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자영업자들이 2015년을 보내며 내뱉은 ‘비명’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여파로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올 들어 다시 살아나는가 싶었는데 느닷없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들이닥치면서 유례없는 개점휴업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소자본 창업시장에는 어떤 업종이 울고 웃었는지, 종착지를 향해 달리는 하반기 창업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지난 9월 3일부터 5일까지 서울 학여울역 SETEC에서 열린 제35회 프랜차이즈창업박람회장을 찾은 창업 희망자들.
저금리 기조와 메르스, 그리스 사태 등 악재가 많아 소비가 줄어들다보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업종보다는 대중적이고 큰 시장을 가진 업종들이 선호됐다. 여기에 옛날치킨 등 불황에 항상 등장하는 복고풍이 시장에 다시 나타난 것도 주목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말 영세 자영업자수는 406만 6000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416만 2000명에 비해 10만 명 정도 줄었다. 창업 이후 1년도 안 돼 문 닫는 가게가 적지 않았던 셈이다. 특히 한국은 OECD 30여 국가 중에서 자영업자 수가 그리스(36.9%), 터키(35.9%), 멕시코(33.0%)에 이어 27.4%로 네 번째나 많다. 영국(14.4%)과 일본(11.5%), 독일(11.2%) 등 대다수 선진국은 10%대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상황과 과도한 창업은 자영업자들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고 창업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우려에 신규 창업자들이 대중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업종을 찾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 중에서도 ‘한식뷔페’는 한식의 친숙함과 합리적인 가격을 무기로 소비를 줄이는 상황에서도 인기 가도를 달렸다. 한식뷔페는 한식을 일품요리로 만들어 누구나 먹기 편하게 샐러드바 형태로 풀어 놓은 뷔페식 한식당으로 대개 1만 3000~2만 원 안팎의 가격을 내세웠다.
고객층은 소비 결정권을 가진 40~50대 여성들로, 한번 들렀다가 가족 또는 지인들과 재방문하는 식이다. ‘계절밥상’, ‘자연별곡’, ‘올반’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비롯해 중산층 창업 희망자의 공동 투자형 아이템 ‘풀잎채’ 등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프리미엄 김밥전문점 체인 중 하나인 ‘기운센 식당 로봇김밥’ 매장 전경.
프리미엄 김밥전문점은 분식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 용호동에서 작은 김밥집으로 시작한 ‘고봉민김밥人’을 시작으로 ‘바르다김선생’, ‘찰스숯불김밥’, 이태원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로봇김밥’ 등이 차근차근 점포를 늘려가고 있다. 외식 창업시장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인 돈가스전문점도 히든챔피언으로 세를 확장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가 겹치면서 소비자들이 외식을 자제하고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면서 배달업종이 강세를 보였다. 올해 본격적으로 배달 및 포장 시스템 강화에 나선 ‘박가부대찌개’ 관계자는 “최근 1~2인 가구 증가, 소극적 소비 행태가 맞물리면서 배달과 테이크아웃 매출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슈퍼바이저들이 가맹점주와 함께 지역 내 배달 홍보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거나, 매월 15일과 30일 포장해가는 고객들에게 50% 할인 이벤트를 실시함으로써 배달과 포장 매출을 끌어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빙수전문점과 스몰비어는 겨울철 매출 하락과 매출 다각화 실패라는 단점을 안고 대표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인기가 시들해졌다. 스몰비어에서 파생된 ‘미들비어’도 생겨났다. 미들비어는 지나치게 간단한 안주만을 취급해 객단가가 낮았던 스몰비어의 문제점을 보완해 치킨, 샐러드 등 다양한 안주로 객단가를 올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치킨이나 주점은 복고풍이 다시금 유행하고 있다. 치킨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제공하는 등 대부분 맛·양·가격이 ‘착한’ 치킨을 표방하며 창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복고풍 주점들을 일명 ‘감성주점’이라고 부르는데 영화 세트장처럼 오래전 거리에서나 볼 수 있던 포장마차 분위기를 실내에 재현,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카페업종엔 커피와 강력한 디저트의 조합이 해답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다양한 ‘디저트 카페’가 나타났는데 일본풍 디저트 전문점, 브런치&디저트카페, 치킨과 과일을 접목한 멀티디저트 카페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추석 이후 창업시장에는 어떤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시장성이 넓은 한식이 진화를 거듭할 것으로 내다봤다. ‘집밥’ 열풍과 ‘쿡방’ 등에서 다루어지는 한식의 진화가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던 배달, 테이크아웃 업종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배달이나 테이크아웃 업종은 적은 창업비용에 판매영역은 넓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수제버거전문점 ‘마미쿡’의 마마통살버거 세트.
때문에 기본적인 수요 창출이 가능하고 다양한 제품 개발을 통해 기존의 햄버거 시장과 샌드위치 등 패스트푸드 시장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서울 이화여대 앞 ‘퀸즈베이글’이나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베이글’ 등 대학가 등에서는 일찍부터 베이글 전문점이 젊은 층의 인기 명소로 등극했다. 지난 5월에는 ‘카페베네’가 ‘카페베네 126베이글’을 론칭하기도 했다.
가격대가 높아 대중화되지 못했던 스테이크, 수제버거 등은 가격 거품을 빼고 실속형으로 전환하며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스테이크의 경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낮게는 메뉴당 4만~5만 원을 주고 먹어야 할 정도로 고급 음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테이크 전문점들이 7900~9900원으로 가격을 크게 낮추는 매스티지 전략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본사에서 식재료를 대량으로 직거래하여 공급하고, 잘 팔리는 품목만으로 구성해 불필요한 비용을 없앤 점도 주된 확장 요인이라고 한다. ‘리즈스테이크갤러리’, ‘킹콩스테이크’, ‘모모스테이크’, ‘스테이크레이브’, ‘칼질의 재발견’ 등 가격을 낮춘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수제버거도 눈길을 끈다. 과거에는 1만 원을 훌쩍 넘는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한동안 열풍이 불다가 인기가 식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3000~4000원대로 가격 거품을 빼고 다시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카페베네 126베이글 매장(위). 카페베네 베이글과 커피.
100% 생과일주스를 1500~
3800원에 판매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신생 브랜드의 경우 1999년 건대 1호점을 시작으로 최근 가맹사업을 본격화, 두 달 만에 50호점을 돌파하는 등 빠른 속도로 점포 전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 저가 커피의 경우 33㎥(약 10평) 내외의 소형점포로 고정비를 최소화한 점이 특징이다.
과거와 달리 큰손으로 부상한 ‘1인 가구’의 영향으로 도시락, 간편식도 인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나홀로 가구를 위한 도시락전문점이나 반찬가게가 대표적이다. 전 가구에서 27%를 차지하는 1인 가구는 2035년까지 41%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1인가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청년층과 고령층은 소득이 낮으므로 실속형 간편식과 포장 및 배달업종이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분석된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글로벌프랜차이즈학과장(창업학 박사)은 “올해 대중성과 안정성을 키워드로 한 창업이 주목을 받았다면 하반기에는 베이글카페, 스테이크, 수제버거 등 소비자들에게 보다 신선한 업종들이 창업 시장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hanmail.net
생존률로 따져본 ‘자영업 지옥’ “6개 중 1개만 살아남았다” ‘16.4%’ 지난 10년 동안 국내 자영업자의 ‘생존율’이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창업한 자영업자 수는 949만 개에 달했으나 이중 793만 개가 폐업해 자영업체의 생존율이 16.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 받아 지난 9월 1일 공개한 ‘개인사업자 창업·폐업 현황’ 자료로, 6개 점포가 문을 열었다가 그 중 1개 정도만이 살아남았다는 얘기다. 2004년 이후 매년 80만 개 이상의 개인사업자들이 창업에 나서고 있지만 2010년(98만 8058개)부터는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 지속적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문을 닫은 자영업자는 2007년(84만 8062개)과 2011년(84만 5235개)이 84만 개 이상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권역별로는 창업자수가 가장 많았던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의 폐업자수가 405만 개로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경기도가 184만 개, 서울시가 176만 개 순으로 많았고 업종 역시 음식업(174만 개), 소매업(162만 개), 서비스업(157만 개) 순으로 폐업자수가 많아 3개 업종 폐업률이 전체의 62.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부동산임대업(68만 개), 도매업(65만 개), 운수 창고 통신업(57만 개)으로 그 뒤를 이었다. 생존율이 낮은 만큼 창업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하루하루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 상권에서 분식점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권 아무개 씨는 “좁은 상권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업종의 점포가 자고 일어나면 몇 개씩 생겨난다”며 “결국 매출을 나눠 갖는 셈인데 신규 창업자일수록 적은 수익으로 치열한 상황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오래 장사를 하며 맷집을 키워온 나 역시도 최근 들어서는 장사를 접어야하나 고민을 할 때가 많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서울 광진구에서 커피전문점을 6년 동안 운영하고 있는 천 아무개 씨는 최근 임대차계약 갱신을 앞두고 건물주의 연락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한다. 건물주가 그동안 없었던 임대료 인상을 50%까지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 경쟁상황과 매출부진 등의 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했지만 건물주의 요구는 단호했다. 그렇다고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어 천 씨는 눈물을 머금고 임대료가 인상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천 씨는 “주변에 입지가 좋지 않은 점포들은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고, 입지가 좋은 곳이라도 점포 규모가 큰 곳은 임대료, 인건비 등 꾸준히 지출되는 비용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변 점포 예닐곱 곳이 그렇게 문을 닫더라. 건물주들은 세입자의 상황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월세를 올리기만 하니 결국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장 아무개 씨는 “최근 들어 ‘점포를 제공할 테니 들어와서 카페를 운영해달라’는 요청이 많다”면서 “건물주들이 비어있는 점포를 그냥 놔두기는 그렇고 본인이 운영하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창업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런 점포는 찾아가보면 입지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협업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9월 9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자영업자 수는 총 562만 1000명으로 전달에 비해 3만 5000명 줄었다. 그런데 자영업자 중에서도 특히 종업원 없이 혼자서 사업을 영위하는 영세 자영업자 감소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1인 기업으로 불리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전년 동월과 비교해 지난 8월 19만 6000명이나 줄었다. 5월 마이너스(-) 7만 5000명, 6월 -9만 6000명, 7월 -9만 7000명에 이어 감소폭이 확대됐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도 증가세가 둔화됐다. 자영업자 수가 줄어들면서 ‘무급가족 종사자’ 수도 크게 줄었다. 무급가족 종사자란 음식점에서 운영을 돕는 부인, 딸이나 아들 등 가족 종사자를 말한다. 지난 8월 무급가족 종사자는 전년 동월대비 27만 9000명 감소했다. 지난 5월 감소폭(8만 2000명)의 3배가 넘었다. 서울 성북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장 아무개 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어려움을 겪다가 매출이 좀 회복될 만하니 메르스 사태가 터지더라. 지금까지 장사하면서 올해처럼 이렇게 어려운 적이 없었다”며 “장사가 안 되니 직원 월급을 줄 수도 없고, 일손을 돕던 가족들도 서로 멍하니 얼굴만 보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고 결국 당분간은 다른 곳에서 돈 벌라고 다 내보냈다”며 어려웠던 시간을 떠올렸다. 심재철 의원은 “올해 상반기 메르스 직격탄 등으로 우리나라의 자영업은 심각한 위기의 순간을 맞고 있고, 2014년 하반기부터 기획재정부가 장년층 고용안정 및 자영업자 대책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지만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위기의 자영업자를 구할 수 있는 정부의 실효성 있는 자영업자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