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12월 21일 오후 김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의원실에서 두문불출했다. 고함이라도 ‘빽’하고 나올 듯한 폭풍전야와 같았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명됐고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도 내정됐다. 본인의 당 소속 의원 두 명이 개각 대상에 포함됐지만 김 대표가 풀 죽은 이유는 청와대로부터 언질이 전혀 없었던 탓으로 풀이된다.
기자들이 대통령의 개각 방침에 대해 집권여당 대표의 반응을 취재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러나 이날 김 대표는 의원실 앞에서 이른바 ‘뻗치기’를 하던 기자들을 방으로 들이질 않았다. 의원실 보좌진도 김 대표가 말 한마디 할 분위기가 아니라며 손짓으로 돌아가라는 표현을 몇 차례 했다고 한다. 일부 당직자는 김 대표와의 면담을 신청했지만 몇 분을 방문 앞에서 기다리다 돌아가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의원실을 나서며 “경제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당과 협조할 수 있는 당 소속 의원이 경제부총리로 가게 돼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강 의원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도 없었다.
보통 개각을 단행할 때 여당 대표에게 언질을 주거나, 세평을 묻거나, 아니면 추천을 받거나 하는 것은 상호 간의 예의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난해 김 대표는 중국에서의 ‘개헌’ 발언 이후 모든 정치적 사건에서 ‘친 청와대 행보’를 보였다. 국회법 파동에 따른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사퇴 정국에서도 박 대통령의 편을 들었고 이후 새 원내지도부가 들어선 뒤에는 마치 본인이 총대를 멘 듯 경제·노동법, 그 외 쟁점법안들을 두고 앞장섰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듯, 김 대표도 언론의 ‘속보’를 통해 개각 내용을 전해들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김 대표는 지난 18일 서울 관악구 삼성동에서의 봉사활동 도중 연탄을 나르던 아프리카계 유학생을 두고 “니는 연탄색이랑 얼굴색이랑 똑같네”라고 말했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묘하게도 해당 유학생은 영남대학교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김 대표는 본인이 친근함을 표현하고 싶은 땐 하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예사이고 정치부 기자들이나 정치신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이런 실수가 잦은 편이기도 하다.
당시 김 대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즉각 사과해 일단락됐지만 차기 대권주자로서는 작지 않은 흠집 하나를 남긴 셈이 됐다. 향후 어찌됐든 김 대표의 발언은 회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상수 창원시장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보온병을 포탄으로 잘못 말했다가 희화화돼 정치적 생명이 위태롭기까지 했다. 김 대표가 이 내우외환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