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박근혜 대표가 영수회담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당분간 연정 얘기는 않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1. 연정론은 과연 죽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간) “당분간 연정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선거제도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연정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당분간’이란 표현을 했을 뿐 ‘영원히’라는 수사를 동원한 일이 없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도 “노 대통령의 연정의 기본정신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의장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말 그대로 연정 이야기를 당분간 입술에 올리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대화와 상생을 위한 연정의 기본 정신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의장은 또 “연정의 기본정신 그 자체는 선(善)이며,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구도 타파와 상생, 대화, 타협을 통한 정치문화 업그레이드는 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설혹 연정 논의가 한나라당과의 관계에 있어 잠복하더라도 이번 정기국회 회기 중 각종 현안 법안 처리 과정에서 여당과 민노·민주당과의 정책 연합, 정책 공조 형식의 사실상의 ‘소연정’ 모습이 나올 수 있고, 이 경우 연정 공방은 재현될 수 있다.
요컨대 노 대통령의 연정 언급이 정상외교 일정을 마친 뒤 귀국 후 가질 민노·민주당 대표와의 면담에서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는 별도로 여당의 선거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한나라당의 거부가 이어질 경우 노 대통령이 또 다른 정국구상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 열린우리당은 12월 정기국회 폐회 전까지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시킨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다. | ||
2. 선거구제 개편 어디로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청와대회담이 평행선만 달린 채 끝나면서 연정론은 한풀 꺾였지만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시작되는 국면이다.
즉 청와대회담을 계기로 청와대나 노 대통령이 주도했던 연정 논의의 바통을 여당이 ‘선거구제 개편’으로 이어받게 될 전망이다. 논의의 주체가 대통령에서 당으로, 논의의 주제가 연정에서 선거구제로 바뀌면서 담론 수준이었던 연정 논의가 선거구제 개편이라는 구체적 이슈로 전환되는 셈이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공이 정치권으로 넘어왔다”는 반응이다. 당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유인태 의원은 9일 “한나라당이 연정론을 안 받으면 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당은 선거구제 개편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10월까지는 당 정개특위 차원의 선거구제 개편안을 마련하고, 민노·민주당과의 조율을 거쳐 12월 정기국회 폐회 전까지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시킨다는 구체적 일정과 목표를 제시하며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응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 지난 8월30일 노무현 대통령이 초음속 고등훈련기(T-50) 양산 1호기 출고기념식에서 항공기에 탑승해 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3. 노 대통령 정치 복귀하나
최근 임기 반환점을 도는 노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과 경기 침체, 열악한 언론환경 등의 악조건 속에서 정치 전면으로의 복귀를 기할 것인가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4ㆍ30 재보선 패배 이후 확산된 여권의 위기돌파 카드는 노 대통령의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의 주도권 행사로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대야당 협력정치는 정국의 안정적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야당의 대권주자를 관리하면서 정치적 타결 분위기를 통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언론, 검찰, 사법부, 헌법재판소, 선관위 등)의 공간을 축소시키는 정치적 실익이 있다”는 여권 내부 문건은 시사하는 바 크다.
따라서 최근의 노 대통령의 정치적 수사와 언행을 자신의 정치 복귀를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선거제도 개편 등 초당파적 아젠다를 노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함으로써 재보선 패배 이후 흩어진 지지세력의 재결집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최근 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성공하지 못해 대통령 체면이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협상’을 야당에 공식 제안하겠다”고 한 것도 정치 전면에 나서 지속적으로 정국을 장악해 나가겠다는 시도로 읽힌다.
여기에 노 대통령이 8ㆍ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민ㆍ형사상 공소시효 적용 배제’를 언급한 대목은 정치적으로는 정계개편의 ‘시동걸기’로 보인다. 군사정권은 물론 YS-DJ 정부의 핵심에 있었던 정치인에 대한 형사처벌까지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