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8일 문희상 의장과 상임 중앙위원들이 재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일괄사퇴 선언을 한 후 인사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거라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하지만 당과 청와대의 이상기류가 형성된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보건복지 장관의 당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정·청 쇄신도 시간문제로 다가왔다. 여권이나 정국에 있어 노 대통령의 영향력은 더 이상 없다는 말도 나온다. 과연 여권이 어떻게 뒤바뀌는 걸까.
# 당권경쟁 ‘재야파’ 뜨나
문 의장 체제의 당 지도부가 잔류를 고집하면서 대선주자들의 조기 복귀에 반대했던 논리는 노 대통령의 레임덕 우려 때문이었다. 반대 논리로 이들의 복귀가 기정사실화되면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당·청 갈등의 심화 속에 레임덕이 가속화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여권 일각에서 “대선주자들이 복귀하면 대통령과 차별화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정 장관이 최근 광주 5·18 묘역 참배 및 호남 지역 방문 등 정치행보를 재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결단을 앞둔 액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은 일단 과도체제로 전환될 전망이지만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 개최가 움직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열린우리당은 전에 없이 뜨거운 당권경쟁의 흐름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당권을 노린 ‘대주주’들이 그야말로 완충장치 없이 정면승부를 벌이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바꿔 말해 노무현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차기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정동영·김근태 장관이 당의 전면에 부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당내의 역학관계도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 사퇴를 주도한 김 장관 계열의 재야파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고, 사실상 원톱체제로 정기국회를 이끌게 된 정세균 원내대표의 영향력, 향후 구성될 비대위의 인적구성 여부에 따라 지도부 공백 상태의 여당은 임시전대까지 상당기간 혼미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 중진인사로 비대위 구성
현 지도부의 사퇴로 당은 당분간 비대위 체제로 운영된다. 비대위는 여당 지도부인 상임중앙위원회를 대체하는 기구로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구성되기 전까지 관리형 과도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에 따라 비대위 위원장도 당의 위기상황을 수습하고 전당대회 전까지 당을 안정적이고 중립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사로 선정될 전망이다. 특히 비대위 위원장은 명예봉사직에 가까워 계파별 이해관계를 떠나 두루 신망을 얻을 수 있는 당내 중진 인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당내에서는 유인태 임채정 유재건 의원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최종 선정 때까지 인물난을 겪을 전망이다. 이들은 당내 어느 계파와도 척지지 않는 등 균형감각을 갖췄다는 평가이나 위원장직을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비대위가 정기국회를 원만히 이끌 책무도 있는 만큼 원내 사령탑인 정세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까지 겸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의견도 인선위 내에서 대두되고 있다. 이와 함께 비대위원 구성도 계파간 기싸움 등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비대위가 전당대회 전환기구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만큼 전대를 앞두고 각 계파별로 비대위에 일정한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초 첫 비대위 구성 때에도 구당권파와 재야파 등 각 계파가 막후 협상을 통해 비대위 위원을 선정했던 사례가 있었다. 따라서 이미 각 계파별 대표주자들이 골고루 포진해 있는 시·도당 위원장들로 인선위원회가 꾸려진 만큼 이번 비대위 구성도 계파별 안배가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 대권주자들의 합종연횡
대권 주자들의 ‘순차 복귀’ 주장이 이런 흐름 위에서 힘을 얻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들의 당 복귀가 노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차기 주자들이 한꺼번에 당으로 복귀하지 않는 ‘순차 복귀론’이 날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의 힘이 빠지는 것도, 당이 대권경쟁에 휘둘리는 것도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며 “당의 면모를 일신하는 것도 미룰 수 없는 만큼, 차기 주자들이 순차적으로 당에 돌아와 당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당의 핵심 당직자도 “여러 부작용을 막으면서 당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방안은 차기 주자들의 순차 복귀밖에 없다”고 이에 동조했다. 다만 이해찬 국무총리,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천정배 법무부 장관 등 정부에 가 있는 차기 주자들 중 누가 먼저 당에 복귀할 것인가는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 구성을 연결고리로 한 계파간 합종연횡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2007년 대선의 전초전이 될 내년 5월 지방선거가 목전에 다가오면서 여야 정치권의 치열한 수읽기와 세 싸움이 가속화되고,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국면으로 전개될 조짐이다.
이와 관련, 특히 지도부 인책론을 놓고 공동보조를 취했던 김근태 진영과 신진보연대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고, 특히 정책적 코드와 성향이 비슷한 참정연 그룹과의 조합도 점쳐지고 있다. 이 경우 정동영 진영을 압도하는 세력화가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맞서 정동영 진영은 친노 직계와 중진그룹, 386 출신 등과의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 노 대통령의 다음수는
그렇지 않다. 단 하루를 남겼더라도 권력은 권력이다. 하물며 임기가 절반 가까이 남은 노 대통령의 경우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향후 정국에서 최대변수 중 하나는 노 대통령의 정국구상이다. 노 대통령은 ‘연정론’에 버금가는 메가톤급 제안으로 다시 한번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노 대통령의 탈당과 거국 중립내각 구성, 조기개헌 공론화 등과 함께 남북 관계의 획기적 국면 전환 등이 ‘포스트 연정구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