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친의 친일 논란으로 또 다시 당 안팎의 비난에 직면한 신기남 의원(왼쪽)과 김희선 의원. | ||
지난 8월29일 ‘민족문제연구소’(민연)와 ‘친일인명편찬위원회’가 1차 친일인사명단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3천90명을 발표하자, 곱지 않은 시선은 오히려 열린우리당에 꽂히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동정론과 함께 친일 의혹 구설수에 올랐던 여권 유력 정치인 선친들의 예를 들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에 열린우리당 신기남 김희선 의원의 부친 친일 의혹이 다시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다. 여당의 중진급 의원이기 때문에 뺀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민연의 한 관계자는 “사실 확인 작업을 거쳐 (전력이 밝혀지면) 내년 2차 명단에는 포함될 것 같다”라는 의견을 조심스레 피력했다. 부친의 친일 의혹을 받았던 여권의 다른 정치인들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 재정립을 위한 이번 작업이 정치권의 이해다툼으로 훼손되는 부분이다. 민연 또한 친일청산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지만, 형평성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다소 당황하는 모습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역사 청산 문제까지 정치적으로 기울 필요는 없겠지만,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사실상 검증이 끝난 신 의원의 부친은 박근혜 대표의 부친과 함께 명단에 올렸어야 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역사적인 작업이 정치 음모로 변질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내비치는 말이다.
열린우리당 또한 친일명단 발표에 뒤따르는 파장이 오히려 자당의 두 의원들에 대한 집중적인 성토로 비화되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전병헌 대변인은 8월29일 “두 의원의 부친에 대해 민연에서도 충분한 입증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슬쩍 민연 쪽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심지어 열린우리당 내에서조차 “지난해 신 의원의 당의장직 사퇴 파동으로 당이 망신을 당했는데, 설사 이번 1차 명단에서 빠졌다고 해서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 의원 또한 최근 당 안팎의 비판적 여론을 감안했음인지 8월3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선친의 청년시절 행적과 관련해 저는 역사 앞에 사죄 드리고 용서를 구한다’는 사죄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다.
신 의원의 부친은 일본 강점기 시대인 1938년 대구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1940년 조선총독부 조선특별지원병으로 자원 입대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게미쓰 구니오로 창씨 개명을 하고 군에서 헌병 오장(하사)을 지낸 전력 역시 드러났다. 이밖에도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그가 일본군 징병 기피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또 직접 항일운동가를 체포해서 고문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1941년에는 한 잡지에 직접 일본군 입대를 독려하는 글을 기고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당초 부친의 친일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던 신 의원은 언론 보도를 통해 구체적 사실이 확인되자 결국 “선친이 일제 치하에서 군에 입대한 것이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김희선 의원의 부친에 대한 친일 의혹도 계속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의 보도로 불거진 그에 대한 친일 의혹은 이후 김 의원과 한나라당의 공방으로 확산되면서 정치 쟁점화됐다. 언론에서 거론한 친일 의혹은 그가 일제 시대 만주국 특무(경찰)로서 독립군을 탄압한 장본인이라는 것.
▲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이미경, 유시민 의원도 부친의 친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왼쪽부터). | ||
당초 부친의 친일 의혹에 대해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며 강력히 반발했던 김 의원은 지난 6월 국회에서 “월간지가 제시한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 내가 제일 궁금하다. 의혹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 주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책임지겠다”며 다소 수그러드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민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내년 3월이나 8월경 2차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며,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는 신 의원의 부친은 포함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 우선적으로 발표한 1차 명단은 오랫동안 친일 행각이 꾸준히 거론된 인물들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며 “같은 맥락으로 김 의원 부친의 경우는 현 관점에서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의원 부친에 대해서도 “경무과 특무였다고 하는 관련 자료와 증언자들의 내용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명단에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여권에서는 신 의원과 김 의원 외에도 몇 명의 유력 정치인 부친에 대한 친일 의혹이 계속 떠돌고 있다. 하나같이 당을 대표할 만한 중진급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더욱 크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묻지마 폭로’식으로 나온다면 무작정 당할 수밖에 없다는 피해의식도 갖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은 지난해 8월 “내 부친도 일제시대 헌병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을 어머니와 고향 어른들을 통해 확인했다”고 직접 고백했다. 당시 이 의원은 “일본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부친은 자원이 아니라 차출 형식으로 입대했다고 들었다”며 “그러나 부친의 계급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헌병 복무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슨 활동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덧붙여, 여전히 논란을 남겨 뒀다.
정동영 통일장관의 부친은 일제시대 대표적 농민 착취기구였던 조선식산은행 산하 ‘금융조합’의 서기를 지낸 전력으로 인해 친일 의혹에 휘말렸다. 정 장관측은 “(그 시대에) 말단 서기직을 지냈다는 점만으로 친일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유시민 의원의 경우 부친이 일제 치하인 1943년 만주 퉁화의 한 소학교에서 훈도(교사)로 근무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퉁화는 일제가 세운 괴뢰 정부인 만주국 치하였다. 역사학자들은 “1943년의 훈도는 당시 군인 경찰 못지않은 주요 국가 요원으로 황국신민화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유 의원은 “선친이 1942년경 만주의 어느 소학교에서 근무했다고 하지만 교사였는지, 행정사무였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정식으로 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경주여중 교사로 부임한 것은 해방 후인 1946년이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