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건 전 총리, 이명박 시장(왼쪽부터). | ||
박 대표측은 일단 몇 달째 차기 대권 선호도 조사에서 부동의 선두를 유지해온 고 전 총리의 강세에 대해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면서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측근은 “대연정 논란과 X파일 사건의 영향으로 정국의 중심에 서 있는 박 대표가 유·무형의 데미지를 입은 반면 멀찍이 물러서 있는 고 전 총리는 가만히 앉아서 득점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 대표측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MB의 약진이다. 지지도면에서 MB가 박 대표를 앞선 것은 지난 2월 한길리서치가 야당 내 대권주자들만을 상대로한 조사에서 ‘32.1% 대 31.1%’를 기록한 이후 처음이며, KSOI가 지난해 12월 이후 세 차례 실시한 조사에서 ‘MB>박 대표’의 양상이 나타난 것도 최초다.
4·30 재·보선 이후 적어도 당내 대권경쟁에선 MB를 확실히 따돌렸다고 여겼던 박 대표측으로선 이 같은 조사결과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노릇. 특히 한국갤럽 7월 정기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자들 가운데서도 박 대표가 54.1%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쳐 50.7%를 기록한 MB와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한 핵심 당직자는 “재·보선 승리 이후 곽성문 의원의 골프장 맥주병 투척 사건과 전여옥 대변인의 ‘대졸 대통령’ 발언, 여의도연구소의 ‘사조직 동원’ 보고서 파문 등 연이은 악재가 당 지지율뿐만 아니라 박 대표의 지지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당내 상황과 무관한 MB는 현대건설 회장을 지낸 경력을 십분 활용, 부동산 대책 등을 놓고 여권과 ‘맞짱’을 뜨면서 한나라당 지지층에게 새롭게 어필된 것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실제 MB는 최근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성향층에 급속히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례로 인사, 조직자문업체인 인사전략연구소가 8월 초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1천79명을 상대로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에 가장 적합한 정치인 및 행정가는 누구인가’를 조사한 결과 MB는 30.1%의 지지율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23.8%), 고건 전 국무총리(20.4%), 손학규 경기지사(12.5%) 등을 큰 차이로 따돌리며 1위를 기록했다. 반면 ‘경제 올인’을 강조해온 박 대표는 상위권에 아예 들지도 못해 대조를 보였다.
▲ 박근혜 대표.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우선 고 전 총리와의 연대 주장은 그동안 박 대표 등 지도부가 그를 영입 대상으로 설정했던 것과 여러모로 다른 의미를 가져 주목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연대론자인 공성진 의원은 “고 전 총리의 국민적 지지도는 거품이 아니다. 그를 보수 세력의 일원으로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합리성과 건설 지향적인 프로페셔널리즘, 관록과 신중함 등은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것과 같고 공통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박 대표에 “고 전 총리와의 연대는 지역대표성이나 경륜, 국민적 사랑, 합리성 등을 감안할 때 가장 아이디얼한 매치(이상적인 조합)”라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당내 중도세력은 물론 박 대표에 우호적인 층에서도 적지않은 공감을 얻고 있는 공 의원의 주장은 당장 고 전 총리와 박 대표 중 누구를 대권후보로 놓고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가를 당면과제로 부상시켰다. 박 대표측은 “연대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심은 박 대표가 고 전 총리를 껴안는 내용과 형식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영남권의 한 중진은 “연대가 이뤄지려면 박 대표가 마음을 비우고, 정·부통령제 개헌을 추진하되 고 전 총리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고 자신은 러닝 메이트가 되겠다고 해야 가능하다. 정권탈환을 위해선 그것이 최상의 카드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당내외 위상이 흔들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MB를 지지하는 비주류측의 움직임은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비주류측은 그동안 박 대표에 비해 뒤졌던 MB의 대중적 인기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점에 고무받아 당 혁신안의 핵심내용인 ‘당권·대권 조기분리’를 8월 말 연찬회에서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친 MB’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박 대표가 끝까지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대표직을 맡겠다고 고집한다면 MB로선 한나라당에 둥지를 틀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일단 주류측에 관리형 지도부를 조기에 출범시킬 것을 촉구하겠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엔 ‘딴살림’을 차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대연정 논란 등으로 정치권의 유동성이 높아진 만큼 MB가 굳이 박 대표와 ‘볼썽사나운’ 다툼을 벌이면서까지 한나라당으로 들어가려 고집할 필요가 없다. 설혹 당장 박 대표와 ‘딴길’을 간다고 해도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합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