석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52석에서 141석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과반수가 무너지는 것이다. 김 대표에게는 의석수 감소뿐 아니라 자칫 영남 텃밭이 흔들릴 수도 있는 부담이다. 김 대표가 문 대표의 ‘빅딜’ 제안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이유이기도 하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추진하는 문 대표에게도 노림수는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시행이 되면 문재인 대표의 정치력 강화도 가능할 것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는 것은 지역별로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다. 문재인 대표는 이 점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표의 지역인 부산 쪽 지역에서 자신의 사람들을 비례대표 의원으로 채우는 것이 가능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에서 문재인 대표는 상당한 무게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권 의석수가 늘어나면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문 대표의 대권가도에도 더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