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최형우 전 의원 고희연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상도동계 인사들이 많이 모였다. 국회사진기자단 | ||
그렇게 8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난 5일 그가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의 칠순 잔치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렸던 것. 그와 한솥밥을 먹었던 동지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김 전 대통령 내외와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 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과 서청원 전 대표 등 상도동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김상현 전 의원 등 5백여 명이 모인 성대한 고희연이었다.
6선 의원과 내무장관 등을 거쳤던 ‘거물’ 최형우는 과연 ‘재기’를 꿈꾸고 있을까. 부인과 지인들을 통해 그의 근황과 속내를 들여다봤다.
고희연이 끝난 지 사흘이 흐른 지난 8일 오전, 최 전 의원의 장충동 자택으로 전화를 걸었다. 부인 원영일씨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 최 전 의원은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고 했다. 요즘 최 전 의원은 부인과 함께 일요일만 빼고 매일 두 시간씩 남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은 삼성의료원과 분당 보바스병원 등에서 1시간10분씩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의 재활 의지가 워낙 강해서일까. 병원에서 별도로 2시간 정도 개인 운동을 하고 온다는 게 원씨의 전언이다.
그러면 그의 건강상태는 어떨까. 거동이 다소 불편하긴 해도 대부분의 신체 활동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최 전 의원은 미국과 독일 등지로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회복된 상태다. 특히 2년에 한 번씩 독일에 가서 최신 재활 치료법을 배워오는데, 지난해에도 다녀왔다.
▲ 쓰러진 뒤 <일요신문> 카메라에 처음으로 포착됐던 최 전 의원. | ||
최 전 의원의 특보였던 안경률 한나라당 의원은 요즘도 장충동 집을 자주 방문한다. 이번 고희연도 안 의원이 주도해서 마련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끔 전화를 걸어서 최 전 의원의 안부를 묻고 있으며, 부부동반으로 함께 외부에서 식사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원씨는 “현역 의원들과 예전에 친했던 정치인, 당 관계자들이 찾아온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누가 방문하는지는 말하길 꺼렸다. “집에 찾아온 분들을 밝히면, 안 온 분들한테는 결례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직도 원씨에게는 일반적으로 정치인 아내로서 갖게 되는 ‘정치 기질’이 잔존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원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한 3년 동안은 (최 전 의원이) 너무 화가 나서인지 뉴스도 책도 보지 않았다. 당신이 병이 났으니까, 그 울분이 얼마나 꽉 찼겠는가. 그러니까 신문도 책도 안 보더라. 뉴스를 보면 (최 전 의원의)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가족들도 될 수 있으면 신문을 못 보게 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최 전 의원은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고, 책도 읽는다. “마음을 비워 평정을 되찾았기 때문에 뉴스를 봐도 괜찮다”고.
그럼에도 최 전 의원은 어쩔 수 없는 ‘정치인’인 듯싶다. “뉴스를 봐도 예전처럼 화를 내지는 않지만 요즘 정치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원씨는 전했다.
▲ 95년 2월9일 민자당 창당 5주년 기념식에서 김덕룡 의원(왼쪽)과. | ||
원씨는 ‘최 전 의원의 향후 계획’에 대해 “아무런 계획이 없다. 가족하고 단란한 시간 보내면서 여생을 보내면 된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다 해도 정치는 안 할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정치를 안 하시게 하고 싶다”며 “병이 다 나아봐야 알겠지만, 이제는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나”라고 여운을 남겼다.
지난 고희연에 참석했던 YS는 행사장을 빠져나가면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건강했다면 참된 민주주의가 왔을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고만 짧게 말했다. 문민정부 시절의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 수사 등 현 정국에 대한 불만과 최 전 의원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시에 묻어나는 발언이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예전에 최 (전) 장관이 나에게 ‘손 의원, 국회의원이나 장관 한두 번 하면서 자리나 지키려면 당장 학교로 돌아가시오’라고 말했다. ‘정치인은 무릇 ‘뜻’을 가져야 한다’고 해서 전율이 일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손 지사의 전언대로 ‘정치인 최형우’도 ‘뜻’을 품고 있었던 듯싶다.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인 지난 1996년 <민생정치로 가는 큰 길>(고려원)이라는 정치평론집을 냈다. 이 책에는 ‘국가발전 전략과 정보화 전략’ ‘민생개혁 체감개혁으로’ 등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플랜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모두 화합과 열린 정치로 ‘21세기 초 통일 선진 한국’을 기필코 건설하자”고 역설했다. 하지만 그는 21세기가 시작되기 전에 자신의 ‘큰 뜻’을 접어야만 하는 큰 시련을 맞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저서에 적었던 대로 ‘대하무성(大河無聲)’(큰 강은 소리 없이 흐른다)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