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고건 전 총리를 보좌했던 ‘동숭동팀’이 확대 개편돼 파장이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 9월12일 한 행사에 참석한 고 전 총리. | ||
이 모임은 향후 고건 신당 창당을 위한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준’은 국정 분야별로 23개 분과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있는데 앞으로 40~50대 전문가 그룹 1천여 명의 영입을 조직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고 전 총리측은 대권주자 여론 조사에서 1년여 이상 1위 자리를 고수해오다 지난 10월 중순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추월당한 뒤부터 지지율 하락을 고민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고 전 총리 주변에서는 그동안 향후 진로를 놓고 신당 창당과 다른 당으로의 ‘입성’ 등 두 가지 카드를 놓고 고민해왔다. 그런데 ‘한미준’ 출범을 계기로 신당 창당 작업에 초점을 맞출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과연 ‘한미준’은 향후 정가에 어떤 돌풍을 일으킬까. 고건 전 총리 최초의 대권 사조직인 ‘한미준’의 실체를 따라가봤다.
최근 고 전 총리의 옛 선거기획팀인 ‘동숭동팀’이 본격적인 부활 계획을 세우고 물밑에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정치권에 파문이 예상된다. 사실 고 전 총리에게는 이렇다 할 사조직이 없었다. 그는 대권 도전의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측근들에게 일체의 조직 활동을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고 전 총리 개인 차원의 조직 관리는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동숭동팀’과는 그동안 비공식 만남을 가지며 큰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진다.
‘동숭동팀’은 지난 1998년 서울시장 선거 때 고 전 총리의 선거사무실이 그의 자택 소재지인 동숭동에 있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팀은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의 공식 선거대책본부는 아니었지만 서울시장 선거를 막후에서 지원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었다.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후보는 고건 후보의 병역 미필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무차별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동숭동팀은 막후에서 치밀한 대응 전략을 수립, 고 후보가 최병렬 후보에 압승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 강홍빈 교수(왼쪽), 김정탁 교수 | ||
당시 동숭동팀의 면면은 화려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 기획팀장, 김한길 열린우리당 의원(당시 민주당 의원)이 방송팀장, 김정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전략홍보팀장, 강홍빈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당선 후 서울시 부시장 역임)가 정책팀장으로 활동하며 고 후보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다.
동숭동팀은 정 장관과 김 의원 등 현역 정치인이 빠지긴 했지만 최근까지도 당시 멤버 대부분이 참석하는 연말 송년모임 등을 꾸준히 가져 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이 모임은 강홍빈 전 서울시 부시장이 주도하고 있는데 고 전 총리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고 전 총리는 동숭동팀의 전략기획 능력을 높이 사 이들과 계속 인연을 맺어왔다는 후문이다.
그 때문인지 지난 2002년 대선 때는 고 전 총리가 대권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동숭동팀이 재가동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정가에 흘러나왔다. 하지만 고 전 총리가 대권 도전의 꿈을 접으면서 동숭동팀은 재가동되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바 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고 전 총리가 대권주자 선호도 1위로 부상하자 정치권에서는 또 다시 동숭동팀의 존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1998년 서울시장 선거 이후 해체되다시피했던 동숭동팀이 극비리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이 정치권에 포착되고 있다는 식의 추측성 보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의 ‘몸조심’과 구체적인 조직 관리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그 동안 동숭동팀의 부활은 물밑 소문만 무성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동숭동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 모임의 ‘대변인’격인 김진수 총회신학연구원 교수는 동숭동팀에서 사무국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전략홍보팀장으로 같이 일했던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와 동숭동팀 재건과 관련, 깊숙한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고 전 총리와 호흡을 맞춰온 몇 안 되는 최측근 인사들이라 누구보다도 고 전 총리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두 사람은 고 전 총리측과도 이번 사안에 대해 물밑 교감을 나누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고 전 총리 주변에 여러 사조직 형태의 모임이 있지만 고 전 총리가 극구 만류해 정치조직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번 ‘한미준’ 출범의 경우 고 전 총리의 최측근 인사들로 지도부가 결성되고 구체적인 플랜까지 짜여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진수 교수는 동숭동팀 부활과 관련해 “앞으로 동숭동팀을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으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현재 출신지역, 학맥 등을 세밀하게 따져 핵심 멤버 인선 작업을 진행중이다. 그리고 오는 10월26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한미준 발기인 대회를 가지는데 그 결과를 고 전 총리에게 ‘보고’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미준’은 이미 학계 언론계 법조계 종교계 등의 인사들과 두루 접촉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한미준’은 기본조직 외에 국정분야별로 23개 분과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있다. 연말까지 전국의 40~50대 전문가 그룹 약 1천여명에 대한 영입 작업도 완료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미준’의 대표로는 한국정책학회 초대 학회장을 역임한 성균관대 허범 전 교수가 내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허 전 교수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원 대선공약 토론에서 주제발표를 하는 등 현실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고 전 총리와도 개인적 친분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리고 집행위원장은 민변 대변인을 역임했던 P변호사가 맡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 지난 9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거리 유세를 하고 있는 고건 후보. 당시 고 후보는 공식 일정을 마치고 항상 ‘동숭동팀’에 들러 선거 전략을 수립했다고 한다. | ||
강 전 부시장은 고건 전 총리가 시장에 취임할 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을 맡으며 고 전 총리를 보좌했다. 그 뒤 서울시 행정 1부시장을 맡았는데 당시로선 파격 인사였다고 한다. 강 교수는 원래 도시계획 등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행정 2부시장이 적임이었지만 고 전 총리가 그의 전략 기획 능력을 높이 사 행정 1부시장을 맡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강 교수는 “고 전 총리가 조직 장악 과정에서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 같은 묘미가 있었다”고 ‘주군’에 대해 극찬을 한 바 있다. 고 전 총리는 요즘도 강 전 부시장을 자주 만나 정치적 조언을 듣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도 ‘한미준’의 부대표로 내정되었다고 한다. 그는 동숭동팀의 핵심 멤버로 활동한 바 있는데 현재까지도 고 전 총리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한미준’의 사무처장은 민주당 총무국장과 동숭동팀 사무국장을 역임했던 김진수 총회신학연구원 교수, 기획위원장에는 이회창 대선 후보의 ‘부국팀’에서 정책담당을 역임한 J씨, 조직위원장에는 민주노조운동가 출신의 Y씨, 홍보위원장에는 개혁당 출신의 언론인 L씨, 여성위원장에는 이화여대 출신의 무용과 K교수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모임의 또 다른 핵심멤버 J씨는 지난 두 차례 대선 과정에서 조직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최근엔 이명박 캠프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데 이번에 고 전 총리 캠프의 ‘삼고초려’에 응해 전격 합류했다고 한다.
그는 ‘한미준’의 향후 성격과 관련해 “앞으로 ‘한미준’은 고 전 총리의 지역적 기반이 약한 대구·경북에 전진기지를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 신자인 고 전 총리의 빈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불교계 인사 영입에 특히 신경을 쓸 예정이다. 현역 의원도 적극 모셔올 생각이다. 이인제, 박찬종씨의 예를 보라. 주변에서 도와주는 동료 의원들이 없었기 때문에 인기도 신기루처럼 날아가 버린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고 전 총리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각계 인사 8천 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철저하게 관리한 바 있다. 그 자료가 계속해서 업데이트되었는데 이번 영입 작업에 유용하게 쓰일 예정이다. 한미준은 고 전 총리의 지지율 하락을 극복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전국에 거점을 확보, 대선까지 치고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동숭동팀이 ‘한미준’으로 확대 개편되는 것과 관련해 고 전 총리측에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한 측근은 “아직 고 전 총리는 그런 조직과 관련해 어떤 입장도 정리된 게 없다. 주변에서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미준’ 출범을 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다양하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사실 친 박근혜 계열로 분류되는 인사 가운데 고건 전 총리와의 ‘조합’에 관심을 보이는 의원들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한미준’ 출범이 가시화되고 그것이 신당 창당으로 이어진다면 양당의 합당을 통해 ‘박근혜-고건’ 카드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권 전쟁은 아직 멀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의원은 “고 전 총리도 다른 당에서 대권주자로 추대해주길 기대하지 말고 자신만의 정치를 한번 해봐야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고 전 총리가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최근 지지율 하락도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최선의 기회가 올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 아직 고 전 총리를 지지해주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