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표(오른쪽)와 김무성 사무총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흔히 ‘친박(親朴) 3인방’으로 불리는 김무성 사무총장과 유승민 전 의원, 전여옥 대변인 등이 구설수에 오른 장본인들. 이들에 대한 당내 비판이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재·보선 공간에서 불거진 공천 후유증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이들 3인은 박 대표와 함께 재·보선 국면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인물들. 공천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김 총장은 선거전이 시작된 이후엔 실무 사령탑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고, 유 전 의원은 본인이 직접 대구 동을 재선거에 나선 몸이다. 전 대변인도 대여(對與) 공세의 주포로서 특유의 독설로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김 총장을 둘러싼 ‘뒷말’은 그가 ‘박심’(朴心)을 좌지우지하면서 당의 전략적 좌표를 고려하기보다 자신의 당내 입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천작업을 이끌었다는 비판에서 도드라진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신 출신으로 30여 년 넘게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김 총장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치경력이 일천한 박 대표가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노정되면서 당내 곳곳에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김 총장을 둘러싼 논란은 비주류를 중심으로 그가 이번에 재선거 공천과정에 사실상 ‘전권’을 행사했다는 분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공천 후유증이 가장 심각한 곳으로 꼽히는 경기도 광주의 경우 여론조사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적으로 앞선 홍사덕 전 원내총무를 낙천시키고, 정진섭 후보를 공천한 과정을 두고 김 총장의 의중이 도마에 올랐다.
홍 전 총무에 대한 공천 문제는 그가 ‘3·12 탄핵사태’의 주역이란 점 때문에 소장파를 중심으로 일찌감치 ‘불가론’이 제기된 터. 그만큼 김 총장은 명분을 가지고 홍 전 총무를 공천에서 배제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천 진행 및 뒤처리 과정에서 김 총장이 보여준 행태에 대해선 비주류는 물론 주류 일부에서도 “부적절한 면이 적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지난 9일 대구 동화사를 찾은 박근혜 대표와 유승민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 ||
당내 일각에선 홍 전 총무가 무소속 출마라는 ‘초강수’를 두게 된 전후 과정에서 김 총장이 보여준 모습도 문제로 삼는다.
비주류의 한 중진은 “탄핵이라는 ‘지우고 싶은’ 과거 때문에 홍 전 총무에게 공천을 줄 수 없었다는 점은 우리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불과 1년 6개월여 전까지 당을 이끌던 홍 전 총무가 무소속 출마라는 강수를 두게 만든 것은 현 지도부의 의도적인 ‘박대’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특히 김 총장이 무소속 출마 선언 이후 홍 전 총무를 향해 ‘구태정치인’ ‘당선돼도 복당 안 받아준다’ ‘돕는 당원은 출당조치’ 등의 극한 발언을 내뱉은 것은 얼마 전까지 같은 당에서 한솥밥 먹던 선배 정치인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중도사퇴의 가능성을 차단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대단히 문제 있는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영남권 한 초선 의원도 “박 대표를 두고 가뜩이나 ‘선거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데 김 총장까지 ‘선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며 이판사판식으로 재·보선에 임해 당내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대권주자로서 박 대표에게 전략적으로 나쁜 영향이 가든 말든 상관없이 김 총장이 자신의 재임기간 중 ‘재·보선 전승’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선거전을 무리하게 ‘노무현 대(對) 박근혜’의 대리전 구도로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고 대구 동을 재선거에 출마한 유 전 의원의 운신을 놓고서도 당내에서 비판이 무성하다. 공천심사과정에서 신청도 안한 유 전 의원이 물밑작업 끝에 ‘낙점’을 받게 된 것에서부터 선거전 지원에 정계를 은퇴한 이회창 전 총재를 끌어들이려 한 점 등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당내에서는 우선 현역 비례대표 의원직까지 버리면서 지역구 금배지를 달기 위해 재선거에 출마한 유 전 의원을 겨냥해 “개인적인 정치적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당의 이익을 훼손시켰다”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남권 한 3선 의원은 “최근 당내 비례대표 의원들 사이엔 ‘우리는 준(準) 국회의원’이란 자조 섞인 말들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같은 국회의원인데 지역구 의원이 되기 위해 비례대표를 미련 없이 내던진 유 전 의원을 빗대 나온 얘기다”라고 소개했다.
이 중진은 “유 전 의원 본인은 ‘개인적으론 출마할 생각이 없었는데 당의 요구에 따라 출사표를 던지게 됐다’고 주장하지만 사정을 아는 당내 인사들은 모두 코웃음친다. 수도권도 아니고 한나라당의 ‘안방’인 대구에서 치러지는 재선거에 유 전 의원이 아니면 안된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만약 15명의 공천 신청자 중에 당선 가능성 있는 인사가 한 명도 없다면 한나라당이 문을 닫아야 할 형편 아니냐”고 꼬집었다.
유 전 의원이 자신을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장으로 ‘픽업’, 정치권 입문의 계기를 만들어 준 이회창 전 총재에게 지원유세를 요청한 것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유 전 의원측은 “이 전 총재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향수는 강한 것 같다”, “대구에선 박 대표보다 이 전 총재 인기가 월등하다.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만큼 이 전 총재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해 ‘지원요청설’을 뒷받침했다.
▲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해찬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시정연설을 하는 도중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왼쪽), 전여옥 대변인(오른쪽)이 뭔가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 ||
당장 당내에서는 비주류는 물론 주류에서도 이 전 총재의 대구 방문 계획이 알려지자 “이 전 총재나 유 전 의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이라며 못마땅해 하는 기류다. 유 전 의원이 당장의 선거에서 조금 도움을 받겠다는 계산에 가뜩이나 최근 들어 정계 복귀설이 나도는 이 전 총재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여러모로 사려 깊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내 소장파 의원 모임인 ‘수요모임’의 한 의원은 “박 대표의 최측근이라는 유 전 의원이 ‘옛 주군’인 이 전 총재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얘기를 듣고 솔직히 놀랐다. 이 전 총재가 박 대표의 대권 가도에 잠재적인 라이벌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 아니냐. 더구나 대구는 이 전 총재의 정치 복귀를 강력 주장해온 팬클럽 ‘창사랑’의 근거지임을 유 전 의원이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밖에 박 대표의 ‘열혈 측근’, ‘실질적인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전 대변인을 보는 당내 시선도 여전히 곱지 않다. 비주류를 겨냥한 ‘뺑덕어멈’ 발언과 ‘대졸 대통령론’ 등의 구설로 당 안팎에서 빗발치는 경질 요구에도 박 대표의 신임을 방패로 꿋꿋하게 현직을 유지해온 전 대변인. 이번 재·보선 기간엔 열린우리당측이 부재자신고서를 일괄접수하면서 금품을 제공한 듯한 발언을 했다가 여당측에 의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열린우리당이 발끈한 것은 전 대변인이 10월12일 국회 브리핑에서 꺼낸 발언 때문. 전 대변인은 같은 당 이정현 부대변인이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이 당원들을 모아 대리접수를 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경기도 부천 원미 갑 지역을 확인한 결과, 부재자 신고서 5백 매가 무더기로 대리접수된 상황을 포착했으며 정당에서 모아서 대리접수한 경우는 열린우리당에 해당한다”고 발표하자 뒤이어 “1표에 5만원이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가세했다.
한나라당은 전 대변인 등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고발 조치에 맞서 맞고발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율사 출신 의원들은 대리접수가 현행 법률에 위반한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여당측이 금품으로 부재자들을 모은 듯한 인식을 준 전 대변인의 발언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놔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 율사 출신 초선 의원은 “현행 선거법 아래선 더 이상 ‘죽기 아니면 살기’, ‘이기면 그만’이란 식의 선거전이 통용될 수 없다는 점은 17대 국회 들어 의원직을 상실한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데서 명확히 알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전 대변인 등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사실상 매표 의혹을 제기한 것은 위법 소지가 많으며 당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