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거부권 파동으로 소원해진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이에 화해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8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 대표가 국방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유 전 원내대표를 옆자리로 불러 악수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7월 8일 국회에서 원내대표 사퇴를 밝힌 유승민 의원. 연합뉴스
김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는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관계로 통했다. 지난해 정국을 강타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청와대 한 인사가 ‘K(김무성)-Y(유승민) 라인’을 그 배후로 지목하기도 했다.
지난 2월 2일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스스로는 비박이 아니라지만 다들 비박계로 여겼던 유 전 원내대표의 승리로 탄생했던 ‘K-Y 라인’ 비박계 지도체제는 5개월간 새누리당을 이끌었다. 그러나 국회법 거부권 파동으로 둘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9월 2일 저녁. 국회 동여의도(MBC 인근)의 한 고급 음식점에선 대구지역 국회의원 11명(이한구 제외)과 김문수 수성갑 당협위원장이 참여하는 만찬이 열렸다. 그런데 깜짝 손님이 등장했다. 바로 ‘무대(김무성 대표)’였다. 참석자들 전언을 종합해 재구성하면 대략 이런 대본이었다.
배경 : 류성걸 의원이 최근 대구시당위원장에 선임됐다. 시당위원장직은 총선 승리를 진두지휘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는다. 그런 차원에서 ‘취임 축하연’이 열린 것이었는데 그 자리에 류 위원장이 김 대표를 초대한 것이다.
원래 이 약속은 오후 7시였지만 유 전 원내대표 일정 탓에 한 시간 당겨졌다고 한다. 김 대표 등장까지만 해도 김문수 위원장의 수성갑 ‘수성’ 이야기(현재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전 최고위원이 나선 상태)로 주제가 모였다. 오후 6시 35분이 됐다.
(문이 열리며 김 대표 등장)
김무성: 아이고, 자리에 이렇게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류성걸: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악수하며 인사. 김 대표는 예우를 받으며 상석에 착석. 시간이 많이 없다면서 다들 건배사를 김 대표에게 청함)
김무성: 뭘 건배사까지…. 흠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무엇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를 제가 못 막아서 미안합니다.
언론에서는 ‘사퇴를 못 말려’ ‘제가 못되게 해서’ 등등의 워딩(wording)이 전언으로 보도됐지만 정확한 김 대표 멘트는 ‘사퇴를 못 막아’였다.
(다들 유 전 원내대표를 쳐다보며 화답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유 전 원내대표는 ‘뭘 저까지’라며 쭈뼛쭈뼛 일어서며 주위를 둘러본다)
유승민: (주위를 둘러보며) 지금 우리 김 대표가 차기 공천제도로 오픈프라이머리를 정치생명을 걸고 밀고 계시다. 건배사는 ‘우리 대구는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를 지지합니다’로 하겠다. 지지합니다.
(이 때 한 의원이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를 보며 ‘조 부대표는 친박인데 오픈프라이머리를 지지하는 것 맞냐’고 하자 조 부대표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에 여러 의원이 ‘조원진 빼고 우리 다 지지하는 걸로 하자’면서 화기애애하게 건배사가 마무리된다. 이후 다시 수성갑 이야기로 돌아간다)
대본에서 보듯 김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는 아직 어색한 관계다. 여러 전언을 종합하면 김 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에게 ‘미안함’이 있고, 유 전 원내대표는 일종의 배신을 당했다는 ‘마뜩찮음’이 있다. 거부권 초반 김 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 사퇴를 막겠다고 공언했지만 말미에 가선 사퇴 수순을 정리해주는 ‘청와대 해결사’ 역할을 했다. 게다가 유 전 원내대표와 러닝메이트였던 원유철 정책위의장을 후임 원내대표로 앉히는데 역할도 한다.
둘은 사석에서 ‘형님’ ‘우리 승민이’ 하던 관계였다. 경어와 반말이 상황에 따라 뒤섞이는, 남이 보면 ‘절친’ 그 이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캠프와 죽기 살기로 싸웠고 그 이전부터 정치판에서 함께 뒹군 사이다.
그런 까닭에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한 김 대표의 미안함과 애틋함은 그 이전에도 한번 연출된 바 있다.
당직자가 급히 김 대표에게 가 귓속말로 정두언 국방위원장이 늦는다고 보고했다. 김 대표는 한 바퀴 둘러보더니 유 전 원내대표와 눈이 마주치고는 손짓을 했다.
“유승민 위원, 이쪽으로 오시죠. 이쪽에 와서 앉으소. 국방위원장이 늦는다고 합니다.”
유 전 원내대표가 “국방위원장이 곧 오신다는데”하며 손사래를 치자 거듭 김 대표가 요청했고 김 대표 옆에 의자가 하나 더 생긴다. 그렇게 둘의 ‘투샷’이 연출됐고 악수하는 장면이 그날 여러 보도를 통해 전파됐다. 이후 정 위원장이 왔고 김무성, 정두언, 유승민 순으로 앉아 회의가 진행됐다.
거부권 파동 이후 여의도 정가 호사가들이 점쳤듯 김 대표는 최근 친박계와 시시때때로 국지전을 벌이고 있다. 순망치한, 즉 유승민이 빠져 김무성의 자리가 위태로울 것이라는 예측대로 친박계가 ‘다이렉트로’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를 걸고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김재원 청와대 정무특보와 이정현 최고위원이 오픈프라이머리를 두고 ‘실기(失期)’를 연일 거론하자 참다못한 김 대표는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최근 의원연찬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당론으로 재확인하며 박수로 재 추인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친박계는 20대 총선 공천을 손쉽게 받을 수 없는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선 반대 입장이어서 김 대표와 친박계의 샅바싸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를 두고 정가의 한 소식통은 “김무성과 유승민이 추후 어떤 화학적 작용을 일으킬지는 내년 총선 이후에 달렸다”면서 “만약 유승민이 20대 국회에 살아 돌아온다면 곧바로 대선 국면에서 관계 모색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극보수층으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려는 김무성, 사퇴 국면에서 중도층에다 진보진영 일부까지로 확장 가능성을 연 유승민을 두고 ‘둘이 붙으면 승리요 떨어지면 필패’라는 말이 들리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까닭에 김 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를 공사석에서 알뜰히 챙겨 예전과 같은 형님 동생 관계로 돌리려 하고, 유 전 원내대표는 20대 총선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로 김 대표를 멀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둘이 조만간 관계를 회복할 것으로 본다. 이는 친박계가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이기도 해 향후 계파갈등의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