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0재보선 압승 이후 당내 위상이 강화된 박근혜 대표가 ‘코드 인사’를 펼치고 있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일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4·30 재-보선 ‘압승’ 이후 당내 위상이 강화된 박 대표가 최근 단행된 당직 개편에서 당내외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사람’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을 중용하거나 경질 요구를 손수 ‘제압’하면서다. 비주류를 축으로 당내 일각에선 “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 인사’를 줄곧 비판해 왔지만 실제로는 노 대통령 못지 않게 ‘패거리 정치’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성토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여연) 소장에 영남 출신 보수성향 중진(3선)인 김기춘 의원을 임명한 것은 ‘박근혜식 코드인사’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신헌법을 기초한 실무자로 중앙정보부 국장을 지냈고, 5, 6공에서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을 지낸 김 의원은 경력에서 보듯 당내 이념적 스펙트럼상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김 의원은 지난 92년 14대 대선 말미에는 부산지역 기관장들과 만나 자신의 고교(경남고), 대학(서울대) 선배인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 대한 지원을 ‘모의’한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을 주도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또 2004년 3·12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때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안 가결을 주도했던 이력도 갖고 있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측에선 이 같은 전력을 가진 김 의원을 박 대표가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연 소장으로 끝까지 밀어붙여 관철시키자 “박 대표가 친정체제 구축에 혈안이 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박 대표가) 제 정신이 아니다. ‘재보선 독약론’이 현실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원색적인 성토가 나올 정도다.
수요모임 소속 한 의원은 “정권탈환의 산실이 되어야 하고, 당의 미래 비전을 내놓아야 할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는 여연의 수장에 김 의원을 임명되면서 그동안 벌여왔던 ‘수구꼴통’ 이미지 탈색작업이 허사가 되어 버렸다”며 “그나마 성과라면 이번 일로 박 대표의 과거회귀, 강경보수 정치성향이 대내외적으로 확인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주류내에선 또 김 의원이 얼마전까지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다 ‘타의에 의해’ 물러난 정수장학회와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실 인사’라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김 의원은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았던 인사들의 모임인 ‘상청회’의 핵심멤버.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고, 최근 국정원 과거사 규명작업 과정에서 5·16쿠데타 후 군부가 당시 김지태 삼화고무 사장이 운영하던 부일장학회를 ‘강탈’한 것을 토대로 성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한 재선 의원은 “당내외에 능력있고 도덕성, 개혁성을 갖춘 인물들이 수두룩한데도 박 대표가 굳이 ‘흠집투성이’인 김 의원을 여연 소장에 앉힌 것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 이어 상청회란 또다른 열성 지지자 조직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적지않다”고 지적했다.
▲ 김기춘 의원(왼쪽), 전여옥 대변인. | ||
박 대표는 김 의원을 여연 소장으로 인선한 배경에 대해 “3선의 중진의원이고 균형감각과 경륜이 있는 분으로 정책개발에 전념할 적임자다”라며 ‘코드 인사’라는 비판엔 “인사원칙에 있어 코드나 이런 것은 전혀 없다. 어떤 분이 여연 소장으로 가장 적합한가 그 점만 봤다”고 반박했다.
핵심측근인 유승민 대표 비서실장도 기자들과 만나 박 대표의 인사원칙을 ‘시스템 인사’라 강조하며 엄호에 나섰다. 유 실장은 “박 대표가 모든 인사를 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한번 정하면 바꾸지는 않는 편이다. 그리고 인사를 결정할 때 당 지도부와 결정하고 운영위원회를 통해 추인 받는 ‘시스템 인사’를 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박 대표가 계파정치를 거부한다지만 역으로 노 대통령처럼 인맥의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에 대해 “노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안희정 이광재처럼 측근들이 있어 결국 그들에게 자리를 줘야 하는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중도보수 세력에서 인사를 할 수 있어 오히려 자유롭다”는 말로 ‘정실 인사’ 주장을 반박했다.
‘박근혜가 사랑하는 여자’라는 평가를 낳고 있는 전여옥 대변인에 대한 태도도 박 대표의 용인술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대졸 대통령’ 발언으로 당내외에서 경질요구가 빗발쳤던 전 대변인을 박 대표가 본인이 대신 사과하면서까지 ‘감싸고 도는’ 배경을 놓고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재임기간이 1년4개월이 넘은 전 대변인 본인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후에도 박 대표가 유임쪽으로 가닥을 잡자 논란이 더욱 더 커져가고 있다.
박 대표의 전 대변인에 대한 ‘애정’에 대해 당내 주류·비주류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주류측의 유승민 대표 비서실장은 “전 대변인이 여성 정치인에다가 박 대표를 그림자처럼 수행하기 때문에 ‘박 대표의 생각을 좌지우지한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전 대변인이 언론에 노출된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고 대변인으로서는 억울할 일이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비주류의 시각은 딴판이다. 영남권의 한 중진은 “시집도 안간 박 대표가 강남의 널찍한 집에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수시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당내에 같은 여성인 전 대변인 말고 누가 있겠느냐. 더구나 전 대변인이 ‘한나라당 대변인이 아니라, 박 대표 개인의 대변인’이란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공개적으로 충성심을 과시하고 있는 터에 그를 내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수족을 스스로 자르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비주류측은 박 대표가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에 대해선 ‘확실히’ 챙기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들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데 대해 ‘포용력 부재’를 비판한다. 실제 당내에선 소장파 내 전략통으로 한동안 잘 나가던 초선 P의원이 박 대표와 갈등을 빚으면서 당직을 내놓고 외곽으로 전전했던 경우나 부대변인으로 있던 J씨가 박 대표에 ‘찍혀’ 소외당하다 결국 이명박 서울시장 캠프에 둥지를 튼 배경을 놓고 뒷말이 적지 않았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박 대표는 밖으론 온유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론 당내 누구보다 피아(彼我) 구분을 분명히 하는 스타일이다. 박 대표가 대중적 인기만 믿고 당내 비판세력을 포용하기 보다 계속 몰아붙이기만 한다면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