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월 24일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를 면담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최 부총리는 경제 노동 관련 법안 처리를 주문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새정치연합 이목희 정책위의장을 만난 뒤 최 부총리는 이종걸 원내대표를 찾아갔다. 동선을 들킨 최 부총리는 입을 꾹 닫았다. 이목희 의장도 기자들과 만나 “최 부총리 만난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회동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최 부총리는 야당 원내지도부를 찾아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이라는, 경제 관련 2개 법안, 노동 관련 5개 법안 처리를 주문했다고 한다.
최 부총리와 가까운 한 인사는 “솔직히 말하면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그러는 것”이라고 했지만, 정가의 다른 인사는 “상징성이 크다. 향후 국회로 돌아와 그가 어떤 행보를 할지 눈에 보인다”고 했다. 이 날 최 부총리의 행보는 청와대 정무수석 같기도 했고, 여당 지도부 같기도 했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즉, 최 부총리의 향후 언행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어떻게든 녹아있을 것이란 해석이 붙는다는 의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도 정가에선 여러 말들이 돌고 있다. 여론은 무색무취한 유 후보자가 향후 한국경제를 진두지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진다. 하지만 그의 내정 막후에 최 부총리가 핵심 역할을 했을 것이란 소문이 다소 무게감 있게 회자한다. 여러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새해 총선 전 경제계든 학계든 초이노믹스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된다. 정부가 상반기에 한 해 예산의 60% 이상을 쏟아 붓기로 했기 때문에 아주 가혹한 평가가 나올 가능성은 적지만 세계 동향을 봤을 땐 좋은 평가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유일호 부총리가 최 부총리 탓을 할 수 있을까? 그가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 친박은 다 안다.”(친박계 재선 의원)
“이번 부총리 인선의 핵심은 인사청문회 통과다. 청문회를 통과할 확률이 가장 높은 이는 다름 아닌 청문회를 한번 통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최 부총리로선 차기가 탈락하면 다시 부총리직을 수행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차기 총선 출마는 어려워진다. 이른바 정홍원 총리 학습효과 아니겠는가.”(비박계 관계자)
“수렴청정이 가능한 사람을 뽑지 않았을까? 유일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스타일도 ‘허허실실’이다. 최 부총리로선 만만한 친박 후배인 셈이다.”(국회 담당 기관 관계자)
이런 해석이 설득적이라면 여권 내부에서 최 부총리의 입지는 무섭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알지 못했던 개각의 내용에 오히려 영향력을 끼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그 자리에 머무른다. 안 수석은 일명 ‘최경환 라인’으로 통한다. 최 부총리가 국회로 돌아오더라도 한국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영향력은 변함없을 것이란 말은 그래서 나온다.
게다가 최근 최 부총리 주변부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는 평가다. 박근혜 정부에서 여당 원내대표를 맡았던 최 부총리는 지금까지도 원내부대표단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도 매달 한 차례 정기모임인데 참석률이 대단하다. 건배사도 ‘최경환을 위하여’다. 최 부총리가 원내대표일 때 원내수석부대표가 윤상현 의원(전 청와대 정무특보)이다. 그리고 이번에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된 강은희 의원이 원내대변인 중 한 명이었다.
이헌승 김진태 이채익 이우현 류지영 김한표 이완영 문정림 윤재옥 신동우 홍지만 김태흠 의원 등이 원내부대표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 모임의 멤버는 아니지만 당시 지도부를 보면 홍문종 당 사무총장, 유일호 대변인,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 등이 있었다. 사실상 노쇠한 친박계를 뺀 전부가 당시 최 부총리와 손발을 맞춘 셈이다. 요즘 친박계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나 이장우 대변인까지 가세하면 최 부총리 중심의 친박계로 재편된다.
최근 친박계 의원들이 주축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송년 오찬에 60여 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최 부총리가 국회로 돌아오면 ‘침묵의 암살자’로 잠행할 것이란 이야기는 ‘12월의 거사설’과 물린다. 최 부총리 추종세력이 이만큼이어서 친박계의 단체행동에 힘이 실릴 것이란 얘기다.
만약 박 대통령이 경제나 노동, 혹은 쟁점법안 입법 실패에 대해 여당 지도부 탓을 하게 되면 친박계가 ‘김무성 책임론’을 들고 나와 힘을 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수개월 전부터 있어 왔다. 친박계로선 그 사령관이 돌아왔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친정체제가 한층 강화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청와대 정무특보제도가 사라진 지금 최 부총리는 정무수석이나 정무특보, 그리고 친박계 대표로서 역할을 맡게 되는 분위기다.
그리고 이들은 김 대표와 그의 위시 세력에 대항해 어떻게든 친박 인사가 공천되도록 힘의 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이번 ‘연탄색’ 발언 등 실언이나 실정으로 코너에 몰리면 ‘권위의 정당성’에 흠집을 내고 지도체제 변화를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을 걸었던 김 대표여서 만약 상향식 공천에 흠집이 생기면 친박계의 도발도 예상된다.
지난 9일. 김무성 대표는 19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뒤 다름 아닌 최 부총리와 저녁을 함께했다. 이른바 ‘소맥’이 돌 정도로 둘만의 시간은 길었고 깊었다는 후문이다. 공천룰에 대해 논의를 했다는데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둘의 소맥 회동 이후 안심번호를 활용한 여론조사 도입은 친박계의 큰 반발 없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친박을 몇 명 넣어야 된다, 위원장은 누구를 해야 한다 등등으로 논란과 소동을 거듭했던 당 공천제도특별위원회도 구성됐다.
모두가 그의 덕이라고 확언할 순 없지만 어쨌든 모든 사건에는 최 부총리의 행보가 있었다. 그의 향후 행보에 정가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