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김우중 전 회장. 공항사진기자단 | ||
특히 대우그룹이 영국 런던 내 비밀금융조직인 BFC(British Finance Center:대우 런던법인)를 통해 수출대금 미 회수 등의 수법으로 2백억달러(당시 환율 25조원)의 외화를 해외로 유출했던 과정에서 아직까지도 13억달러(약 1조6천억원) 정도는 그 사용처가 명확하지 않다. 바로 이 부분이 일부 정치인들을 잠 못 들게 하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 검찰이 의욕적으로 수사를 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잃어버린 퍼즐을 다시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 병참기지’ 역할을 했던 BFC와 김우중 리스트의 존재 여부에 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 검사장)는 김우중 전 회장에게 크게 3가지의 혐의점을 적용했다. 회계장부를 조작해 41조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한 것과 금융기관으로부터 10조원을 사기 대출 받은 혐의가 있다. 이 두 가지는 그 동안 혐의점이 대체로 확인됐고 김 전 회장 본인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세 번째 외화 해외 유출 혐의의 경우 향후 정국 폭발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 전 회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영국 런던에 있는 (주)대우의 비밀 금융조직인 BFC를 통해 지난 97년부터 99년까지 해외 금융기관 등의 차입금 상환을 위해 수출대금 미 회수 및 차입금 누락 등의 수법으로 2백억달러(당시 환율기준 25조원)의 외화를 적법한 신고 없이 해외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원래 BFC는 지난 82년부터 99년까지 존재해온 대우그룹의 국외금융을 종합 관리했던, (주)대우 런던 법인 명의로 된 은행 계좌 이름이다. 이곳은 김 전 회장이 유럽을 오갈 때 반드시 들르는 곳이었고 시간이 없을 때는 관계자들을 히드로공항 인근의 호텔로 불러내서까지 결재를 하던, 김 전 회장의 핵심 조직이었다.
이것은 정부의 외환 통제를 받지 않는 외국에 계좌를 만들어 자유롭게 입·출금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지난 93년 ‘세계경영’을 표방하면서부터 BFC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현지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BFC의 중요성도 더욱 커졌다. 또한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금리가 치솟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하락)하자 BFC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면서 김 전 회장이 직접 챙기는 ‘비밀 금고’로 자리잡게 된다. 이렇게 해서 BFC에 입·출입된 금액이 2백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검찰 구속영장에서 밝혀졌다.
그런데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는 이에 대해 “BFC는 (주)대우가 작성한 수입서류를 통해 받은 은행차입금과 수출대금을 받아 계열사에 재분배하는 허브 구실을 했다”고 주장한다. ‘외환관리법상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주)대우의 정상적인 감독 아래 있었고 회계처리도 확실했다’는 게 대우측 주장이다.
▲ 지난 99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 함께한 김우중 전 회장. | ||
사실 지난 2000년 4월 금융감독원 특별감리단이 BFC 자금에 대해 낱낱이 조사한 적이 있었다. 금감원 이성희 국장을 중심으로 6명의 요원이 BFC를 조사한 뒤 전산시스템을 포함한 모든 BFC 계좌 관련 자료를 서울로 가져갔다. 이 국장은 당시에 대해 “갑갑했다. 말이 특별조사반이지 런던 BFC에 회계장부나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지부터가 걱정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장부는 비교적 잘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특별조사는 BFC 전담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7일 밤낮으로 계속됐다고 한다.
금감원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2001년 당시 검찰은 BFC 비자금 2백억 달러 중에서 1백57억달러는 외화차입금 상환에 쓰였고 30억달러는 국외사업 투자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했었다. 하지만 나머지 13억달러에 대해서는 그 용처를 찾지 못했다. 그에 대한 금융 자료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측에서는 이 돈이 모두 차입금에 대한 이자로 지급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시사저널>은 지난 2000년 6월 보도에서 ‘BFC가 해외 차입금에 대한 이자 지급액 34억 달러 가운데 14억달러에 대한 사용처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에 관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전산으로 기록된 20억 달러 외에 14억 달러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검찰 수사와 1억 달러 정도 차이는 있지만 <시사저널>은 이자로 지급된 14억원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가 확대해야 한다고 당시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백기승 전 이사는 “입출금 내용은 모두 전산기록으로 보존돼 있지만 90년 이전은 손으로 기록했다”며 “13억달러는 수기장부에서 누락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런던 법인 BFC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 A씨는 “지난 2000년의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A씨는 “지난 수십 년 동안 BFC가 이자로 지급한 액수가 정확하게 얼마이고, 자금 조달할 때 당시의 이자율이 어느 정도인지, 이런 중요한 사항들이 모두 대우 관계자들의 일방적 주장에 의해 계산됐다. 차입금을 빌렸을 때 이자율에 관한 사항 등을 계약 상대방에게 확인해야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겠는가. 그것도 아니고 몇 개를 대충 체크를 해서 전체 액수를 가늠하는 정도로 대충 액수를 맞춘 것으로 안다. 금감원이 일부러 조사를 대충했다기보다 애당초 자료가 워낙 방대해 규명작업이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행방이 불명확한 13억달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자금 중 일부가 김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했거나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1년 재판 과정에서 이 돈 가운데 일부가 김 전 회장이 제 3자 명의로 된 프랑스 니스 별장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김 전 회장 개인의 카드 사용 대금, 자녀 유학 자금, 미국 아파트 관리비 및 세금도 이 계좌에서 빠져나갔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BFC 자금이 ‘다용도’로 사용되었다면 그 돈 가운데 일부가 정치인에게로도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의 A씨는 이에 대해 “김우중 리스트라는 게 따로 있겠나. BFC 비밀 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국내의 누구에게 송금했던 내역도 나올 것 아닌가. 그것을 따라가 보면 ‘리스트’ 정도는 금방 만들어진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 현재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이런 의혹에 대해 무척이나 억울해하고 있다. 절차법(외환관리법)을 위반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해외법인을 살리는데 사용했고, 개인적으로도 착복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검찰의 사용처 규명은 지난한 작업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2001년 수사 때에는 대우 분식회계사건 전모를 파악하느라 BFC 실체를 깊이 있게 수사하지 못했다”며 “전표 등을 확보한 만큼 불분명한 돈 사용처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다시 살펴볼 것”이라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금융자료 보존기한이 5년이기 때문에 새로이 계좌추적을 실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고전이 예상된다.
더욱이 검찰의 수사 의지와 김 전 회장의 ‘입’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김 전 회장이 입을 열지 않으면 수사 진전은 힘들 것으로 본다. 일단 검찰도 국민을 의식해 수사를 한다고 발표했지만 내부적으로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히면서 “김 전 회장이 귀국할 때 사전조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돈을 쓴 사람이 입을 열지 않으면 어떻게 규명하나. 그 부분 말고도 혐의 내용 인정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검찰이 BFC에 대해 무리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