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8일 경찰관들이 실종된 여중생 엄 아무개 양의 시신이 발견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배수로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현재 배수로는 소흘터널 공사로 철거됐다(아래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03년 11월 5일 오후 6시 20분께,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 사는 엄 아무개 양(당시 15)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남긴 마지막 말이다. 엄 양은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엄 양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근처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귀가하던 길이었다. 엄 양의 집에서 학교까지는 불과 800여m. 엄 양의 걸음으로도 10분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다만 엄 양이 귀가 하던 길은 인근 주민들만 아는 지름길로,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길이었다.
엄 양의 실종 사실이 알려지자, 포천시 전역에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시작됐다. 경찰은 인근 지역을 샅샅이 뒤졌고, 군인이었던 엄 양 아버지의 요청으로 50여 명의 군인들도 수색에 참여했다. 포천시 주민들도 엄 양 찾기에 나섰다. 포천 청소년선도위원회와 방범연합회 등 300여 명으로 구성된 ‘엄 양 찾기 주민 모임’도 엄 양 실종 직후부터 전단지 16만 장과 현수막 47개를 만들어 의정부·동두천·남양주·파주 등지를 돌며 직접 배포했다. 당시 청소년선도위원회 소속이었던 소흘읍사무소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만나 이렇게 회고했다.
“주민들은 ‘내 아이가 사라졌다’는 생각으로 엄 양 찾기에 나섰다. 실종 보름쯤 뒤 전남 목포와 강원도 강릉 등에서 ‘엄 양과 비슷한 여학생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와 직접 해당 지역으로 찾아간 주민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거짓 제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모두가 허탈해 했다. 가족과 경찰, 주민들의 노력에도 엄 양의 흔적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실종 23일 후인 11월 28일, 엄 양 집에서 7.4㎞가량 떨어진 의정부시 민락동과 낙양동 일대에서 엄 양의 가방과 신발, 양말, 교복 넥타이, 노트, 털실장갑 등 소지품 13점이 발견됐다. 이어 12월 22일엔 의정부시 자일동 도로확장공사 현장 인근 계곡의 쓰레기 더미에서 엄 양의 휴대전화가 발견됐다.
엄 양의 소지품은 보란 듯이 쓰레기 더미 가장 위에 놓여있었고, 이 가운데 엄 양의 이름이 있는 부분은 모두 찢겨나간 상태였다. 당시 엄 양 찾기 주민모임에 참여했던 이 아무개 씨(58)는 “한겨울에 장기 실종된 상황에서 소지품이 발견되자 엄 양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생사를 떠나서 수색은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 주변 요도.
경찰은 모든 수사력을 동원해 엄 양을 찾았다. 사건을 담당하던 포천경찰서는 기존 1개였던 수사전담반을 2개 반으로 확대했고, 수색 범위도 점차 넓혀갔다. 그리고 해를 넘겨 2004년 2월 8일 오전 10시 15분께,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5리의 한 배수로에서 엄 양의 사체가 발견됐다. 실종 96일째였다.
사체가 발견된 곳은 엄 양 집에서 직선거리로 6㎞,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넘어가는 축석검문소로부터 광릉수목원 방향으로 500m 떨어진 곳으로, 왕복 2차선 도로에서 20m 안으로 들어간 곳이다. 엄 양의 사체는 지름 60㎝, 길이 7.6m의 콘크리트 배수관 안으로 발바닥을 밖으로 향한 상태로 누워있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전직 형사의 얘기다.
“배수로 입구에 29인치 TV 포장 박스가 허술하게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 포천서 남부지구대 관계자가 엄 양을 발견했다. 엄 양의 양손은 얼굴 쪽으로 모아지고 다리는 배 쪽으로 웅크린 자세였다. 옷은 모두 벗겨져 있었다. 얼굴에서 가슴 부위 정도는 부패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결박이나 목 졸림 등의 외상 흔적은 없었다.”
여기에 엄 양의 손톱과 발톱에는 진분홍색 매니큐어가 불규칙적으로 칠해져있었다. 앞서의 전직 형사는 “매니큐어를 직접 칠했거나 서비스를 받았다고 보기에는 조잡한 상태였다. 손톱 절반만 칠해진 부분이 있는가 하면 윗부분까지 칠해진 것도 있었다. 엄 양은 평소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경찰은 제삼자가 급하게 칠한 것으로 추정했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엄 양의 사체에서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엄 양이 나체로 발견됐다는 점에 주목해 범인이 성폭행 후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정액은 검출되지 않았다. 여기에 직접 사인마저도 가려낼 수 없었다. 당시 국과수는 “목 부위가 심하게 훼손돼 목 졸린 흔적이 있었는지 감정할 수 없었다. 엄 양 오른쪽 머리 부위에 약간의 출혈현상이 발견됐지만, 사인과의 관련성 여부는 논할 수 없는 정도”라고 밝혔다.
앞서의 전직 형사는 “오랜 수색 끝에 엄 양을 찾아냈지만 범인을 붙잡을 방법이 없었다. 현장에 아무런 증거가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유일한 단서는 매니큐어뿐이었다”며 “이 때문에 직접 손톱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해 보는 형사가 있는가 하면, 매니큐어 제조회사에 각 매니큐어의 성분을 넘겨받아 빨간 매니큐어를 사간 30대 남성을 추적한 경찰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사건과의 접점을 찾지 못했다. 제보 전화도 없었고 심지어 장난전화마저도 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집중 수사가 이어졌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2003년 7월 엄 양이 실종된 인근 지역에서 남성 3명이 여중생 2명을 납치했다 풀어준 확인하고 이들을 검거했으나, 엄 양 사건과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또 엄 양의 실종시간대에 같은 길을 걸었다는 인근 주민 임 아무개 씨와 오 아무개 양을 상대로 한 최면 수사에서 “서울 번호판의 카니발 차량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해 추적했지만, 역시 사건과는 관련이 없었다. 결국 “범인은 성도착증 환자다”, “혐의를 피하기 위해 성도착증 환자를 가장한 지능범이다”라는 추정과 의구심만 커졌다.
올해로 경찰이 ‘얼굴 없는 범인’과 숨바꼭질을 한 지 11년째. 당시 이 사건은 희대의 살인사건으로 연일 언론에 보도됐지만, 아직까지도 특별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목격자, 제보 전화도 없다. 수사 진행 중 두 명의 관할 경찰서장이 교체되거나 파면됐고, 피해자의 집에서 잠까지 자며 수사에 열정을 보였던 수사반장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들은 현재 뿔뿔이 타 지역으로 흩어지거나 퇴임했다.
그럼에도 수사는 계속될 예정이다. 최근 이 사건은 포천경찰서 강력1팀으로부터 경기지방경찰2청 장기미제 전담수사팀으로 인계됐다. 경기2청 임학철 강력계장은 <일요신문>과 만나 “엄 양 사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사건 자체가 종결된 것이 아니기에 그동안 포천경찰서에서 지속적으로 수사를 해오고 있었다”며 “이번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계기로 전담 수사팀이 보강될 예정이다. 그동안 포천서에서 수사한 자료를 토대로 하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재수사해 범인을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지난 9일 엄 양의 어머니를 만났지만 그녀는 언론과 경찰에 강한 불신감을 표출했다. ‘태완이법’을 계기로 강화되는 경찰의 수사가 죽은 엄 양은 물론 가족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4가지 단서로 본 살인범의 정체 면식범? 소지품의 이름 모두 지웠다 엄 양 살인범에 대한 흔적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당시 경찰이 범인을 추론하기 위해 활용한 단서 중 4가지를 공개한다. [1] 엄 양의 이름이 사라진 채 발견된 소지품 엄 양의 소지품은 모두 실종 당시 그대로 발견됐으나, 이름이 있는 부분은 모두 찢어진 채였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전직 형사는 “일부에선 이 점을 두고 범인이 엄 양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추정했다”며 “엄 양의 이름이 알려지면 자신이 지목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찢어버렸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찰은 당시 엄 양의 선배였던 정 아무개 군을 용의자로 지목해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2] 배터리가 분리된 엄 양의 휴대폰 당시 경찰은 엄 양의 휴대폰 배터리가 분리돼 있어 위치 추적이 어려웠다고 한다. 앞서의 전직 형사는 “엄 양 휴대폰은 배터리를 분리해 버리면 휴대폰 위치 추적이 어렵다. 통신사에 위치 등록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당시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휴대폰과 배터리를 분리해 쓰레기 더미에 버렸다는 것으로 봤을 때 ‘범인이 범행 전부터 계획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3] 교복과 속옷의 행방 엄 양의 교복과 속옷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당시 경찰은 교복과 속옷을 범인이 가지고 갔을 것으로 보고 범인이 변태성욕자인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즉, 교복과 속옷을 하나의 기념품으로 생각하고 가져갔다는 것. 하지만 앞서의 전직 형사는 “초기에는 변태성욕자라고 의심했으나, 사실은 이를 위장한 지능범이라고 추정했다. 현장에 자신의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 범인은 성범죄자? 배수로 근처에선 콘돔과 정액, 체모가 붙은 휴지조각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엄 양이 성범죄 피해를 입고 살해된 것으로 추정했지만, 국과수 부검결과 정액 음성 반응이 나왔다. 성폭행이나 성관계의 흔적 등 부패해 훼손된 점 외에는 외상의 흔적이 없었다. 앞서의 전직 형사는 “일각에서는 범인이 성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어린 여학생을 노렸다고 분석했지만, 관련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 |
같은 시기 실종·납치사건 살펴보니 <살인의 추억> 모방 냄새가… 엄 양의 사체가 발견된 당시, 화성 연쇄살인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을 흉내 낸 연쇄살인 사건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배수로에서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 해당 영화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엄 양이 발견된 다음날인 지난 2004년 2월 9일 보험설계사 유 아무개 씨(여·당시 47)가 1월 20일 실종됐다는 소식과 2003년 7월 이 지역 여중생 2명이 남자 3명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이런 추정이 힘을 얻는 듯했다. 당시 언론도 두 사건의 관련성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건과는 연관이 없었다. 보험설계사 유 씨는 실종 33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앞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오 아무개 씨(36)가 서울 도봉구의 한 모텔에서 자살한 상태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져 있었다. 오 씨는 실종된 유 씨와 실종 당일 서너 차례에 걸쳐 통화한 인물로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 결국 모텔에서 오 씨가 가족 앞으로 쓴 유서와 함께 실종된 보험설계사 유 씨를 살해한 용의자 2명이 검거되면서 엄 양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유 씨의 금품을 빼앗기로 한 뒤 유인했으나, 유 씨가 얼굴을 알아보자 목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엄 양 사체 발견 초기인 2003년 7월 발생한 여중생 2명 납치 사건과 엄 양 사건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피해자 등의 진술을 통해 납치 사건 용의자 박 아무개 씨(당시 24)등 일당 2명을 검거했으나, 이들이 소유한 차량이 실종 당일 현장에서 발견된 차와 종류가 달라 엄 양 사건과의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이후 2009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이 검거되자 경찰은 엄 양 사건과의 연관성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강호순이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한 반면 엄 양은 여중생이라는 점, 엄 양이 매장되지 않고 유기된 점, 강호순이 범행을 저지른 곳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점 등 범행 수법 상 차이를 보여 엄 양 사건과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일단락됐다. [문] |
‘태완이법’ 적용 사건들 택시기사 살인 등 모두 200건 넘어 ‘태완이법’ 적용 대상은 지난 2000년 8월 1일 0시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들이다.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2000)’,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2001)’,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2004)’ 등이 대표적이며 모두 200건이 넘는다. 대전 국민은행 강도사건 현장. MBC뉴스 캡처.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를 열흘 앞두고 태완이법 적용 대상에 올랐다. 지난 2000년 8월 10일 택시기사 유 아무개 씨(42)가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옆구리와 가슴 등의 부위를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목격자인 최 아무개 군(당시 16)이 범인으로 검거됐지만, 지난 2010년 만기 출소한 최 씨가 강압에 의한 자백을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해 승소했다.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살인 사건은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다.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은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미제 사건으로 꼽힌다. 지난 2001년 12월 21일 국민은행 둔산점 지하주차장에서 복면을 쓴 괴한 두 명이 현금을 수송하던 보안업체 직원을 총으로 쏴 살해하고 3억 원을 빼앗아 달아난 사건이다. 지난 2004년 발생한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있었던 ‘화성 연쇄살인의 재연’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던 사건이다. 경찰도 과거 연쇄살인이 발생했던 화성이라는 점을 감안해 실종 신고 다음날 즉시 수사본부를 차리고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을 찾지 못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