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귀환이 기정사실화된 최경환 부총리를 중심으로 친박계가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왼쪽은 김무성 대표. 연합뉴스
친박계는 최경환 부총리를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순방을 마친 직후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고, 최 부총리를 비롯해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등의 복귀가 10일을 전후해 이뤄질 것으로 보이고 있어서다. 친박계 핵심 중진 의원은 지난 11월부터 “12월 10일 전후로 개각이 이뤄진다. 그게 우리의 시간표”라 귀띔한 바 있다.
친박계가 주축이 돼 움직이는 새누리당 국가경쟁력강화포럼(국경포럼)은 이달 중순 최 부총리를 초청해 대규모 세미나를 기획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초이노믹스’가 붙은 최 부총리의 경제정책 전반을 경청하고 향후 경제정책 기조와 비전 등에 대해 청취하자는 것이다. 정치권은 정부에서 수고한 최 부총리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대규모 환영식을 거행해주는 것이라 해석한다. ‘좌장’의 복귀를 열렬히 환영하는 셈이다.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주도했던 국경포럼은 이후 청와대 정무특보를 맡았던 윤상현 의원이 지휘해왔다. 한때 10여 명으로 줄었던 국경포럼은 최근 30명 안팎으로 참가 인원이 늘었고 12월 세미나에는 상당한 인원이 찾을 것이란 후문이다. 국경포럼 내 친박계 인사들이 다소 중립지대에 있는 초·재선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최근 한층 강화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서다.
한 초선 의원은 “아무개 의원이 최근 전화를 걸어와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하더라. 나가봤더니 의원 네 분이 계셨는데 이런저런 돌아가는 얘기, 앞으로 공천, 김무성 대표 리더십,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라”면서 “결국 핵심은 ‘잘 생각해보시라, 친박의 세상이 온다’는 얘기더라. 지금 당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그 말의 취지가 스카우트 제의? 여하튼 그런 의미로 들렸다”고 전했다.
여의도 정가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종합하면, 친박계는 현행 당헌·당규대로의 공천룰을 관철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당원과 국민의 의사반영비율을 50 대 50으로 해놓은 당헌·당규를 그대로 이어갈 땐 당원을 자기편으로 확보해놓은 현역 국회의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인지도에서 앞서는 현역 프리미엄까지 합하면 사실상 현행 당헌·당규는 ‘현역을 위한’ 룰인 셈이다.
그렇게 되면 19대 국회의원들이 모조리 당선될 수 있겠지만, 친박계가 노리는 것은 알려진 대로 우선추천지역, 즉 전략공천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서울 강남, 대구·경북(TK) 구분 없이 우선추천지역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 자기 사람 심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수부 장관을 그만두고 여의도로 돌아온 유기준 의원은 언론 인터뷰와 사석에서의 대화를 통해 ‘친박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다. 이른바 ‘가이드라인’으로 읽힌다.
“정부와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이 당선되어야 한다. 진실한 사람은 그런 사람을 지칭하는 것.” “집권당 처지에서는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은 것.” “현행 당헌·당규에 맞춰 속히 공천룰을 확정해야 한다.”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작은 지역에 우선추천을 해봐야 당선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경쟁력이 더 높은 후보가 현역에게 밀려 나오지 못한다면 유권자는 실망한다. 영남권뿐 아니라 전국에 경쟁력 높은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
드러내지 않았던 친박계의 의중이 제시되면서 일각에선 친박계가 ‘연말 거사’를 준비 중이란 말을 한다. 앞서 언급한 친박계의 움직임이 거사를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이 거사는 김무성 대표의 실정(失政)을 종합해 책임을 묻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란 말이 돈다.
일각에선 최 부총리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리더십을 보였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야당이 예산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으면 (국회가 요구하는) 예산안 수정안을 만들지 않겠다’고 배수의 진을 친 최 부총리는 1~3일을 국회에서 보내며 청와대·정부의 메신저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다. 당 최고위원회의는 물론 의원총회, 긴급당정회의 등에 모두 참석해 목소리를 높였다.
각종 행사장에서 최 부총리는 수시로 어딘가와 통화하며 상황을 알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휴대폰을 들고 속삭이는 그 모습, 마치 박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하고 있다는 그 모습 하나로 의원들이 모두 주목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이 다시 ‘수직적 관계’로 회귀하는 것에 못 마땅해 하는 기류도 없지 않아 김 대표를 향한 친박의 거사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해석도 다분하다. 게다가 김무성 대표 측도 이런 거사에 대비한 물밑작업에 한창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대표 주변부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은 물론 전국에서 출마를 검토 중인 예비후보들의 성향을 모조리 분석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즉, 친박 행적이 있는지와 과거 발언 등을 통한 성향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인사 중 누구와 가까운지 등도 검토 대상이라고 한다.
또 현행 공천룰대로 할 경우 어떤 판단조항이 적절한지도 분석 중이라고 한다. 범죄경력 등 도덕성 적격 여부, 출판 여부, 지역 기반 및 여론, 현역 의원이라면 본회의 출석이나 입법화 수, 구설 유무 등 후보 적격성 여부를 따질 A~Z까지를 파악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친박계의 우선추천지역 관철에 대응하기 위한 김 대표 측 나름의 대응전략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관측한다. 이번 예산안 정국에서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이 머무른 프랑스 현지시각을 검색하듯 한 발 한 발을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안부터 쟁점법안 처리까지 국회에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어 친박계의 흠집 내기가 쉽진 않을 전망이라는 얘기다. 올 연말 여권에도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