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거수경례를 하는 고건 전 총리. | ||
강준만 교수는 고 전 총리의 ‘고공행진’에 대해 “국민들이 ‘중용과 경륜의 리더십’을 갈망하는 가운데 현실 정치에 대한 종합적 환멸이 찾은 도피처가 고건”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고 전 총리를 보며 ‘종합적 환멸이 찾은 도피처’로서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 매력에 상당 부분 매료돼 있는 것은 아닐까.
청계천 개통과 함께 지난 10월부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고 전 총리와 1, 2위를 다투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도 또 하나의 ‘탐구 대상’이다. 이 시장의 지지율은 10개월 전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상승하면서 지난해 말까지 2, 3위였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제치고 단숨에 2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 시장의 경우도 ‘청계천 특수’만으론 지지율 급상승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과연 고 전 총리의 고공행진과 이 시장의 인기 급상승의 비밀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정치적’ 해석이 아닌 ‘인간적’인 측면에서 그 배경에 접근해본다.
‘인간’ 고건을 읽을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고형곤’이다. 지난 2004년 작고한 그의 선친이다. 고형곤 박사는 연희전문학교 교수 재직시 낳은 아들의 이름을 직접 지으면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이름자를 땄다고 한다. 작고한 선친이 고 전 총리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한 아들에 대한 열정은 교육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그의 선친이 고 전 총리에게 남긴 ‘공직 3계’(술 먹고 실수하지 마라, 청렴하라, 줄서지 마라)는 정·관가에서 유명한 ‘잠언’이 됐다. 고형곤 박사는 고 전 총리가 37세에 전라남도 지사로 부임하였을 때 청렴할 수 있도록 집에서 돈을 모아 판공비로 쓰도록 전달해 주었을 만큼 아들의 자기관리에 대해 엄중한 잣대를 요구했고 고 전 총리도 그것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현재의 반열에 오른 측면이 있다.
고 전 총리를 아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에 대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믿음의 기저에는 고 전 총리가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대한다는 신뢰가 깔려 있기도 하다.
예전 주간지의 한 기자는 고 전 총리의 ‘정중한’ 배웅을 받고 매우 감격했다고 한다. 그 기자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을 때 ‘180㎝의 그가 아들뻘 되는 기자를 향해 바지 재봉선에 양손을 모은 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와 명륜동 이웃사촌인 박진 의원은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를 동네에서 자주 보는데 좌판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늘 깍듯하게 인사하는 것을 볼 때마다 경외심마저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그를 아는 지인들은 “고 전 총리는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회식 자리에 가면 상석에 앉는 법이 없다” “사무관 때부터 지금까지 비서를 시켜 전화를 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등의 ‘호평’을 곁들인다.
고 전 총리를 생각할 때 또 떠오르는 단어는 ‘청렴함’이다. 고 전 총리는 공직 생활만 40여 년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스캔들에 휘말려 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런 사실을 가장 자랑스러워한다. 서울시청의 옛 간부는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결벽증이라고 느낄 정도로 오해받을 일을 하지 않는다. 오해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단 둘이 만나는 경우가 없다. 반드시 오픈된 장소에서 만난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혹자는 고건 전 총리를 떠올리며 ‘바른생활맨’으로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알고 보면 그도 ‘터프가이’다.
고 전 총리는 지난 1956년 서울대 정치학과 1학년에 재학중일 때 지금의 부인 조현숙씨(당시 이화여대 국문학과 1학년 재학중)를 연합문학서클 ‘미네로스’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조씨와 교제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탄 그녀를 쫓아가 과감하게 대시를 했다고 한다. “현숙씨를 평생 호위해드릴 호위병입니다”라는 사랑의 선전포고와 함께. 그 뒤 날마다 그녀의 집에 찾아가 마침내 교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적인’ 과감성은 그가 공직에 있었을 때의 ‘소신’과도 맞물리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2004년 대통령 권한대행에서 물러날 때 청와대 386 참모들의 원성을 들으면서도 끝까지 각료 총리 제청권 요구를 듣지 않고 청와대를 떠난 것을 들 수 있다.
고 전 총리는 늘 미소짓는 얼굴에 여유 있는 표정을 하고 다닌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허허실실’ 전략일 수도 있다. 그는 아랫사람들이 잘못을 하게 되면 “꾸짖을 때는 날카롭게 혼을 낸다”고 한다. 그와 함께 일을 했던 한 전직 공무원은 “평소에는 마음씨 착한 아저씨 같지만 그에게도 불 같은 면이 있다. 겉으로 크게 화를 내지는 않지만 조용히 서류를 넘기며 불만을 표시할 때는 차라리 크게 꾸중을 듣는 게 나을 정도로 초긴장 상태가 된다”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청빈한 삶에 출중한 업무 능력을 발휘해 관운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처세의 달인’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내무부 장관 시절 고 전 총리를 발탁한 바 있는 홍성철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사람이 성실하고, (또 스스로) 노력해서 자신을 연마해놓으니까 사람들이 그를 데려다 쓰고 있을 뿐 관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정반대의 견해도 있다. “고 전 총리는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이라는 지적이다. 회의에 나와도 말을 잘 안하고 남을 건드리지 않으니 사람 좋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 그래서 그를 ‘보스형’이 아닌 ‘참모형’으로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잡초 같은 근성’이 부족하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과거 공직자일 때는 어느 정파에도 쏠리지 않으면 되지만 앞으로 자신만의 정치를 하게 되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몇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정치인으로 꼽힌다. 고 전 총리의 경기고 후배인 한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고건 전 총리가 지난해부터 1년이 넘게 계속 여론조사에서 1등을 하는 것이 단순히 상대적으로 이익만은 아니라고 본다. 고건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 그 무엇을 국민들이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고건만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신뢰라고 본다.”
▲ 이명박 시장 | ||
그런데 이명박 시장은 앞뒤 가리지 않는 불도저 성향 때문에 인간미가 결여되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과연 그럴까.
이 시장은 딱딱한 이미지와는 달리 의외로 소탈한 부분이 많다. 그의 부인은 “유머와 세심함이 매력”이라고 그를 칭찬한다. 서울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 시장이 직원들과 대화할 때 옛날 애인 이야기도 하는 등 스스럼없이 대한다. 이게 큰 흡인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인상학 박사 주선희씨는 “이 시장은 눈이 날카롭지만 살기가 없고 편안하다. 웃을 때는 이웃집 아저씨 눈빛 같다. 인물이 없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은 좋다”라고 평가한다.
이 시장은 흔히 ‘불도저’라는 이미지로 통한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 “저돌적인 돌쇠형이 아니라 치밀한 꾀돌이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시장 또한 ‘불도저’라는 별명에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는 몇 달 전 기자에게 “CEO에게 강한 추진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전에 치밀한 검토와 계산이 있어야 강한 추진력이 나온다.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은 없다”라고 강하게 반박한 바 있다.
그와 일해본 사람들은 그의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추진력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치밀함’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이에 대해 “일에 관한 한 그는 간부들을 쥐 잡듯 다그친다. 국장이 보고하면 이 시장은 반드시 ‘거기 가 봤어’라고 묻는다.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면 ‘그럼 누가 다녀왔느냐’고 묻는다. ‘과장이 다녀왔습니다’는 답이 나오면 ‘그럼 국장 당신은 현장에 가보고, 과장이 보고하라고 그래’라고 한다. 국장들이 현장에 나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차라리 그에게는 ‘컴도저’(컴퓨터+불도저)라는 별명이 제격이다. 그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도 이에 대해 “이 시장에게 밀어붙이기식의 이미지가 굳어 있는 이유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사돼 있기 때문이다. 아마 사람들이 현대의 성공은 정주영의 밀어붙이기와 이명박의 치밀함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풀이한 바 있다.
이 시장에게도 단점은 있다. 그는 가끔 너무 직설적으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 “가슴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성공 신화’를 과신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내리누르려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그를 보좌하는 몇몇 참모도 “(이 시장이) 너무 자신감이 많다”며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태도가 불편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올해 펴낸 책 <사람 vs 사람>에서 “자신의 성공 경험을 기초로 한 그의 자신만만한 문제해결 방식에 문제제기를 하긴 쉽지 않지만,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거대한 사회적 권력과 맞물려 ‘통제 불가능한 파워’가 될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이 시장을 평가하기도 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