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일부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가 1위에서 밀려나 관심을 끈다. ‘독주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관측과 함께 질문방식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 ||
지난 7월 한 기자의 ‘도발적’ 질문에 대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내뱉은 자신에 찬 대답이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차기 대권 출마 의지를 숨기지 않으면서, “여자가 무슨…”이라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 “여론조사 해보면 결과가 다르게 나올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정치인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기가 많은 줄 알았던 정치인들의 경우 선호도 조사 수치가 엉망으로 나오면 그야말로 ‘독’이 될 수도 있다. 여론조사가 정치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정치적 도구로 쓰이는 셈이다. 특히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언론사에서 여론조사 기관의 협조를 얻어 실시하는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는 향후 권력의 향배를 점쳐본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크다.
그런데 최근 고건 전 총리의 ‘독주’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여론조사 기관이 발표하고 있는 선호도 조사 순위도 엎치락뒤치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 조사에선 ‘박근혜 1위, 고건 3위’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대체 왜 그럴까. 민심이 수시로 변하는 걸까. 대권주자 선호도를 둘러싼 여론조사 결과의 그 이면을 따라가봤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의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는 지금까지 대체로 비슷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먼저 이들 기관이 올해부터 최근까지 발표한 대권주자 선호도 결과를 살펴보자.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문화일보>와 공동으로 실시한 선호도 조사에서는 고건 전 총리가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고 전 총리는 지난 2004년 12월 32.1%의 지지도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올 7월에는 35.1%까지 치솟으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9월 말에 27.9%를 기록한 뒤 지난 10월 말에는 27.0%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난해 12월 9.9%에 머물렀지만 올해 7월 15.1%, 9월 말에는 20.3%로 크게 상승한 뒤 10월 말에는 21.6%로 고 전 총리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19.2%로 이 시장을 크게 앞섰지만 올 7월에 12.9%로 떨어진 뒤 10·26 재보궐 선거를 지나면서 10월 말에는 19.2%로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계속 1%대의 지지도로 고전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복지부 장관, 이해찬 총리 등의 여권 대권주자들은 2~10%의 지지도를 형성하며 선두권과는 아직도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리서치플러스와 <한겨레>의 조사결과도 KSOI의 결과와 비슷하다. 고건 전 총리-박근혜 대표-이명박 시장 순으로 지지도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지난 11월18일 실시된 조사에서는 고 전 총리가 20.7%로 여전히 선두를 지켰지만 6개월 전에 비해 힘이 많이 빠진 모습이다. 또한 이명박 시장(17.7%)이 박근혜 대표(16.2%)를 누르고 2위로 뛰어오른 점이 눈에 띈다.
미디어리서치는 주로 <한국일보>와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는데 올해 10·26 재선거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는 고 전 총리가 30.2%로 여전히 1위를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장은 24.0%로 2위, 재선거 전승을 이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19.3%로 3위를 기록했었다.
이상 소개한 조사 기관들은 대부분 여론 조사방법이 비슷하다. 면접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응답자의 확실한 대답을 유도한다는 것. KSOI 한귀영 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조사 과정 전부를 감청하고 결과의 30%는 재검증을 받도록 해 허위 작성된 데이터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 회사는 ‘보조 선호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방법은 선호하는 정치인 이름을 예시해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묻는 일종의 ‘객관식’ 질문 방식이다. 이 방법은 적극적 지지층뿐만 아니라 소극적인 지지층도 함께 보여주는 방법으로서 무응답층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조사기관에서는 고 전 총리가 1위를 빼앗긴 뒤 이 시장에게 추월당했다는 결과를 내놓아 주목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9월부터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팀과 공동으로 매주 대권 주자들의 선호도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리얼미터는 지난 10월 말 10·26 재선거를 전후해 실시한 여론조사를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이 26%의 지지율로 고건 전 총리(23.9%)를 제치고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났던 것. 박근혜 대표는 23.6%의 근소한 차이로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11월12일 발표된 조사에서는 박근혜 대표가 처음으로 대선 후보 선호도 1위로 올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 다음 주도 역시 고 전 총리를 물리치고 1위를 지킨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그 뒤 3주 만에 고 전 총리가 1위로 다시 복귀하는 혼전이 계속되고 있다.
리얼미터 이택수 연구원은 이에 대해 “‘빅3’ 후보가 모두 오차 범위 내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1, 2, 3위의 순위 자체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정도로 초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리얼미터는 다른 기관과 달리 ‘ARS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조사 결과가 다르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한다. 한 기관의 고위인사는 이에 대해 “현재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는 면접원 전화조사가 가장 일반적이다. 숙련된 면접원의 노하우와 질문 방법 등에서 전문성이 있다. 하지만 ARS 조사나 온라인 조사는 면접원이 직접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 대답을 하거나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런데 리얼미터 이택수 연구원은 메이저 회사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는 “모집 표본은 5백명에서 8백명 정도다. 우리는 면접원 전화조사도 해봤지만 그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다. 특히 마케팅 분야는 ARS의 신뢰도가 떨어지지만 정치 같은 단순한 선호도 조사는 상당히 정확한 편이다. 오히려 직접 전화방식은 면접원이 응답자의 대답을 잘못 입력할 수 있는 등 실수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ARS는 본인이 직접 누르기 때문에 그런 실수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권 주자의 선호도 조사는 질문 내용에 따라서도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길리서치는 지난 98년부터 비보조 선호도 조사로 대권주자들의 ‘인기투표’를 실시해오고 있다. 대부분의 기관은 ‘객관식’으로 불러준 뒤 선호하는 후보를 가려내지만, 이 조사방법은 ‘후보’들의 이름을 응답자에게 예시해주지 않고 ‘주관식’으로 직접 그 대답을 듣는 방식이다.
한길리서치는 지난 11월 초 <내일신문>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이 15.0%의 지지도로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표가 12.0%로 2위를 했고, 고 전 총리는 11.5%로 3위에 그치는 ‘이변’이 일어났다. 고 전 총리는 ‘주관식’ 방식으로도 지난 1월부터 계속 1위를 차지했지만 올해 11월 들어서 3위로 주저앉아버린 것.
한길리서치의 한 관계자는 이런 조사 방식에 대해 “객관식 방법과 비교해 장단점이 있다. 이 방식은 무응답층이 늘어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선호도를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특정 주자에 대한 확실한 지지층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변’을 기록한 11월 초의 조사결과와 관련해서는 “고 전 총리가 폭넓은 지지층이 있긴 하지만 열혈 지지세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대권 인물로 딱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이미지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부 조사기관에서는 ‘침묵하는 다수’가 많은 게 우리 사회의 특징인데 굳이 무응답자가 많은 주관식 조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기관마다 조사 방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오차범위 아닌가. 그런데도 선호도 조사 결과에 대해 대권 주자들이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 “언론도 ‘현재 어느 후보가 얼마나 앞서고 있고, 과연 최종 승자는 누굴까’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정책과 이슈 중심의 여론조사를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