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중심의 주류가 사립학교법 무효화 장외투쟁을 무리하게 전개하면서 수세에 몰린 사이 비주류가 조직정비를 통해 세 확산을 시도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사진은 지난 26일 박근혜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 모습에다 지난 23일 ‘뉴라이트교사모임’에 참석 | ||
양측의 세(勢) 경쟁은 그동안 당에서 확고한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박근혜 대표 중심의 ‘주류’가 지난해 12월부터 사립학교법 무효화 장외투쟁을 무리하게 전개하면서 수세에 몰린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구체적으로 원내대표 경선에서 예상외의 ‘압승’을 거둔 친(親)MB(이명박 서울시장) 성향의 ‘비주류’가 내친 김에 계파 간 연대를 통해 당내 ‘신(新) 주류’로 발돋움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이에 맞서 친박(親朴) 진영이 대반격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주도권 경쟁에서 이니셔티브는 현재로선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과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을 양축으로 하는 비주류측이 쥐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 양측은 서울시장 출마 뜻을 굳혔던 이재오 의원을 원내대표로 방향전환하게 하는 데 공조해 결국 경선에서 승리한 데 이어 1월22일엔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를 일궈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포스트 손학규’의 꿈을 안고 경쟁을 벌였던 김문수 의원(발전연)과 남경필 의원(수요모임)이 ‘조직 대 조직’ 차원의 집중논의를 거쳐 김 의원을 경기지사 후보로 단일화하고, 대신 남 의원은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이 이뤄진 것이다. 그동안 ‘반박(反朴) 연대’ 수준이던 양측의 관계가 이제는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전략적 제휴’로 격상된 것이다.
양측 핵심인사들도 경기지사 후보단일화를 계기로 향후 노선-정책-세력 등 모든 분야에서 공동보조를 취하는 등 전면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형준 의원(수요모임 회장)은 “이번 단일화는 2007년 대선 승리를 위해 추진중인 중도개혁세력의 통합·연대를 이루기 위한 출발점이다. 앞으로 당 내외 현안에 대해 수시로 논의해 나갈 것이며 당면과제인 지방선거 공천-전략 수립과 전당대회 대책 등에서 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발전연의 핵심인물인 박계동 의원도 “원내대표 경선 결과와 경기지사 후보단일화 등 최근의 흐름은 당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이 ‘영남당’에서 ‘수도권당’으로, 이념적으론 ‘꼴통보수당’에서 합리적인 ‘중도보수당’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욕구가 표출된 것이란 얘기다. 앞으로도 당내 각 조직이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합리적 중도세력이 당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목표 아래 연대할 사안은 연대할 것이다”고 말했다.
비주류측은 아울러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해 5·31 지방선거 공천과 7월 전당대회 당권경쟁에서도 자파(自派) 세력을 대거 진출시키는 노력을 경주하는 한편 중도 성향 세력을 상대로 ‘우군화(友軍化) 작업’을 펴는 등 기반 확대를 적극 모색할 뜻임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지방선거에선 △서울시장=홍준표 의원 또는 박계동 의원 △경기지사=김문수 의원 △부산시장=권철현 의원이 당내 후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전당대회에선 이재오 의원을 당 대표 후보로 밀고 남경필 의원을 지도부(최고위원단)에 진출시키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당내 지지세력 확대를 위한 비주류측의 움직임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발전연의 한 핵심 의원은 “‘합리적 중도세력’이 당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발전연과 수요모임의 연대만으론 부족하다. 당내에는 현재 양대 조직 외에 ‘푸른 모임’과 초선 의원 모임인 ‘초지일관’(初志一貫) 등이 나름대로 당내 공론을 형성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과도 앞으로 독자성은 서로 인정하면서 주요 당 내외 현안에 대해 연대를 모색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주류측의 이 같은 행보를 바라보는 당내 시각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특히 이들이 차기 대권주자 중 MB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들어 “말로는 ‘합리적 중도세력의 외연 확대’를 내세우면서 실제론 ‘MB 대통령 만들기’를 도모하는 것 아니냐”(영남 재선 K 의원)는 부정적 평가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비주류 내에서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주요 포스트 장악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선 ‘신종 패권주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비주류는 원내대표경선에서 이재오 의원(오른쪽)을 당선시키며 기세를 올렸다. | ||
대반격의 ‘선봉’은 박 대표의 최측근이자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배한 당사자인 김무성 의원이 맡았다. 경선 이후 한동안 대외 접촉을 삼가던 김 의원은 1월 하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제부터 박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한 준비에 나서겠다”고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은 “지난 원내대표 경선은 ‘친박’ 대 ‘반박’의 경쟁이었으며 MB계의 계보정치의 위력이 여실히 발휘됐다. 한나라당 내에서 박 대표의 세력이 불리해졌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며 당은 지금 ‘MB 대세론’으로 가고 있다. 지금은 세가 불리하지만 박 대표가 대선 후보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활동을 시작해야 하며 반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어 “MB 쪽은 대선 준비를 위한 실무 캠프도 있는 것 같고 대선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지만 박 대표는 대권행보를 전혀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와 유승민·전여옥 의원 등 이른바 ‘측근 3인방’도 대선 전략을 위한 회의 한 번 안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 박 대표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류 내에서는 김 의원의 발언에 대해 대체적으로 “좀 거친 측면이 있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이미 MB측이 ‘합리적 중도세력 통합론’을 내세워 당권 장악은 물론 차기 대권 레이스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마당에 박 대표가 지금처럼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영남권에서 대표적인 ‘친박’으로 꼽히는 한 재선 의원은 “지금 당장 대선 캠프를 꾸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지방선거 공천과 전당대회 당권경쟁에 대비한 ‘라인업’은 구체적으로 진척이 되어야 한다. 만약 아무런 준비 없이 경선에 임했다가 MB계 인사들이 당내 경선에서 득세할 경우엔 박 대표의 대권가도는 ‘절망적’ 국면으로 접어들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주류 내에선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에서 비주류인 김문수 의원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도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서울-인천까지 MB계열이 장악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서울시장 경선에서 친박 성향의 맹형규 의원이 계속 선두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박 대표 이하 주류측의 집중지원이 필요하며 중도적 입장으로 3선이 유력시되는 안상수 인천시장에 대해서도 ‘별도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역시 ‘친박 대 친MB’ 구도로 굳어져 가고 있는 부산시장 경선에서도 김형오 김무성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이 허남식 시장 지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당대회를 대비한 라인업도 서서히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당 대표엔 박 대표와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5선의 김덕룡 의원이나 박희태 국회부의장을 내세우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무성 의원도 지도부 경선에 나서는 방안을 고민중이다.
한동안 박 대표의 ‘절대 아성’인 것처럼 여겨졌다가 원내대표 경선에서 ‘등을 돌렸던’ 대구-경북(TK)지역에서의 기반 복원도 속도감을 더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지난 경선에서 TK의원들이 대거 이재오 의원 쪽으로 몰렸던 것은 김무성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뒤이은 전당대회에서 김덕룡 의원이 당 대표가 될 확률이 높아 당이 ‘민주계 천하’가 될 것이란 거부감 때문이지 박 대표에 대한 ‘불신임’은 아니었다”며 “TK엔 아직 박 대표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다수다. 만약 비주류가 MB를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면 TK가 ‘박근혜 지키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으며 일부 의원들은 벌써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