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 | ||
이 둘은 하나로 통합될 가능성이 있다. 즉 8·15 광복절에 지금보다 더욱 구체화한 대연정 메시지를 정치권과 국민에게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여권 내에서는 노 대통령이 ‘연정과 선거제도 개혁’ 양자의 결합을 관철시키기 위한 ‘통치권 이양 절차’의 로드맵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작심하고 한 연정론 제의를 한나라당이 너무 빨리 내쳤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한나라당이 너무 빨리, 너무 단호하게 결론을 내린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은 또 “한나라당이나 다른 야당들이 그냥 대통령이 한 말이니까 정치적 복선이 있겠거니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그렇게 간단하게 게임으로 내놓은 제안이 아니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고민의 초점은 한국 정치현실, 더 구체적으로는 선거제도에 놓여져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혁을 아무리 하려 해도 안되니까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꼭 이 선거제도는 고치고 싶다, 국가 장래를 위해 이것은 꼭 하고 싶다는 뜻을 연정론을 빌어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테면 대연정의 제안은 소위 ‘반대급부’이며, 진정으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선거제도 고치자’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 의원은 “노 대통령이 선거구도에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우리 역사와 우리 정치를 매우 구조적으로 깊이 고민한 결과”라며 “그 고민의 궤적을 추적해 보면 연정론을 고리로 한 지역구도 극복과 이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해답에 이르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휴가를 끝내고 복귀하는 노 대통령이 정치권을 강타할 한방으로 들고 나올 의제는 두 가지로 보인다. 그 하나는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창출 방안이다. 선거제도 창출과 관련해 훨씬 정교하고 치밀한 작품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정론 관철을 위한 ‘한층 깊은 차원의 결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이 자신의 연정론 제안과 관련한 진정성을 보이기 위한 ‘모종의 결단’을 내비칠 가능성이 있다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는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연정론이 결코 사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국가의 장래를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의 산물임을 입증하기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가 행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재선 의원은 “연정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통치권 이양 절차’의 로드맵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노 대통령은 팔을 걷어붙이고 연정론 홍보에 나섰다. 여권 지도부도 총출동했다. 내부의 거센 불만과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노 대통령의 일을 거들고 나오는 모습.
지난달 29일 오전 10시30분. 노 대통령이 갑자기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전날 열린우리당 당원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공개한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 제안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히기 위해서였다.
이날은 3박4일의 일정으로 휴가를 가기 하루 전.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 제안은 여소야대 및 지역주의 구도 등 비정상적 정치구조 청산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임을 강조했다. 한나라당과 다른 야당들의 과감한 결단도 아울러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초헌법적 또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일각의 비판, 정책 및 이념의 정체성 시비,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권력이양 제안의 문제점 등 대연정 구상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저녁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당·정·청 수뇌 ‘12인 모임’이 열렸다.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 중심의제였다. 참석자들은 노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발언 중 “정체성이 아주 다른 정당 간의 대연정이 성공한 역사가 있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역사적으로 대연정에 성공한 사례보다 오히려 작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중점 토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연정의 현실성과 두 이념적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 집중적인 논의를 한 것인데, 1990년 3당합당까지 들먹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15년 전 3당합당 당시 역사성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지역으로 당을 나눠 입당하는 바람에 지금의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책노선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그런 점에서 양당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다는 등의 말이 오갔다”고 밝혔다.
연정론의 위헌성에 대해서도 장시간 토론이 이뤄졌다. 연정론 전파의 장애요인에 대한 집중점검이 있었던 셈이다. 이날 12인회의에는 열린우리당에서 문희상 의장과 원혜영 정책위의장, 정부에서 이해찬 총리와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복지, 정동채 문광, 천정배 법무장관, 청와대에서 김우식 비서실장과 김병준 정책실장, 이강철 시민사회수석, 문재인 민정수석 등이 참석했다.
열린우리당은 이어 대연정론과 관련한 당내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오는 12일 당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노 대통령의 핵폭탄 구상 공개를 앞둔 핵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는 분위기다.
진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