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 중심 포트폴리오를 가진 두산그룹이 동대문 상권을 지키기 위해 시내면세점 유치 경쟁에 나섰다.
# 동대문시장 탄생 주역, 매헌 박승직
두산그룹의 모태는 1898년 6월 창업주인 매헌 박승직이 서울특별시 종로4가에 설립한 포목을 취급하는 박승직상점이다. 현재 박승직상점이 있던 자리에는 기념물이 설치돼 있으며, 바로 옆에는 두산연강재단이 자리잡고 있다.
매헌은 또 1905년 7월 개설된 동대문시장·광장시장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광장시장의 운영주체인 광장(주)의 설립에 참여해 동대문 상권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일부에서 동대문시장의 맹주는 두산그룹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하나은행 본점이 있는 을지로입구 사옥에 터전을 잡았던 두산그룹은 1998년 말 두산타워로 이동해 동대문 시대의 문을 열었다. 본사를 이전한 배경은 그룹의 태동을 이뤄낸 동대문·종로 상권에 자리를 잡고자 하는 오너 일가의 의지 때문이었다.
지상 34층, 지하 7층 건물인 두산타워는 동대문시장 주변을 통틀어 가장 높고 규모가 커서 이 지역 상권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어 두산타워 내에 위치한 두타 쇼핑몰은 1999년 2월 개장했다. 두타 쇼핑몰의 주력 판매상품은 의류와 액세서리로, 박승직상점이 취급한 포목과 연관된다. 즉, 두타 쇼핑몰에는 동대문이라는 입지적 조건을 반영한 사업이자 그룹의 모태사업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 동대문·동대문운동장(현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및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을 중심으로 청계천 을지로, 종로, 신설동 등에까지 이어지는 동대문시장은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가장 큰 도·소매 상권으로, 다수의 전통시장이 몰려 있다.
동대문시장은 1990년대 대전환기를 맞이하는데 거평프레야(현 케레스타), 밀리오레, 두타 등 대형 쇼핑몰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기존에 터를 잡고 있던 재래시장의 아성을 위협했다. 전통시장들이 생존을 위해 시장 현대화를 추진한 것은 이들 대형 쇼핑몰들 때문이다.
# 난개발의 역풍, 비리와 부도 점철
동대문 상권의 현대화와 규모의 확대를 이뤄낸 대형 쇼핑몰들은 기존 지방 도·소매 판매 이외에도 일본과 중국 여행객, 러시아를 비롯한 해외 중소 무역상들과 교역 등 거래의 범위를 확대해 나갔고, 이를 통해 두타 쇼핑몰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잘된다는 소문이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드는 한국인들의 기질이 동대문시장 상권에 큰 흠집을 냈다. 수용 범위를 무시한 채 대형 쇼핑몰들이 우후죽순 난립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정치인과 공무원 등에 대한 비리자금 제공 혐의를 받은 굿모닝시티와 동대문 대형 쇼핑몰 시대의 문을 연 거평프레야의 모그룹인 거평그룹의 부도로 상가를 매입했던 사람들과 임대인들이 투자한 돈을 날리면서 거리로 내몰렸고, 후발 쇼핑몰들은 입주자를 모집하지 못해 건물을 지어놓고 문을 열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내수경제의 침체, 온라인 쇼핑몰의 세력 확산 등으로 인해 돈을 벌 수 있는 구석은 줄어들었는데,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무작정 건물을 짓는 데만 열중하다 벌어진 일이다. 한때 불이 켜지지 않는 빈 건물이 즐비한 동대문시장의 모습은 마치 대도시 슬럼가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침체해 있는 동대문시장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그 자극이 바로 면세점 유치다. 그리고 그 총대는 동대문 시장 탄생을 주도한 두산그룹이 맡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고 박용만 회장이 오랜 검토 끝에 내린 결론으로 알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라는 공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이를 이용해 이권을 챙기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 주력사업의 부진을 현금창출이 손쉬운 면세점 사업으로 만회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 추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룹의 우려대로 시장에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두산그룹의 진출 선언으로 면세점 유치 사업에 과잉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1차 대전에 버금가는 수준이 될 것이라며 대기업들이 돈 잔치를 벌인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두산그룹만 살겠다고 뛰어드는 게 아니다. 동대문 상권을 부흥시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수혜를 입도록 하겠다는 큰 의도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동대문시장 내에 소재한 기업 가운데 두산그룹이 맏형 격이다. 이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 케레스타와 손잡은 SK, 두산 대놓고 정조준하다
두산그룹이 참여를 선언했지만 유치 성공 가능성을 논하기에는 이르다.
최태원 SK 회장
문제는 동대문 상권을 잡겠다는 곳은 두산그룹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면세점 사업 1위인 롯데그룹이 동대문 롯데 피트인에, SK그룹도 계열사인 SK네트웍스를 통해 케레스타에 면세점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케레스타는 두산타워와 이웃이고, 롯데 피트인은 자동차 도로 교차로에 위치한 데다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바로 연결돼 접근성 면에서 두산타워보다 좋다. 롯데와 SK 모두 두타로 몰리는 관광객을 흡수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특히 SK는 케레스타와 손을 잡아 두산의 심기를 대놓고 건드렸다. 동대문시장 내에서는 케레스타의 원조인 프레야타운이 무너진 원인 가운데 하나가 두산타워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이 크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 SK가 치고 들어왔으니 두산그룹으로서는 기분 좋을 리 없다.
더욱이 최태원 회장의 출소로 한껏 사기가 충천한 SK그룹이 상상 이상의 금액을 제출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SK그룹에 밀릴 경우 박용만 회장의 두산그룹은 자존심과 동대문 상권의 맹주라는 상징성에 큰 상처를 입는다.
재계 관계자는 “SK의 도전으로 두산과 SK 간 자존심 싸움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로 인해 2차 시내 면세점 사업권 따내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조정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