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롯데 회장 | ||
“1988년 4·26 총선을 앞두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나를 꼭 한번 봤으면 했다. 몇 번을 고사한 끝에 어느 날 힐튼호텔 23층 펜트하우스 김우중 회장의 방에서 만났다. 김 회장은 특별한 부탁이 없이 6공화국이 잘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30분쯤 지났을 무렵 내가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러면…’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김 회장이 황급히 윗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김 회장은 ‘이거 직원들 회식비입니다. 약소하지만 고생하는 직원들 회식이나 시켜주라는 작은 뜻입니다. 거절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청와대 사무실로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보좌관실 직원 50여 명이 회식을 몇 백번 하고도 남을 큰돈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바로 김 회장에게 연락하여 좀 보자고 했다. …정중하게 봉투를 내놓았다.”
신격호 회장의 ‘중재자’ 역할
“1989년 7월18일 오후 7시부터 롯데호텔 34층 일식당에서 신격호 회장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신 회장은 ‘YS는 합당 의사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전제로 정호용, 이원조 의원의 용퇴를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각제 개헌을 통해 YS가 수상, JP는 대통령을 하고 그 다음에는 민정당에서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신격호 회장과 YS는 오래전부터 가까운 사이다. 자금 지원도 상당히 해주고 있는 듯하고 두 사람 사이는 깊은 대화를 나눈다. 신 회장은 믿을 수 있는 사업가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신 회장은 3당 합당 후 나와 김 총재가 내각제합의 이행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을 당시에도 중재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90년 9월7일 도쿄에서 신 회장을 다시 만났다. 신 회장은 나에게 관대한 마음으로 YS와 화해하라고 종용했다. 10월3일 다시 만난 신 회장은 ‘YS는 박 장관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습니다. 박 장관의 협조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했다.”
깨져버린 정주영 회장의 꿈
“1988년 10월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을 만났다. 정 전 회장은 ‘앞으로 금강산 특구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철원과 속초에서 금강산을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할 예정’이라며 청사진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정 회장이 북한에서 ‘위대한 김일성 장군님’이라고 호칭하는 화면이 전국에 반복적으로 보도되면서 사업추진이 어려워졌다.
(박 전 의원은 1992년 11월17일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표로 있던 국민당에 입당하면서 정 회장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정 후보가 대선 승패에 관계없이 국민적인 건전 정책 정당의 육성을 위해 2천억원을 내놓기로 합의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YS가 14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박 전 의원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국민당은 붕괴 직전의 위기로 빠졌고 박 전 의원은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수감됐다.)
‘대화 상대’ 이건희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는 1980년부터 1991년까지 신라호텔 등지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이권과 관련된 부탁을 한 일이 없으며 정치자금 지원 같은 어색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2004년 둘째 딸 결혼식 때 이 회장이 축하금 1백만원을 전해와 즐겁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