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판의 한가운데에 놓인 유시민 복지부 장관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렇듯 그의 장관 내정 사실만으로 논란이 이는 것은 ‘정치인 유시민’이 당·청 관계, 당내 계파관계, 여야 관계 등 거의 모든 문제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유 내정자의 앞에 놓여 있는 걸림돌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 이른바 ‘코드인사’ 논란과 복지 분야의 전문성, 설화(舌禍), 국민연금 문제 등을 하나씩 짚어본다.
코드인사 VS 복지전문가
2002년 대선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유 내정자는 정치인 노무현을 위해 직접적으로 정치활동을 한 적도,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관계도 없었다. 유 내정자는 지난 88년 13대 국회 노동위의 이해찬 의원 보좌관으로서 같은 노동위 소속의 노무현 의원을 처음 만났다. 2002년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유 내정자는 “15년 전 쯤(88년) 처음 봤는데, 지금도 기본적인 심성이 그대로다. 단심(丹心)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독일 유학을 다녀와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던 유 내정자는 2000년부터 다시 ‘정치인 노무현’을 주목했다. 2000년 총선에서 “지역주의를 정면돌파하겠다”며 당선 가능성이 있는 종로구를 버리고 다시 부산에 도전장을 내민 노 대통령은 끝내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유 내정자는 당시 <동아일보>와 <한국경제> 등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정치적 유착 혐의’를 각오하며 ‘미련한 노무현의 우직함’이 한국 정치의 새 지평을 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유 내정자는 조금씩 정치인 노무현의 가능성에 대해 글과 말로써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고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당 안팎에서 입지가 위태로웠던 노무현 후보를 지키기 위해 칼럼니스트로서 절필을 선언하며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당시 유 내정자는 이런 결정을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정치권에 투신한 뒤에도 야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노 대통령이 공격을 받을 때마다 유 내정자는 자신의 평소 발언을 바꾸어가면서까지 ‘노무현 지킴이’ 노릇을 해 왔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야당에서는 유 내정자의 복지부 장관 내정을 ‘코드인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유 내정자가 과연 보건복지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최근 노 대통령이 한 여당 의원과의 청와대 만남에서 “유시민 의원이 장관직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그의 자질 문제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당초 청와대는 유 내정자가 처음으로 배지를 달던 2003년 4월부터 지난해 4월 재경위로 소속을 옮길 때까지 보건복지위에서 2년간 활동했다는 점을 들어 ‘적격자’라고 평했지만 정치권에서는 “그 정도 경력이라면 유시민 의원 말고도 많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노사모의 노혜경 대표는 노사모 홈페이지를 통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리얼리티(현실)에 대한 감각을 쌓은 유시민이 독일로 건너가 전공한 것이 복지였다는 점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유 내정자가 독일에서 받은 경제학 석사 학위논문 제목은 ‘국제 교역이 성장하는 국민경제의 임금구조에 미치는 영향’이다. 즉 그는 복지문제와는 연관 없는 주제로 학위 논문을 썼다. 이에 대해 유 내정자측은 “졸업논문은 복지 분야가 아니었지만 유학하면서 복지재정, 사회보험 분야를 공부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미·체납 논란
지난 3일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제기한 유 내정자의 ‘국민연금 13개월 미납’ 부분도 장관 적격성 문제에 논란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전 의원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자료를 인용하며 “유 내정자가 지난 99년 7월부터 2000년 7월까지 13개월 동안 신문사 칼럼 원고료와 인세 등 소득이 있었음에도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 내정자는 해명자료를 통해 “당시에는 안정된 소득이 없었고 공단에서 가입통지를 받은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며 “2000년 7월경 공단의 통지를 받고 이후 연금보혐료를 납부해왔다”고 설명했다. 또 유 내정자는 부인의 미납에 대해서도 “당시 아내는 시간강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늦게 가입된 것은 공단의 안내를 늦게 받아 그렇게 된 것으로 사료된다”고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주무장관이 될 유 내정자에게 국민연금 미·체납 논란은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는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말’ 많고 ‘탈’ 많고
그래도 유 내정자의 전문성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것은 점잖은 편이다. 그간 정치권에서 그에 대한 비토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것은 유 내정자의 독선적인 성격과 ‘문제적’인 말과 글 탓도 크다. 한나라당에선 유 내정자의 그간 ‘설화’와 ‘필화’를 들어 “한 당파의 대변자 역할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모든 국민의 장관으로선 부적격”이란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유 내정자는 2002년 한 기독교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이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한다”며 “그런 점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종교기관을 정신적 안정을 주는 대가로 헌금을 받는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유 내정자는 “저널리스트인 만큼 종교에 대해서도 제가 아는 지식에 비추어 마음 내키는 대로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저의 교만이 부끄럽습니다”라고 사과해야 했다.
2003년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는 파시즘의 잔재”라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유 내정자는 당시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자유주의적 세계관에 대해 말을 하다 이 같은 표현을 썼다. 당시 유 내정자는 “국민의례가 남용되고 있다는 것과 국기에 대한 경례가 아니라 국기에 대한 맹세를 문제 삼은 것”이라며 “애국심이 소중한 가치지만 주권자에게 공공연히 고백하고 서약하도록 강제한 것은 국가주의 체제의 유물이다”라고 주장했다.
2004년에는 중앙대에서 한 강연에서 공무원노조와 관련해 “누가 공무원 되라고 협박했나. 박봉인 줄 알고 공무원 된 것 아니냐”며 “정년 보장에 퇴직 후 연금도 나온다. 그런데 파업까지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일각에선 유 내정자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더 ‘입심’이 거세졌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현 정권의 주주’가 되더니 안하무인 격이 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그 특유의 ‘비판의식’은 ‘후천적’인 것보다 ‘선천적’인 성향에 가까운 것 같다.
유 내정자가 졸업한 대구 심인고의 한 관계자는 “당시 유시민은 전교에서 1, 2등을 차지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매우 비판적인 학생이기도 했다. 특히 교사의 체벌을 강하게 비판했다”며 “한마디로 ‘칼’이었다. 한번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니라고 말하는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라고 전했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