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 장관 내정을 강행해 그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사진은 지난 4일 오후 코엑스에서 열린 200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는 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유시민 파문은 일견 당·청 간의 의사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비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를 그 동안 잠복해온 여권 내 복잡다단한 권력 구조의 갈등을 한꺼번에 폭발시킨 ‘뇌관’으로 보는 해석이 더 강하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왕따’ 유시민 의원을 끝까지 보호한 배경을 두고 정계개편 신호탄, 대권주자 다각화, 친노세력 재결집, 레임덕 방지책 등의 갖가지 해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심’과 국민 정서를 외면하고 유시민이라는 ‘논리’를 택한 그 ‘복심’은 과연 무엇일까. 여권의 권력 갈등 구조를 토대로 분석해보았다.
여권이 유시민 파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먼저 국민 여론이 유시민 장관 내정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다. SBS가 TNS와 공동 실시한 여론 조사를 보면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에 대해 반대 의견이 50.2%로 찬성 37.3%보다 높게 나왔다. 한 인터넷 매체의 네티즌 여론조사에서는 반대 의견이 62%에 달했다고 한다.
정세균 의장 체제 뒤 반등 분위기를 보이던 여당의 지지율도 이번 사태로 타격을 받고 있다. <헤럴드경제>와 여론조사기관 ‘피플앤리서치’가 지난 1월3일~5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21.6%로 지난 연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22~24%대)보다 1~3%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초 단행한 개각이 그나마 소폭 회복세를 보이던 열린우리당 지지도를 다시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사학법 개정에 반대해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은 42.8%를 기록, 다시 40%대 지지율을 회복했다. 이는 여권 내 불화가 부동층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한나라당이 반사이익을 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노해민 트리오’(노무현 이해찬 유시민의 3인을 지칭) 외에 이번 개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여론은 험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상당수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유시민 카드를 끝까지 밀어붙인 것일까.
먼저 ‘노심’은 이번 유시민 장관 내정 강행을 통해 정치개혁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여당에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이미 지난해 말에 그 ‘단초’를 드러낸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0·26 재선거 참패 뒤 열린우리당에게 “지금 여당에 가장 중요한 것은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것이 시대정신을 살리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당의 분발을 촉구한 대목이지만 지금까지 여당이 새로운 정치 문화를 실현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열린우리당의 정치개혁 상징인 기간당원제에 대해서 강한 애착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지난해 초 당 의장 경선 때 의원들이 당비를 대납해 주는 ‘동원(종이) 당원’ 문제와 계파의 줄 세우기 등의 구태정치가 반복되자 여당에 크게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유시민 장관 관철을 통해 여당에 자신의 정치개혁에 대한 ‘결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구태에 빠진 의원들에게 ‘정신 좀 차리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유시민 의원의 입각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유인태 의원마저도 모를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유 의원은 한때 “결국 유시민 의원이 복지부 장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가 보기 좋게 그 예언이 빗나가자 몹시 당혹스러워했다는 전언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번 유시민 파동에 또 다른 모종의 정치적 시나리오가 숨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재선의원은 “당·청 갈등에 이어 유 의원 입각 문제가 모종의 정치적 시나리오의 성격도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이 최측근에게도 감출 만큼 중요한 ‘복심’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먼저 가장 주목할 부분은 유시민 입각이 노무현발(發) 정계개편의 서곡이라는 해석이다. ‘창당 초심’을 기대해온 노 대통령이 마침내 열린우리당에 대한 미련을 접고 친노세력을 결집, ‘새판짜기’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대통령이 당을 버렸다”는 한광원 의원의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 ‘유시민 파동’의 당사자인 유시민 의원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펼칠까. 사진은 지난해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당의장 후보로 출마, 연설하는 유 의원. | ||
그는 또한 “K씨에게 보고된 내용 중에는 ‘부패한 산업화 세력과 무능한 민주화 세력을 제외한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수행해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추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 창출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유시민 의원을 축으로 하는 친노그룹이 장외조직을 만들어 세력을 확산시킬 경우 여권은 현재의 정동영-김근태 양자 구도에서 정동영-김근태-유시민의 3자 정립 구도로 바뀌게 된다. 유시민 김두관 등이 축이 되는 친노그룹의 세력을 향상시켜 민주당과의 통합을 축으로 하는 정동영계와, 재야·민주화 세력 연합의 김근태계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K씨의 구상이라고 한다. 이른바 ‘제3세력론’이다. 현재 구도에선 제3세력의 힘은 미약하지만 ‘노심’이 발휘될 경우 그 세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런 ‘제3세력 키우기’가 성공한다면 다당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의 전략관계자는 대통령 측근 K씨의 말을 인용해 “노 대통령이 다당제로 가는 구상을 이미 마친 것으로 안다.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깨져야 한나라당도 깨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당이 깨지면 일부는 민주당으로, 친노직계들은 개혁신당 창당 등으로 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당제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제3세력이 다당제를 실현할 토대가 되는 것이다.
1당 독주가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이 다당제는 내각제를 필수로 한다. 바로 ‘개헌론’과 맞물리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사실 내각제의 중간다리로 연정론을 제기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그래서 이번 유시민 장관 내정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은 내각제를 향한 우회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각제 카드는 여권 대권주자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어 현 상황에서는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은 선택이다.
한편 제3세력 키우기는 필연적인 제3의 대권후보 키우기로 연결된다. 정가 일각의 ‘유시민 대망론’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비록 이해찬 총리는 ‘유시민 대망론’에 대해 “상상력이 최고조로 발휘된 것”이라고 ‘연막’을 치고 있지만, 유 의원의 정치적 잠재력을 보면 이 대망론은 ‘상상’ 이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아래 ‘유시민 대망론 명암’ 기사 참조).
실제 열린우리당의 한 ‘386 세대’ 인사는 “최근 유시민 의원측으로부터 ‘캠프’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심중”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 의원측이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은밀하게’ 캠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당내에선 설혹 노 대통령이 그런 구상을 갖고 있다고 해도 당내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유 의원을 후보로 세우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정계개편론과 함께 대두되는 노 대통령의 ‘복심’은 ‘대권주자 다각화론’이다. 현재의 판세로는 정·김 두 주자 중 한 명이 2월 전당대회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되고, 또한 당권을 잡은 측도 5월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도 흔들리게 된다. 양 주자의 정치적 지위가 위축될 경우를 상정해 미리 ‘노심’을 업은 제3후보를 띄워 그 공간을 메워나간다는 구상이다. 일각에서는 제3후보론 대상자를 유시민 의원이 아닌 이해찬 총리로 보기도 한다. 둘의 관계와 경륜을 볼 때 유시민 카드는 ‘이해찬 띄우기용’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한 ‘유시민 띄우기’를 통해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예방하고, 대권레이스의 흥행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사학법 투쟁으로 자칫 연초의 정국 주도권을 야당에 빼앗길 가능성도 있었지만, 특유의 의제 설정 능력으로 대통령이 정치 중심에 여전히 서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는 것도 노 대통령이 노렸던 심중일 수 있다. 유시민 띄우기 속에 잠복해 있는 ‘노심’이 과연 향후 정치지형과 대권구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