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서울시장 | ||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가 여권 발 연정 제안을 애써 무시하는데 반해 MB측에선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당내 대표적인 MB계 인사로 꼽히는 홍준표 의원(당 혁신위원장)이 7월14일 한 방송을 통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영남의 상징인 한나라당과 호남의 상징인 민주당의 합당이며 그 시기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힌 게 발단이 됐다.
이른바 ‘한·민 합당론’은 홍 의원의 발언 이후 MB측과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간의 제휴설이 제기되면서 더욱 더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TK(대구·경북) 출신으로 김대중(DJ) 정권에서 초대 비서실장·여당 대표를 지낸 김 전 대표가 MB측과 손잡고 한나라당과 민주당간 통합의 메신저 역할을 맡게 될 것이란 얘기가 양측 주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 주목되는 것은 양당간 합당론의 중심에 서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 고려대 인맥의 핵심들이라는 점이다.
MB와 김 전 대표, 합당론의 물꼬를 튼 홍 의원 모두 고려대 동문이다. 이를 두고 ‘한·민 합당론’을 둘러싼 최근의 흐름이 남다른 결속력으로 정평이 난 야권의 고려대 출신들이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MB를 중심으로 결집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김중권 제휴설
실제 한나라당 내에선 이전부터 MB를 정점으로 한 당내 고려대 인맥의 향배가 주목을 받아 왔다. 특히 박 대표를 축으로 한 주류측에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둘러싼 당내 갈등과 당 혁신위 운영 과정에서 자신들과 대립각을 세워온 MB측에 유독 고려대 출신들이 많았던 점을 반(半) 공개적으로 언급하곤 했다.
주류측의 한 핵심인사는 “혁신위의 경우 위원장인 홍 의원이 위원 인선 과정에서부터 고려대 출신들을 대거 기용해 내부적으로 논란이 적지않았다. 총 간사를 맡았던 박형준 의원과 이병석 의원, 원외를 대표해 참여한 권영진 김선동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홍 의원과 함께 ‘대선 1년6개월 전 당권·대권 분리’ ‘조기 전당대회 소집’ 등을 뼈대로 한 혁신안 성안을 주도했고, 이 때문에 당내에선 혁신안을 놓고 ‘MB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안’ 이라는 문제제기가 나오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주류측에선 민주당과의 합당론을 불지피고 나선 중심세력이 당내에선 홍 의원, 당외에선 민주당 김 전 대표이며 이들이 결국 MB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김 전 대표는 한때 DJ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잘나갔던’ 인물인 것은 맞지만 지금은 사실상 ‘호남당’이 되어버린 민주당 내에서 기반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DJ 재임 때부터 두터운 호남 인맥의 벽에 가로막혀 한계를 분명히 한 그를 지금 MB측에서 민주당과의 합당을 논의하기 위한 ‘고리’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난센스다. ‘김중권 카드’를 통해 노리는 것은 실제론 민주당과의 합당 추진이 아니라 향후 MB의 정치적 외연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 김 전 대표가 MB측과 손잡고 민주당과의 합당을 모색할 것이란 얘기가 정치권에서 제기된 데 대해 민주당의 반응은 무관심을 넘어 “불쾌하다”는 단계다. 한화갑 대표는 특히 김 전 대표가 지난해 4·15 총선 당시 민주당 공천으로 서울 마포에서 출마하려다 ‘탄핵 역풍’에 놀라 탈당한 후 무소속으로 고향인 경북 울진·봉화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사실을 거론하며, “김 전 대표는 현재 당원도 아니며 그와 최근 만난 적도 전혀 없다. (한나라당과의 통합은) 공감대가 형성되면 민주당에서 나설 일이지 누구를 시킬 일이 아니다”는 말로 ‘김중권 역할론’에 선을 분명히 그었다.
▲ 이명박 시장측과 김중권 전 대표의 제휴설이 제기되면서 ‘한·민합당론’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김중권 전 대표, 오른쪽은 홍준표 의원. | ||
연대 파트너로 설정한 민주당측의 반응이 이처럼 냉담한 만큼 관심은 김 전 대표와의 제휴를 통해 MB측이 노리는 것이 무엇이냐로 모아진다. 한나라당 내에선 일단 MB와 대학 선배이자 같은 고려대 기독교우회 회원인 김 전 대표가 정치적 뿌리는 민정계이면서도 DJ정권에서 요직을 거쳐 호남권과도 어느 정도 얘기가 통할 수 있는 다양한 커리어와 배경을 가진 인물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그만큼 당내외 세 확산을 추진하는데 있어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라는 얘기다. 주류측의 한 인사는 “혁신안이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측의 당내 위상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확고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 MB측은 이제부터라도 바깥에서 ‘우군화’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같은 TK에 고려대 동문이자 MB측의 취약지역인 호남권과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는 김 전 대표가 여러모로 손을 내밀기에 적합한 대상이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 인사는 또 “MB가 최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양당 구도가 아닌 ‘제 3신당’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도 따지고 보면 당내에서 ‘박근혜 대세론’을 깨뜨리기가 여의치 않자 다른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라며 “특히 차기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를 이미 선언한 MB로서는 지금부터 한나라당이란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대안들을 검토하지 않으면 자칫 내년 지방선거 이후 본격화될 대선 국면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선 MB가 ‘김중권 카드’를 통해 당내 보수세력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민주당과의 합당 필요성이 정형근 이상배 이방호 의원 등 영남권 보수 중진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점에 비춰 이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위해 MB측이 합당론에 가세했다는 것이다.
제3신당론에 긍정 입장
영남권 한 중진은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당 출현만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만큼 당내에서도 하루 빨리 민주당과의 합당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견지에서 MB측에서 합당론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선다면 얼마든지 연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측의 한 인사도 “여권이 연정이다, 개헌이다 하며 불리한 국면을 탈출하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당내에서 여권의 의도에 놀아나는 일이 나서는 안된다”면서도 “MB측과 영남 보수세력들이 합당을 매개로 손을 잡게 되면 소장파와도 소원한 관계인 박 대표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