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총선을 겨냥해 국회 심판론, 여야 각성론 등 여야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대구·경북 물갈이 수준을 넘어 진박으로 다 갈아엎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일요신문 DB
여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6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눈 ‘배신의 정치’ 때보다 요즘 워딩(Wording)이 더 세고 비판적이며 노골적”이라며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만큼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인 박 대통령의 대 국회 심판론이나 대 여야 각성론은 다분히 총선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건 TK(대구·경북) 물갈이 수준이 아니라 정말 진박 즉, 자신에게 충성을 다 하는 사람들로 다 갈아엎겠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일 “국회가 명분과 이념의 프레임에 갇힌 채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이 돼 청년들의 희망을 볼모로 잡는 동안 우리 청년들의 고통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 국회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회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1월에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도리인데,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 할 일은 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기득권 집단’ ‘누구를 위한 국회’ ‘사람의 도리’ ‘립서비스’ ‘위선’…. 여의도에서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는 적지 않다. 친박계 분위기에 밝은 다른 인사는 이런 말도 들려줬다.
“TK에 진박 혹은 신친박 몇 명 꽂고, 서른 명이 되지 않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추천하고, 현재 친박 중 몇 명이 당선된다 해도 후일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을 가능성이 있다. 차출설이니 전략공천이니 공천 지분이니 하며 박 대통령이 여러 의심을 받는 모양새보다 오히려 국회를 적으로 돌려 최대한 많은 충성인자를 여의도에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진박이 더 많이 나올 것이란 말도 들린다.”
박 대통령과 그 주변부는 서울 강남, TK, 비례대표 앞순위 등 당선이 쉬운 곳에 신친박을 후보로 내세워 최대한 여권 내부를 자기편으로 만들려 했다는 관측은 많았다. 그래야만 집권 후반기에 불가피한 조기 레임덕을 막고, 차기 대권주자에 대해서도 입김을 낼 수 있어 정권이 재창출되어도 영향력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기문 외치 대통령+친박계 총리’ 시나리오가 때 이르게 등장했고, 청와대 차출설, TK 물갈이론, 진박 내리꽂기, 박근혜키즈 총력물색 등 공천에 개입하려는 정황이 여러 수사로 회자하면서 박 대통령에겐 불리한 해석이 여럿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여야 모두를 겨냥한 발언을 통해 망신을 주자는 쪽으로 전략이 수정됐다는 근거로 내년도 예산의 절반 이상이 상반기에 배정됐다는 최근 발표를 들었다.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금을 뺀 330조 6716억 원의 68%를 내년 상반기에 쓰기로 ‘2016년도 예산배정계획’을 확정한 것이다. 서민생활 안정, 경제활력 회복, 일자리 확충이라는 3대 슬로건 아래 예산의 조기 집행 명분을 쌓았다.
친박계 핵심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12월부터 전국이 공사장이 된다. 내 집 앞 다리가 놓이고 이웃 동네 도로가 넓혀진다. 어르신, 장애인 등 복지수요층에 대한 지원 등등이 이뤄지면 전국이 들썩들썩할 수밖에 없다”며 “그 공사장을 보면서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우리를 위해 이 정부가 돈을 푸는구나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는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지만 누가 봐도 총선용 예산”이라고 했다.
특히 증액된 TK 예산을 두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한 비판이 많다. 하지만 그건 수도권의 이야기일 뿐 정작 해당 지역에서 최 부총리에 대한 평가는 좋아진다. 욕을 들어먹으면서까지 ‘우리 지역’을 챙겼다는 이야기가 퍼지게 된다. TK에 ‘박풍’이 부는 것은 이렇게 쉽다. 분석된 바로는 TK 증액 예산은 5600억 원이나 된다. 대부분 전철 건설, 도로 건설, 병목지대 개선 등이다.
이에 덧붙여 한 친박계 핵심 중진 의원은 “내년 1, 2월 출마자들을 유심히 지켜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 의원은 “우선추천지역은 전국에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며 “참신한 후보 효과는 2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극대화된다. 하나는 깜짝 등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을 검증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최근 자신을 진박의 반열에 올려 박심을 자처하는 후보들보다 유명인, 학계 등지에서도 인물 발탁이 이뤄질 것이란 얘기였다.
이렇듯 박 대통령과 핵심 친박의 판갈이 전략 수정 움직임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김 대표 측근들은 최근 언론사 사장단을 비롯해 편집국장, 정치부장까지의 리스트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대표가 대 언론 스킨십을 통해 공천에 대한 방향과 정치개혁 등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한편, 주요 언론사 순으로 대대적인 인터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른다.
하지만 김 대표가 최근 현역 의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결선투표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비치면서 일부 비박계에서는 “못 믿을 사람”이란 푸념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최근 김 대표의 스탠스를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박계 한 의원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고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을 건다고 해놓고, 안심번호를 활용한 100% 여론조사로 물러났고, 이제는 현행 당헌·당규대로라는 원칙을 돌아왔다. 사사건건 친박에게 양보하고 있다”면서 “황진하 사무총장을 공천룰 특별기구 위원장에 앉힌 것을 빼면 의지대로 한 것이 없잖은가”라며 혀를 찼다. 일각에선 황 사무총장이 예전 친박계로 분류됐다는 점을 들어 김 대표의 ‘완패’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다른 여권 인사는 “김 대표로선 최대한 총선까지 대표직을 유지해야 한다. 총선에서 이기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만, 총선을 본인이 지휘하지 못하면 잠룡 리스트에선 퇴장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일단 가늘게 간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인사는 총선까지의 수명 연장 움직임을 두고 “박 대통령의 파리, 체코 순방 때 김 대표가 두 번이나 머리를 숙였다. 그 동영상을 보면 김 대표의 자세가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보탰다. 김 대표는 최근 공천 지분에 대해 청와대와 협상을 마무리했다는 따가운 이야기까지 듣고 있다.
정치판을 갈아엎겠다는 박 대통령과 친박계, 이에 대응하는 김 대표와 그의 무리들. 바야흐로 본격적인 전쟁 국면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