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누구나 유력 정치인에 대한 그들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또 형성해나가고 있다. 이것이 투표소에까지 이어져 대통령 선택의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국민들은 정치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그들에 대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마이웨이’식의 이미지를 형성해나간다고 한다. 이것을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마음의 지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최근 3년 동안의 연구 끝에 노무현 대통령과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여야 정치인 8명에 대한 이미지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놓았다. 그가 <대한민국 사람이 진짜 원하는 대통령>(김영사)이라는 저서에서 분석한 ‘잠룡’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본래의 모습과는 달리 시각과 눈높이에 따라 덧칠된 두 가지 이미지가 바로 그것. 황 교수는 인식이 만들어낸 이 같은 이미지가 오히려 잠룡들의 본 모습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는 2007년 대선 때 우리 국민들은 과연 어떤 얼굴을 떠올리며 한 표를 던지게 될까.
“호남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웅’이지만 영남에서는 ‘환자’다.”
우리나라에는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가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황 교수는 이에 대해 “정치 지도자를 판단할 때 그들의 성격이나 인생, 정치철학 대신 판단하는 사람들의 주변 상황과 사회적 환경 등의 ‘특성’이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참 모습을 보지 않고 국민들이 그들에 대해 우상화된 마음과 기대를 덧씌워 정치인들을 나름대로 ‘재포장’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진단하고 있다.
황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 분석을 통해 국민들이 품고 있는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무엇이고, 그들의 어떤 점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며,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밝히고 싶었다.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마음의 지도’를 정확히 밝혀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자료를 제공해주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선거권을 가진 20~50대 일반인 34명을 대상으로 85개 항목의 정치인 이미지를 주고 심층면접을 실시해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잠룡’ 8인에 대한 이미지 분석 작업을 한 바 있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을 짚어보면 우리 국민들은 그에 대해서 ‘개혁 연출가’와 ‘독불장군’ 그리고 ‘이웃집 아저씨’(인간적이지만 무능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선동형, 만능형, 냉철형, 관리자형의 이미지는 없다고 본다.
고건 전 총리는 ‘안정적 관리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위치와 역할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안다’, ‘자기 관리와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엄격하다’, ‘국정의 다양한 영역(경제 교육 외교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대하는 집단에서는 ‘노회한 구시대 관료의 이미지’로 그를 보았다. 여기에는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대세에 따른다’, ‘자신과 소속 정당의 지지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갈등에 대해 타협을 한다’는 등의 부정적 평가가 나왔다.
고 전 총리는 황희 정승, 드라마 <해신>의 ‘중달’ 이미지가 강했던 반면 <품행제로>의 류승범이나 조승우 같은 배우의 이미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일 잘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CEO’ 이미지였다. 여기에는 ‘추진력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고, 주변 평가에 개의치 않는다’, ‘분명하고 강한 결단력을 보인다’는 등의 긍정적 이미지가 포함돼 있다. 또한 청계천 개통에 힘입어 ‘어떤 일을 시작하면 상황의 변화에 관계없이 끝까지 해낸다’는 이미지도 추가됐다.
하지만 이 시장은 ‘독불장군 리더십’의 이미지도 같이 가지고 있다. 그는 ‘폭군과 같은 절대자의 모습이다’, ‘너무 독선적인 것 같아서 불편하다’, ‘인상이 별로이고 너무 밀고 나가는 고집이 싫다’는 등의 이미지를 없애 나가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건설 현장의 소장 같다’는 답도 있었다.
이 시장이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 <용의 눈물>의 유동근, <살인의 추억>의 형사 송강호 등과 이미지가 유사하다고 본다면,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로 유명한 안철수씨나 간디의 이미지와는 크게 대비된다고 한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성공한 IT 기업의 고상한 CEO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또한 ‘자신의 생활, 건강, 이미지 등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공정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자신보다는 조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렇지만 박 대표는 ‘비전도 열정도 없는 유신공주’라는 이미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그는 ‘리더라는 느낌보다는 팀장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비전이나 목표가 불확실하게 느껴진다’, ‘비교적 잘 정돈되고 절제된 조신한 양갓집 규수처럼 보인다’, ‘연출된 카리스마와 고집으로 똘똘 뭉친 보수 원단이다’는 등의 가혹한 이미지 평가도 있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테크노크라트의 전문성 이미지가 돋보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잘 전달한다’, ‘일을 추진하더라도 계속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수정한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개혁이 주된 과업이라는 목표를 제시한다’는 등의 긍정적 이미지가 나왔다.
하지만 부정적 이미지는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만들고 유지하려고 한다’, ‘여론의 향배에 민감하다’, ‘자신과 소속 정당의 지지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입장을 바꾼다’는 의견이 있었다. 배우 장동건과 비슷한 이미지라는 ‘칭찬’을 듣지만 ‘무림의 고수’ 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최불암 이순재 같은 소탈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김근태 복지부 장관은 ‘진지하다’, ‘사회 참여 성직자 같다’, ‘소신 있는 잠룡이다’ 등의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 문제 및 미래 세대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인다’, ‘환경이나 복지를 국가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듯한 이미지를 준다’는 등의 미래지향적 대답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부정적 이미지로는 ‘폼 안 나는 패거리 보스 이미지 같다’라는 다소 냉혹한 평가가 나온다. 반대 집단에서는 그에 대해 ‘멋진 황태자 같은 이미지는 없다’거나 ‘번듯한 이미지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젊은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 영화배우이자 사회적 모범생인 차인표 안성기씨 등과도 비슷한 이미지로 통한다. 하지만 정몽준 의원과 같은 ‘황태자의 파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조직에서 쿨한 황태자의 모습을 유지하는 일본 만화 <시마과장>의 시마를 본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도정에 열중한 나머지 정치인 이미지는 퇴색하고 ‘관료형 정치인’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그의 이미지는 ‘경제를 국가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지속적인 발전을 강조한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을 제시한다’는 등의 정책적 장점이 많이 강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를 ‘눈치꾸러기 대기업 과장’으로 본다. ‘일 잘하고 가끔 입바른 소리를 하는 대학교수 출신 도지사일 뿐 뚜렷한 정치적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여론의 향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평범한, 중간은 가는 정치인이다’, ‘자신감은 없지만 그래도 자기 세력은 있다’는 등의 다소 ‘미지근한’ 반응이 많다고 한다.
그는 중국의 주은래 총리, 남덕우 부총리, 김종인 전 부총리 등 관료형 정치인과 흡사한 이미지다. 하지만 ‘무대뽀 한량’의 이미지는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 <장군의 아들>의 김두한이나 <넘버 3>의 송강호 같은 ‘이전투구’ 이미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원한 넘버 2’ 김종필 전 자민련 명예총재나 <손자병법>에 나왔던 ‘눈치과장’ 오현경씨 같은 이미지로도 비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대통령도 아닌데 대차게 밀어붙이기만 해서) 그 인간 재수 없다’는 생리적인 거부감이 떠오르게 된다고 한다. 이명박 시장도 그와 비슷한 ‘강박적 전문가’적 기질이 있음에도 마니아층이 두터운 반면 성향이 비슷한 이 총리의 경우 ‘팬’이 별로 없다는 것이 이 총리의 이미지에 담긴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또한 ‘결과에 대한 심각한 고려보다는 일단 시행하고 본다’, ‘무작정 간다’라는 이미지도 강했다.
이 총리는 <불멸의 이순신>의 이순신, 꼬장꼬장한 선비와 유능한 전문가였던 박지원과 정약용 이미지가 강했다. 여기에 ‘행동대장’ 차지철 장세동과도 닮아 있다. 그런데 자주 눈물을 보이는 유인태 의원, 대세에 흔들리는 <웰컴 투 동막골>의 주민들, 개그맨 박수홍과는 반대되는 이미지였다.
마지막으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대중을 매료시킨 쿨한 선지자의 이미지로 비친다. 그리고 ‘신선하고 산뜻한 사고와 행동을 보여준다’, ‘어설픈 개혁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인턴 정치인이다’라는 신선한 이미지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반대측에서는 ‘똑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한국형 힐러리다’, ‘건방지고 오버 심하며 의욕이 앞서지만 아직은 미숙하다’는 등의 냉혹한 이미지 평가도 한다.
비슷한 이미지의 유명인으로는 안철수, <여명의 눈동자>의 박상원, (초기 활동 때의) 한석규씨 등과 비교된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가 말한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무섭고 영악한 여자의 이미지가 본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상 소개한 잠룡들의 긍정적·부정적 이미지는 사실인 경우도 있고 왜곡된 것도 있다. 황 교수는 정치인의 이미지에 대한 국민들의 편향된 시각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했다.
그는 “한국이 외국과 비교해 정치 이미지 조작이 쉽고 국민들의 반응도 빠른 편이다. 국민들은 영웅이나 신과 같은 대통령을 원한다. 그러기에 대권주자들에게 대한민국을 구원해줄 슈퍼맨 같은 이미지를 자꾸 덧칠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도 완벽한 지도자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과 같다. 과대포장된 이미지만 보고 물건을 선택하면 망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지도자가 누구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결국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대세에 따르기보다 자신과 국가의 현실적 상황에 맞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