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테랑 vs 루키 지난 31일 열린 삼성과 TG의 경 기에서 서장훈(왼쪽)과 김주성이 첫 대결을 선 보였다. | ||
1. ‘벌떼 농구’ 떴다
초장부터 ‘벌떼’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LG 세이커스와 울산 모비스가 벌떼 전법으로 재미를 보고 있기 때문. 벌떼 농구란 주전 한두 명을 제외하고 선수 전원을 기용하는 것을 말한다. 선수를 번갈아 기용하기 때문에 체력 손실을 막을 수 있고, 승부를 결정짓는 4쿼터에 주전을 투입, 전세를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최희암 감독의 모비스는 강동희 김영만을 내보내고 연세대 제자인 우지원과 오성식을 데려왔다. 개막 이전에 연습경기에서 다소 경기 운영이 매끄럽지 못해 하위권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출발이 좋다. 최 감독은 ‘1위에서 약간 양보해 4강을 바라본다’는 자신의 말을 착실히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난 29일 LG전에서 나타났듯 박빙의 순간에 선수들끼리 손이 맞지 않아 실책을 범하기도 했지만 일단 합격점을 받은 듯하다. 최 감독의 벌떼 전술은 마구잡이가 아니라는 데에서 다른 팀에게 위협적이다. 상대 팀을 완벽하게 분석한 뒤 데이터에 기반한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 최 감독은 30일 관중석에서 KCC와 SK 나이츠의 경기를 지켜보며 우승후보인 KCC를 누를 수 있는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한 농구 관계자는 “지난 시즌에 LG 김태환 감독도 벌떼 전술을 펴 3연승 효과를 봤다”며 “벌떼 농구는 전술이라기보다는 백업이 주전만큼 탄탄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골고루 실력이 뛰어난 백업요원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문제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 감독의 빠른 선수회전에 다른 팀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앞으로 이슈가 될 전망이다.
▲ 최희암 감독 | ||
서장훈이 부드러워졌다. ‘서장훈’하면 큰 키 이외에도 ‘짜증’내는 얼굴이 팬들의 뇌리에 각인돼있는 게 사실이다. ‘국보급 센터’라는 별칭답게 관심도 비판도 많이 받는 서장훈. 27일 전주 KCC와의 경기에서 서장훈은 김희선과 함께 팀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전반 서장훈의 선전에 KCC의 수비가 그에게 집중됐지만 예전처럼 짜증스런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서장훈이 부드러워진 이유에는 일단 이적생으로서 자신의 책임과 몫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는 달라진 그의 마음가짐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아시안게임 때 야오밍과의 대결에서 이긴 뒤 ‘국내용 센터’라는 부담감을 웬만큼 떨쳐 버린 게 아니냐는 주위의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상에 오르고 나니 초조함이 사라지고 너그러움이 자리잡은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웃돈 파동’ 때문에 징계를 먹은 서장훈이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많은 농구팬들이 서장훈의 ‘부드러운 남자’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3. 겁없는 루키들
이번 시즌의 특징이라면 용병들의 능력이 거의 평준화돼 있다는 것이다. 초기에 믿었던 용병들도 교체되거나 교체설이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그러나 국내 루키들은 예상대로 훌륭히 팀을 보필하고 있다. 우선 서장훈과의 맞대결로 이번 시즌 최고의 흥행사로 떠오른 원주 TG의 김주성. 서장훈보다 2cm 작은 키지만 탄력은 김주성이 앞선다. 약점으로 꼽히던 체력과 중량감도 시즌 전에 상당히 다져진 상태라 서장훈의 적수로 손색이 없다. 굳이 농구팬들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두 거인의 대결은 모든 국민들의 시선을 고정시킬 예정이다.
빅 루키 김주성을 제외하고도 알토란 같은 루키들은 많다. 빡빡머리가 돋보이는 코리아텐더의 진경석. 어려운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위기 때마다 터지는 겁 없는 3점슛으로 당당히 루키열전에 그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SK의 김한권은 큰 키에 외곽 슛까지 능해 조상현의 부재를 어느 정도 해소시켜줬다. 그러나 30일 KCC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발목을 다쳐 약 3주간 출장이 어려울 전망. 대신 1년 선배인 김종학이 잘 버텨주고 있다. 모비스의 특급신인 정훈도 최희암 감독 스타일에 적응만 잘하면 ‘다이너마이트급’ 효과를 낼 것이라는 것이 모비스 스태프의 평이다.
▲ 진경석 선수 | ||
개막전 이변이라면 코리아텐더가 예상을 깨고 선전한 것. 모기업으로부터 원조가 끊긴 상태로, 아껴놓았던 전형수까지 모비스에 내주면서 눈물을 머금은 채 시즌을 시작해야 했지만 코리아텐더에게는 시련이 곧 자극제였다. 김기만 황진원 진경석 등 삭발 투혼을 불사르며 선두에 섰고 용병까지도 한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에릭 이버츠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이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안드레 페리(32)는 경기마다 선수들을 독려하며 나이 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통역 정건씨는 “처음에는 용병답게 ‘이겨야 돈도 받지’라는 분위기였는데 차차 팀에 ‘정’을 붙인 것 같다”며 “용병에게 실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불러내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