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영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권력의 폭력은 캐릭터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서사 속으로 묻히거나 관객의 심연 깊은 곳의 은밀한 욕망과 만나 암묵적 동조 또는 묵인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다고 공권력의 폭력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영화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 과제의 주제에 맞는 영화만을 취사선택하여 담론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본고에서 다룰 영화는 비교적 경찰이라는 신분의 캐릭터가 자행하고 있는 폭력과 이에 대한 관객의 암묵적 동조가 뚜렷한 영화 살인의뢰, 무례한, 비밀을 선택하였다. 객관성 유지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 블로그를 비롯한 SNS 네티즌들의 의견을 리서치 및 정리한 자료를 포함했다.1)
만약 가족이 납채돼 살해됐다면? _관객의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암묵적 동조를 얻은 ‘살인 의뢰’
영화 ‘살인 의뢰’는 만약 내 가족이 끔직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면 내 심경은 어떨까에 대한 점을 컨셉으로 ,사형제도에 대해 돌직구를 던지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 구성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영화 초반 범인을 잡고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여타의 범죄 스릴러들이 범인을 쫓는 과정에 관객을 몰입시켰다면 살인의뢰는 피해자의 상처에 대해 천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구성의 목적은 대중을 향한 한 가지 질문에 집약된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 납치돼 살해됐다면?”
감독 손용호는 이 질문을 통해, 연쇄 살인마에게 가족을 잃고 남겨진 자들의 아픔을 통해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화두를 던지며 관객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것을 시도했다. 나름 의미 있는 시도였다는 평이 제작단계부터 살인 의뢰에 대한 의견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개봉되자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치밀하지 못 한 구성은 흥행 실패로 이어졌다.
특히 태수가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 경찰들에 의해 포복이 된 강천을 그것도 뒤에서 총으로 쏘는 장면은 공권력의 수위 넘는 폭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눈 앞에서 여동생에 이어 처남마저 강천에게 살해 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태수라면 충분히 분노에 휩쓸릴 만하다.
바로 이 점이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태수의 비겁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도록 유도한 부분이다. 좀 더 면밀히 따지고 보면 여동생인 수경을 잃고 난 후 3년 간 태수는 괴로웠지만 그럭저럭 형사 생활을 이어가면서 평정을 찾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경의 남편인 승현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치밀한 복수를 계획하지도 않았으며 수경이 죽어 묻힌 곳을 찾아내고자 노력도 하지 않았다. 간간히 감옥에 있는 강천을 찾아가 수경이 묻힌 곳을 묻는 정도가 태수의 역할이었다.
그런 태수가 친동생도 아니고, 3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다시 나타난 처남의 죽음에 분개해 무장도 하지 않은 범인 강천을 뒤에서 총으로 살해했다는 것은 감독의 의도에 억지로 끼워 맞춰진 행동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평행 이론을 통해 살인의 추억의 범인을 강천으로 오독하게 유도했던 영화 살인의뢰
영화 살인 의뢰가 수위 넘는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눈속임은 영화 ‘살인의 추억’과 평행2) 을 이룬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평단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웰메이드 스릴러 ‘살인의 추억’과 평행 이론을 강조함으로써 형사 태수가 무장이 해제된 강천을 뒤에서 총으로 쏘는 비겁한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유도하였다.
영화 ‘살인의뢰’가 ‘살인의 추억’과 평행선을 이룬 점은 대강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두 영화의 평행이론은 먼저 두 영화의 개봉시기가 똑같이 봄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2. 김상경의 배역이 동일하게 형사라는 캐릭터가 두 번째 평행이론의 핵심이다. ‘살인 의뢰’에서의 김상경은 철저한 자료조사보다는 자신의 촉을 믿고 따라가는 경험 많은 베테랑 형사이다. 이는 마치 살인의 추억의 서태윤 형사가 12년이 지나 베테랑 형사가 된 모습을 보는 듯 하여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이었다.
3. 비가 쏟아지는 밤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이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살인의 추억처럼 살인의뢰도 비 오는 밤, 연쇄 살인마 조강천(박성웅)이 한 여인을 죽이면서 영화는 긴장감 있게 시작된다
이상 살펴본 평행 이론은 살인의 추억의 잡히지 않는 범인을 마치 살인의뢰의 강천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함으로써 그가 경찰에 의해 살해되는 부분에서 “백 번 죽어도 마땅한 놈“이라는 관객의 동의를 얻어내는 효과를 누렸다.
이러한 공권력의 비겁한 모습은 로맨스에 대한 판타지를 관통하며 또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속이는 양상을 보인다.
일상과 비현실의 경계선에서 로맨스의 판타지를 통해 공권력의 폭력을 합리화한 영화 ‘무뢰한’
김남길과 극강의 존재감을 지닌 전도연의 캐스팅으로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 ‘무뢰한’. 영화 ‘무뢰한’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사람, 형사와 범죄자의 여자라는 양극에 서있는 두 남녀가 살인사건을 통해 만난다는 강렬한 설정만으로도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효과를 지닌 날것의 생생함으로 사랑의 본질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하드보일드 멜로를 표방한 영화다.
살인자의 여자 전도연에게 빠져들면서 혼란이 빠진 김남길은 결국, 무장이 해제된 박성웅의 심장을 총으로 정면에서 관통시키는 폭력을 범한다. 하지만 영화라는 비현실과 현실의 일상에서 이 행위는 전혀 문제 시 되지 않는다.
영화라는 비현실 공간에서 박성웅의 죽음은 형사들마저 아무도 모르게 죽여버리고 싶은 존재다. 일상에서의 박성웅은 전도연과 김남길의 로맨스를 빨리 보고 싶은 관객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두 사람의 사이에서 사라져주길 바라는 존재다.일상과 비현실 그 어느 쪽에서도 그의 죽음에 대한 정당성과 김남길의 도에 지나친 행위에 대해 문제 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로맨스에 대한 관객의 은밀한 기대_짙은 페이소스를 지닌 매력남이라면 어떤 행위라도 정당하다?
영화 무뢰한은 김남길의 짙은 페이소스가 담긴 눈빛이 흥행의 요소라고 할 만큼 김남길의 역할은 컸다. 새벽 푸른 안개를 배경으로 전도연의 허름한 아파트 계단에 앉아 있는 눈빛에 매료된 관객들은 그가 어떤 행위를 하던 그 행위는 전도연에 대한 지고 지순한 사랑의 행위로 정당화 된다.
박성웅에 대한 총격에도 전도연을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제해줄 행위로 간주, 마치 위험에 직면할 때마다 어디에선가 날아오는 슈퍼맨과도 같은 의미로 동일시 되었다.
또한, 박성웅의 사라짐과 동시에 남겨진 두 사람의 본격적인 로맨스를 기대하는 관객들의 은밀한 기대가 더해져 김남길의 도에 지나친 폭력은 전혀 문제 시 되지 않는 양상을 보였다.
이상 살펴본 두 영화의 관객 평은 예상대로 공권력의 과잉 방어 또는 지나친 방어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삼지 않은 양상을 보였다. 먼저 ‘살인 의뢰’의 경우 네티즌들은 ”영화는 우리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해자가 또 다른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이 영화를 보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고“4) ”복수하고 싶다. 누구라도 그런 생가기 들 거 같아요. 그들을 대신해서 법이라도 제대로 된 심판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영화로서 약간의 부족함이 있었던 영화지만 그들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영화네요.“5) , ”감옥에서 당당하게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편히 먹고 자는 악마 강천을 보는 관객들에게 사형이라는 제도에 해대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연기력에는 흠잡을 때가 없으나 스토리에서 좀 아쉬움이 남습니다.“6)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 밖에 대부분의 SNS 의견들은 모두 강천에게 희생당한 가족의 아픔에 동조하면서도 스토리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의견들 모두가 이 과제에서 문제 삼고 있는 공권력의 지나친 폭력성을 염두에 둔 의견들은 아니다. 하지만 스토리의 허술함이라는 것은 개연성이라는 작품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개념과 다름 아니다. 캐릭터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도 개연성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다.
다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디테일하게 딱 꼬집어 내어 표현은 못 하더라고(안 하더라도) 캐릭터의 행위 자체에 대해 관객 역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의구심을 품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본 과제의 문제가 결코 성급한 일반화가 아님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공권력의 폭력을 개인 사로 풀어낸 영화_비밀
영화 ‘비밀’은 살인자의 딸, 그녀를 키운 형사 그리고 비밀을 쥐고 나타난 의문의 남자. 만나서는 안될 세 사람이 10년 뒤 재회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 드라마다. 기존의 영화에서 등장한 형사들이 정의 사회구현이 목표였다면 영화 ‘비밀’의 형사 성동일(상원 분)은 개인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형사다. 성동일이 풀어나가는 개인사의 문제는 이 과제의 문제가 지향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 살인사건. 극적으로 범인을 검거한 형사 성동일은 홀로 남겨진 살인자의 딸을 데려다 키운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평온한 부녀 앞에 비밀을 쥔 의문의 남자 손호준(철웅 분)이 김유정(정현 분)의 선생님으로 나타난다.
스토리는 중반까지 살인자에게 희생당한 약혼녀의 복수를 위해 그의 딸에게 접근한 손호준의 동선을 예측하게 만드는 뻔한 내용으로 전개됐다. 하지만 스토리는 관객의 예상과는 노선을 달리했다.
손호준의 복수는 뻔한 복수극보다 좀 더 잔인했던 것. 미수로 끝났지만 손호준은 살인자의 딸에게 자신의 약혼자처럼 똑같은 상해를 입히는 대신 그녀도 같은 살인자로 만드는 것들 택했다.
이 선택은 성동일이 김유정의 아버지를 검거 당시 과잉 방어로 인해 그녀의 어머니가 희생당한 비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과거 살인범의 자택에서 검거 당시 성동일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범에게 욕설과 함께 총격을 가했고 당시 어린 김유정은 본능적으로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이어서 엄마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덮치는 과정에서 김유정의 어머니가 살해된 것.
당시 상황은 살인범은 기절했고 아이는 충격으로 기억을 잃어버려 성동일만 아는 비밀이 되었다. 사건은 현장에 떨어진 총을 아이가(어린 김유정) 주워 실수로 발사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종결된다.
이 과정에서 성동일의 행위는 경찰로서는 결코 용서 받지 못 할 행위를 범한다. 기억의 유무를 떠나 아이에게 엄마를 죽인 당사자의 굴레를 만들었던 것이다. 또한 총격을 가하기 직전 살인범은 저항할 아무런 힘도 없었다. 충분히 검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분노를 견디지 못 하고 총격을 가했던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아무도 성동일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하지 안았다. 오히려 살인자의 딸을 거두어 10여 년 넘게 보살피며 전교 수석을 할 만큼 똑똑하고 건강하게 키운 것에 대해 인간미를 느낀다.
특히, 어머니를 잃고 살인자가 된 피해자인 김유정이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다면 성동일이 자신마저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중적 생활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들은 그녀에 대해 섬뜩함을 느낀다. ‘역시 살인자의 피가 흐르는구나.’라는 생각은 침묵 속에서 관객의 심연 깊은 곳으로 강하게 울려 퍼졌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성동일은 살인자의 딸이, 다른 사람에 의해 성장하다 현장의 비밀을 기억하기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기억날 그 순간 면죄부를 위해 헌신적으로 그녀를 돌봐준 것은 아닐까?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전-가족으로 풀어내 아쉬웠던 ‘비밀’의 반성
10년 후 성동일은 자업자득인 순간을 맞이한다. 손호준은 김유정의 손에 총을 쥐어주며 미리 포박한 성동일에게 부모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녀마저 살인자로 만들려는 것이다. 김유정은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 딸이다.“:라는 말에 성동일의 다리를 총으로 가격하며 부정했지만 끝내 아버지로 부르며 살아온 10여 년의 세월을 부정할 수 없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이후 스토리는 구치소에서 출감하는 성동일을 기다리는 김유정으로 점프된다. 성동일이 10면 전의 과잉 방어로 인해 김유정의 어머니가 희생당했음을 자수하고 죄의 대가를 받은 것이다. 다리를 절며 김유정을 무심히 지나치고 갓길을 터벅터벅 걷는 성동일의 뒤를 따라 김유정이 팔장을 끼고 걷은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감독 이동하는 제작 의도에서 ”비밀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긴 세월 동안 여진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 사건이 남긴 흉터가 그들의 일상을 어떻게 잠식하고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려보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선 영화 살인의뢰와 평행을 이룬다. 살인의뢰가 사형제도라는 거시적인 문제를 필두로 남겨진 사람의 폭력성에 정당화를 피력했다면 비밀은 형사 개인사의 미시적 문제로 축소, 폭력의 반성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형사가 공권력의 폭력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비밀이 여타의 스릴러 폭력 영화들과 차별화 되는 점이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문제의 해결점을 결국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만 찾았다는 점이다. 성동일에게 총을 겨누었던 김유정은 끝내 ”내 딸로 살아주어서 고마웠다.“는 성동일의 가족애가 지극한 말을 외면하지 못 했다.
그간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 전-가족“이라는 구성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모든 문제의 발생과 해결점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찾으려는 현상이 농후했다. 가족애에 대한 모든 의미와 카타르시스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가족애로만 문제를 해결한다면 가족애의 결핍에서 나오는 폭력(혹은 여타의 문제점)은 정당화 된다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관객을 가르치는 교과서나 법률서는 아니다. 하지만 이상적인 미적 경험은 작품의 정교한 플롯과 연출력을 바탕으로 출발한다. 개연성이 부족한 행위나 서사의 구조로 소화할 수 없는 지나침은 관객으로 하여금 미적 경험을 통과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 비밀의 마지막 장면인 성동일과 김유정이 걸어 갔던 길은 한국 영화가 걸어가야 할 길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걷는 성동일과 외면하는 그의 팔을 끼고 걷는 어설픈 부녀의 걸음과는 달리 맑은 햇살이 드리운 길가의 풍경이 어우러진 마지막 장면이 유난히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조금은 미완의 요소가 있지만 그렇기에 완성을 위해 부단히 걸어가야 하는 한국 영화의 길이기도 하다.
전안나 기자 jan020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