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유력 대권주자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반기문 사무총장(왼쪽)과 손학규 전 대표가 ‘대안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대선을 2년여 앞둔 지금 시점에서 자천타천 유력한 잠룡으로 꼽히는 후보가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지율에서 3강을 형성해 이른바 ‘빅3’로 불린다. 그런데 이러한 판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격언처럼 상황에 따라 새로운 대세론이 형성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들불처럼 번졌던 안철수 신드롬이 대표적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 정치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를 주목하고 있다.
“친노, 비노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총선에서) 당선만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친노가 패권을 쥐어도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당 지지율이 새누리당 40%, 새정치 20%로 두 배 차이가 난다. 이 정도면 소위 ‘개인기’로 넘어서기 불가능한 수준이다. 총선에서 대패하고 나 자신도 낙선할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가만히 있겠나.”
최근 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수도권 의원이 사석에서 기자에게 넋두리처럼 건넨 이야기다. 새정치연합의 친노와 비노 간 계파 갈등이 심화되면서 문재인 대표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당 지지율 역시 비슷한 추세다. 비노 진영 공격 속에서 당 결속을 위해 꺼내든 문 대표의 재신임 카드는 논란만 키웠다는 지적 속에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지난 9월 22일 5선 중진 박주선 새정치연합 의원이 현역으로는 최초로 탈당하면서 여전히 당내 계파 갈등의 불길이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지난 4·29 재보궐 선거 이후 당내 끊이지 않는 내홍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문 대표가 사실상 대통령 후보에서 멀어졌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대선후보로 본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국민들로부터 ‘대통령감’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 4·29 재·보궐 선거에서부터 문 대표가 ‘대통령감’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문 대표가 당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데, 대선후보까지는 당심만으로도 가능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민심을 얻어야 한다. 다수 국민이 납득할 만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매한가지다. ‘사위 마약 사건’이 터지면서 여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사위의 형량이 김 대표로 인해 낮춰진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의 전개에 따라 이 사건이 김 대표의 ‘아킬레스 건’이 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대표 위기설의 발단은 마약 스캔들과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갑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는 “마약 사건 이후 김 대표 지지율에서 유의미한 변화 없이 20% 안팎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며 “김무성 대표가 직접 마약을 한 것도 아니고 유력한 여당의 대권후보가 사위가 마약을 했다는 것을 알고도 결혼 시킨 것을 볼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를 떠올리게 만든다”고 말했다.
오히려 마약 사건보다는 최근의 정치 행보가 김 대표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파동 이후 김 대표가 ‘무성 대장’이라는 캐릭터와 달리 청와대에 ‘저자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에서다.
또 김 대표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가 대권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갑수 대표는 “김무성 대표가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고까지 말한 오픈프라이머리가 현재 청와대와 친박의 반대에 부딪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오픈프라이머리 추진에 실패해 특유의 뚝심과 저돌성이 손상되면 김 대표 지지율이 본격적인 하방국면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김 대표를 향한 청와대와 친박의 공격도 쉽게 먹히게 돼 지지율 하락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가히 여야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김 대표와 문 대표가 악재에 시달리자 대안을 모색하는 논의가 물밑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우선 여권 핵심부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차기 후보로 고민한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반 사무총장은 본인이 포함된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대부분 1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반 사무총장 한계론도 만만치 않다. 반 사무총장도 멀리는 제2의 고건, 가까이는 제2의 안철수가 아니겠냐는 얘기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당내 기반도 없고, 여의도에서 맞아본 맷집도 없는 반 사무총장에 대한 지지율은 허상으로 본다”며 “여의도 정치 혐오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지금의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지만 실제로 출마 선언을 한 뒤에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 공격이 시작되면 반 사무총장이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안철수 의원이 정치권에 진입하면서 겪었던 것 이상의 고초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에 반 사무총장이 있다면 야권에서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대표가 급부상하고 있다. 손 전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서울로 상경만 해도 뉴스에 이름이 나올 정도다. 친노계를 제외한 전 야권에서 손 전 대표를 향한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 비주류와 천정배 신당 등에서는 공개적으로 손 전 대표 영입을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손 전 대표에게도 약점은 있다. 정치권에서는 손 전 대표를 주동적 변수로 보지 않는다. 손 전 대표가 스스로 칩거를 깰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참패해 손 전 대표를 호명하는 일련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가 복귀할 명분은 줄어든다. 김갑수 대표는 “문 대표의 정치생명이 내년 총선과 연계된 것과 같이 손 전 대표의 정치생명도 내년 총선과 연계돼 있다”며 “(내년 총선이 참패하면서) 문재인이 죽어야 손학규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손 전 대표 복귀에도 불구하고 친노 진영에서는 그를 인정하지 않고 공세를 계속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노계 전직 의원은 “손 전 대표는 지나간 인물이다. 다시 돌아와서 뭘 할 수 있겠나”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렇게 봤을때 차기 주자로 반 사무총장과 손학규 전 대표가 등판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한국정치의 불확실성을 감안한다면 대선까지 2년도 더 남은 상황에서 ‘빅3의 몰락’, ‘반기문·손학규 대세론’ 등은 섣부른 단정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거꾸로 이 말은 반 사무총장과 손 전 대표의 맞대결이 실현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수없이 많은 대선을 겪어낸 한 정치 원로의 말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사실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는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지금 시점에서 차기 대선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며 “지금 시점에선 누가 된다고 할 수 없고 안 된다고도 할 수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