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연기 색깔과 톤은 달라지지만 정보석이라는 배우 고유의 이미지가 흔들림이 없는 까닭은 그가 가진 본연의 인간미 때문이 아닐까.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기자와 김태진 리포터는 정보석의 매너와 젠틀한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이미지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풍긴 정보석과의 맛있는 인터뷰를 지면으로 옮겨본다.
김태진(태진): 요즘 기분 좋으시죠? <달콤한 인생> 시청률이 잘 나와서.
정보석(보석): 아주 썩 잘나오는 건 아니라서 좀 더 욕심이 나요. 내면 깊숙이 숨겨진 감정을 꺼내야하는 밀도 높은 드라마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커 이왕이면 더 많이 봐주셨으면 해요.
태진: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에서라도 마음껏 바람을 피워보겠다”고 얘기했었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죠?
보석: 바람피울 땐 좋았는데 막상 걸리고 나니 보통 머리 아픈 일이 아니에요. 아내는 집 나가지 애들은 애들대로 난리지, 이런 짓을 왜 했나 싶어요(웃음).
태진: 시청자들은 ‘동원’ 역할을 두고 ‘결코 나쁜 남자는 아니다’ ‘바람을 피웠으니 나쁜 남자다’ 등 평가가 엇갈리고 있어요. 직접 연기하는 입장에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보석: ‘동원’이라는 인물의 해석을 두고 감독님과 종종 신경전을 벌이곤 하는데 난 동원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여성의 시각에선 불륜이 곧 배신이니 악인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남자들 가운데 불륜을 악으로 보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욕망에 이끌려 저지른 불륜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태진: 극중 부인 역할인 오연수 씨가 이동욱 씨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걸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보석: 모든 걸 경험해보고 연기할 순 없으니까 ‘만약’을 많이 이용해요. 만약에 내 와이프가 저렇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하다 떠오른 마음의 심상을 연기로 표현을 하는 거죠.
태진: 실제 집에선 어떠세요?
보석: 귀염둥이죠(웃음). 아내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집에 들어가면 장난을 많이 쳐요. 실제 제 성향이 그래요. 연기할 때를 제외하곤 늘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태진: 귀가하면 피곤해서 쉬고 싶지 않으세요?
보석: 아니요. 집에 들어가면 또 새로운 에너지가 느껴져 피곤해도 가급적이면 늦게 자고 싶어요. 오히려 마누라는 일찍 자고 싶어해 거기서 조금 트러블이 있죠.
태진: 86년도 KBS 특집극 <백마고지>로 데뷔해 20년 넘게 연기 생활을 했는데 공백기가 거의 없었네요.
보석: 휴식을 취할 만큼 이룬 게 없으니까요. 분명한 부분은 배우로서 제가 너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이건 겸손이 아니에요, 사실이지. 그래서 <대조영> 할 때도 초반에 캐릭터 잡느라 많이 힘들어 했고, 이번 작품 하면서도 몇 달 동안 고민 많이 했어요. 지금도 지속적으로 주변 분들에게 어땠는지 확인해요. 내가 연기하며 했던 생각이 그대로 느껴졌는지도 묻고. 내가 자신 있으면 이런 과정이 왜 필요하겠어요? 내 생각과 기분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배우는 보편성으로 다가가야 하잖아요. 보시는 분들과 공감대 형성이 안 된다면 그건 배우로서 생명력이 없는 거예요.
▲ 드라마 <달콤한 인생>의 한 장면. | ||
보석: 한 편 한 편 모두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작품들이죠. 그래도 어떤 계기가 돼준 작품은 몇 편 있어요. 일단 데뷔작이 가장 소중하고 배우로서 자리를 굳혀준 <사모곡>, 가장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인 ‘사도세자’를 했던 <하늘아 하늘아>, 영화 데뷔작 <그 후로도 오랫동안> 등이 기억에 남아요. <걸어서 하늘까지>, <여고시절>, <보고 또 보고> 등은 이미지 변신에 큰 계기가 됐고.
태진: 그동안 나이 어린 여배우들과 커플 연기를 많이 해왔네요. 오연수 씨하고도 아홉 살 차인데 이번엔 그리 나이차가 큰 것도 아니에요.
보석: 오연수 씨는 오히려 제가 조금 손해 보는 편이죠(웃음). 지금까지의 내 파트너들을 보면 적어도 박시연 씨 정도는 돼야 인정이 되죠, 하하. 서지혜 박예진 장신영 우희진 등이 그동안 제 파트너였으니까.
태진: 그게 동안이라서일까요? 아니면 넓은 연기 스펙트럼 때문일까요?
보석: 일단 운이 좋은 거죠. 그런데 내가 나이 어린 파트너를 맡았다고 극중 나이까지 어려진 경우는 <인어아가씨>밖에 없어요. 다 본래 나이에 맞는 역할로 나이 어린 파트너를 만났죠. 아무래도 젊었을 때 멜로 톤을 쌓아놓은 효과가 지금에서야 발휘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고맙게도 부모님이 얼굴을 동안으로 만들어 주신 덕분이죠.
태진: 학교 강의 나가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보석: 지금 10년째 수원여대 연기영상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매년 스무 살 아이들을 보고 함께 호흡하잖아요. 그러다보니 어린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학교에서 제 별명이 젊은 오빠예요(웃음). 아! 태진 씨 <연예가중계>에 안소영 씨하고 같이 나오죠? 안소영 리포터도 수원여대에서 가르친 제자예요.
태진: 그렇구나. 상당히 바쁘실 텐데 쉬지 않고 강단에 서는 이유가 궁금해요.
보석: 연기만 하던 사람이 가르치려니까 처음엔 어려웠어요. 하지만 우선 아이들이 좋고 학생들하고 함께 있는 순간이 너무 소중해 아무리 스케줄이 벅차도 강의가 있는 날은 꼭 학교를 가요. 내 자신도 공부가 많이 되고.
태진: 어떤 교수님인지 궁금해 인맥을 풀어 알아봤더니 정말 인기가 높더군요. 특히 학교 뒷뜰 같은 데서 학생들과 모여 자유롭게 얘기하는 걸 즐긴다고 들었어요.
보석: 제가 학생들에게 학문적으론 줄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신 그 아이들이 결국은 내 후배들이기도 하니까 내가 배우생활하며 느낀 경험 위주로 자연스럽게 수업을 하는 편이에요.
태진: 마지막 질문인데 연기 경력 20년을 넘긴 중견 배우로서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얘기해주세요.
보석: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연기를 더 잘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가 성장하는데 내 연기도 성장해야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방심하는 거예요. 현실에 안주해 방심하지 말고 연기에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정리=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