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난 8일 염동연 의원은 상임중앙위원을 사퇴하며 “당에 희망이 없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여기에 중증환자의 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염동연 의원이 상임중앙위원직을 던져버린 것. 당에서는 사퇴 이유에 대해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불과 두 달 전 전당대회에서 집권 여당 서열 2위의 책임을 부여받았던 정치인의 처신 치고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염 의원의 사퇴는 열린우리당의 병세를 사망 일보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출범 후 두 달이 갓 지난 문희상 체제를 비롯해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쇄신 파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용-개혁의 해묵은 논쟁도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당과의 통합, 고건 전 총리 영입 등 정계개편 이야기도 나온다. 염 의원 사퇴에 대한 후유증을 진단해 보았다.
여권의 추락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6월 초 리서치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고작 17.4%였다. 지난 5월 지지율 25.7%에서 8%나 급락한 것이다. 이런 여권의 추락 와중에 염동연 의원이 ‘난데없이’ 당내 서열 2위 자리인 상임중앙위원직을 내놓자 당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내분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왜 염 의원은 어렵게 얻은 복덩어리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일까.
먼저 염 의원이 개혁파와의 갈등에 인내의 한계를 느껴 판을 깨고 나갔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는 지난 4월2일 전당대회에서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한 정권 재창출”을 소리 높여 외쳤다. 하지만 염 의원의 합당 주장에 대해 개혁파에서 ‘난닝구’ 운운하며 그 ‘충심’을 폄하하자 그가 몹시 마음이 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사퇴 기자회견 며칠 뒤 자신의 심경을 밝힌 자리에서 “전북 무주 워크숍(5월31일~6월1일)이 끝난 뒤 유시민 의원과 단둘이 점심을 같이하면서 당의 진로 등을 얘기했다. 정치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선거를 통해 집권해야 개혁도 추진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당과의 통합 필요성을 거론했더니 유 의원은 ‘그러면 나는 당을 같이 못 한다’고 하더라. 정말 커다란 간극을 느꼈고 우리 당에 희망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호남지역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민심이 급속히 이탈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당 지도부 중 염 의원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는 의견도 있다. 여기에 열린우리당 소속 광주·전남 지역 일부 의원들이 악화된 호남 민심에 위기감을 느끼자 염 의원이 총대를 메고 그들을 다독거리려 했다는 것이다.
현재 호남의 민심은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압도적인 지지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 주고 총선도 몰아줬는데 국정의 난맥상이 끝이 없어 보이자 호남 사람들이 그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받은 것 같다. 호남 고속철 개통 연기도 결정적 이유다. 이해찬 총리가 경제성이 없다며 단칼에 대선 공약을 날려버리자 민심이 매우 격앙돼 있다. 여기에 거듭되는 정치적 스캔들에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
||
| ▲ 염동연 의원의 상임중앙위원 사퇴가 정계개편을 불러오면서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을 재촉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청와대 만찬에서 건배하는 노 대통령(오른쪽)과 염 의원. 청와대사진기자단 | ||
염 의원의 사퇴는 향후 정치권 전반에 큰 후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먼저 당·정·청의 전면적인 인적 쇄신 태풍이 불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의 경우 벌써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인선 절차를 거쳐 후임 국정원장과 함께 비서실장도 교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새 비서실장에는 문재인 민정수석 등 노 대통령의 최측근을 전면에 포진시킨다는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런 일각의 주장에 대해 “바깥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청와대 내에선 전혀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상당히 곤혹스럽고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당에 대해서도 ‘지도부 동반 사퇴론’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문희상 의장의 경우 지난 4·30 재보선 참패 뒤 책임론에 시달렸지만 당 혁신론으로 위기를 모면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염 의원이 당직을 사퇴함으로써 문 의장 동반 사퇴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 염동연 의원은 최근 “문 의장이 중심을 못 잡고 있다”, “사퇴 배경이 바로 문 의장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며 문 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당 게시판에는 문 의장도 같이 사퇴하라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는 편이다.
정부쪽에는 ‘7~8월 개각설’이 솔솔 흘러나온다. 여기에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 전면 정비’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개편’ 등도 의제에 오를 전망이다.
염 의원 ‘나비효과’는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도 나온다. 염 의원이 상임중앙위원직을 사퇴한 것도 그동안 민주당 합당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결코 자신의 ‘마스터 플랜’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새판짜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염 의원이 애초에 사퇴가 아닌 탈당을 준비했었다는 정황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는 여권의 총체적 난국 때문에 탈당 카드를 집어넣었지만 언젠가는 결행할 수 있는 마지막 승부수인 셈이다.
호남지역 한 의원이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민주당과의 합당이 이런 식으로 지지부진하면 나도 조기 결심하겠다”고 발언한 뒤 여당 의원 탈당설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탈당설은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의 신호탄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신중식 의원(전남 고흥·보성)은 최근 “연말 연초에 정계개편이 시작될 경우 소용돌이의 중심은 고건 전 총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고 전 총리를 대권후보로 염두에 두고 정계개편을 준비중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 의원의 언급은 탈당설의 실체가 고 전 총리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여당 내부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자칫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후단협’의 탈당 사태와 같은 중대한 국면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계개편 논란은 여권에서 잠자고 있는 대권 후보들을 깨울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고건 전 총리가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정치권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은 4·30 참패를 차기 대권 후보가 선거의 전면에 나서지 않아 박근혜 돌풍을 막지 못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 전 고건 전 총리가 정치권으로 들어온다면 그 대항마로서 정동영 김근태 두 ‘잠룡’에 대한 조기 복귀론이 불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염 의원 사퇴로 장영달 위원이 차기 의장 승계자가 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실용파가 개혁파에게 밀릴 가능성이 크고 그 반작용으로 실용파에서는 정동영 장관에 대한 조기 복귀론을 들고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혁파는 개혁파대로 김근태 장관에 대해 ‘호출 명령’을 내릴 것이다. 차기 대권 주자가 조기에 당에 복귀해 그 동안의 당 혼란을 수습하고 지방선거에 대비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셈이다.
이런 ‘염동연 사퇴-인적 청산-여권 잠룡 복귀-정계개편’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은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만을 앞당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레임덕의 가장 일반적 유형은 차기 주자가 가파르게 부상함에 따라 현직 대통령의 리더십이 급격하게 추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염동연 의원이 상임중앙위원직까지 사퇴하며 노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으려 했던 순수한 ‘충심’이, 주군의 레임덕을 재촉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