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 후반기 승부수를 놓고 장고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월9일 오전 국무회의에 앞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위기관리센터가 추진한 <위기대응 실무매뉴얼> 완료 보고를 받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그럼 노 대통령은 연정론에서 하고자 했던 목표를 포기한 걸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노 대통령은 여전히 한판 승부수를 준비중이다. 노 대통령은 측근들 또는 여당 의원들에게 “연정론의 실패를 만회하고야 말겠다”고 강조한다고 한다. 과연 노 대통령은 무슨 일을 구상하는 걸까. 국민과 정치권에는 궁금증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사례 하나 “당의장이 총리 맡으면 어떨까요…”
최근 노 대통령은 일부 여당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최근의 심경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는 경제현안과 민생문제, 삼성과 금융산업법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중간중간에 시국 및 정국에 관한 민감한 문제들을 건드리는 식으로 의원들의 속을 떠봤다.
노 대통령은 경제 얘기를 하던 중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총리를 맡는 방법은 어떤가요?” “….” 의원들은 하나같이 숨을 죽였다. 아무 얘기가 없자 노 대통령은 다시 화제를 삼성 문제로 돌렸다.
약 30분간 금산법과 관련한 생각을 낱낱이 밝히던 노 대통령은 또 이렇게 얘기했다. “지난번 연정론은 실패했다는 것 인정합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하지만 조만간 반드시 만회하는 구상을 밝히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의원들은 또 다시 침묵 속에 잠겼다.
한 의원은 그날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좋다, 나쁘다는 얘기를 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헛물만 들이키고 나왔습니다.”
▶사례 둘 “대통령이 좀 어색해 보여…”
이에 앞서 청와대를 다녀온 의원들은 이상한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말이 평소의 그답지 않고 어딘지 좀 어색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날 참석했던 한 초선 의원은 “노 대통령이 뭔가 말할 듯 할 듯 하다가 하지 않거나 본안과 관련 없는 다른 말들을 불필요하게 길게 설명해 참석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 참석자는 “노 대통령이 ‘다른 생각’이 많아 보였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식사 후 참석자들과 청와대 녹지원을 찾아 오랫동안 함께 걷기도 했다. 녹지원은 외국의 정상들 같은 귀빈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청와대의 ‘안뜰’이다. 참석했던 초선 의원들은 노 대통령의 ‘이상한 환대’가 뭘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정치경험이 많은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깊은 구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뭔가를 깊이 구상하는 것은 분명하다. 노 대통령 스스로 밝힌 ‘실패한 연정론’이 지역구도 극복이나 양극화 해소를 위해 우리사회 전반의 의사결정구조를 고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그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유효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구상이 뭔지를 예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관련, 최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노 대통령을 모시는 김두관 청와대 정무특보는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이란 전제로 이렇게 밝혔다.
“내년 초는 집권 5년 중에서 3년이 정리되고 4년에 접어드는 해이다. 참여정부 초기가 기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였다면 내년은 실천단계에 접어든다. 실천 과제는 프로그램과 관련해 향후 2년, 길게는 10년의 국정 구상을 내놓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사회 갈등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구상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노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 10월 말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산행 후 “내년 초 ‘국가 미래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후 희한하게도 노 대통령의 미래구상에 대한 얘기는 언론지상에서 사라졌다. 노 대통령의 공개 행사나 일정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일상적인 정책 조율이나 현안 처리는 가능한 한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넘기고 있다. 뒤집어 보면 ‘뭔가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미래 구상 작업의 실무 총괄은 제1부속실장을 지내다 최근 연설기획비서관실을 맡은 윤태영 비서관이 전담한다. 윤 비서관은 참여정부 출범 후 노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온 측근이다. 그는 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고 관리하고 관찰하며 동참한다. 그는 매일매일 노 대통령의 생각을 정리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윤 비서관은 언젠가 “미래 구상을 담아 내년 초 한 권의 책으로 펴내겠다”고 설명한 일이 있다. 발표 시기는 아무래도 내년 연두회견 이후 취임 3주년인 2월25일 직전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렇다면 이 한 권의 책이 노 대통령의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마 ‘아니오’일 것이다. 책 속 노 대통령의 미래 구상엔 경제와 민생과 복지와 국민연금과 고령화사회 대책, 그리고 분산과 균형발전, 통합과 개혁에 대한 로드맵 등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빠진 것이 있다. 기획통으로 불리는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개혁을 기치로 현재의 ‘숨 막히는’ 지역구도와 정치지형을 흔들 만한 대형폭탄, 즉 ‘정치 대구상’이 노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는 중요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연정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정신과 뜻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그 부정적 인식과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는 무엇, 즉 ‘포스트 연정’, 노 대통령이 구상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이 “반드시 만회하겠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윤태영 비서관이 준비하고 있는 ‘미래구상 백서’엔 담길 만한 내용이 되지 못한다.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계산과 이해득실을 거쳐야 하는 사안이지 책으로 내놓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읽은 여당 의원들은 한편으론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를 한다. 아직 윤곽도 없고 내용도 알 수 없는, 그러나 강력한 인화성과 폭발력을 가질 게 확실한 노 대통령의 구상이 어떤 풍파와 파장을 몰고올지 모르기 때문에.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