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소품용 총으로 국내 반입된 실제 군용 총기. 권총(왼쪽)과 경찰 특공대가 사용하는 MP5.
<일요신문> 취재 결과 경기도의 영화 세트장 인근 한 파출소에 총기 22정이 ‘촬영용 소품’으로 보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16정의 총기 목록을 확보했는데 그 중에는 일본군이 쓰던 38구경 소총, 성능은 떨어지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 장교만 쓰던 총으로 알려져 소장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독일제 루그P08, 명품으로 통해 지금도 제조·유통되는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 등이 포함돼 있었다. 모두 경찰청장의 수입 허가를 받고 지방경찰청장에게 소지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이들 총기는 지난해 12월 24일 서울지방청장에게 수입 허가를 받고 용산경찰서장에게 소지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실제 총임에도 촬영용 총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권총과 소총 등을 사용하는 전투장면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출연자들이 들고 있는 이들 총을 자세히 살펴보면, 총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로 실감난다. 이들 총기가 모두 실제 총이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 촬영 등에 사용되는 기관단총, 저격총, 권총 등 대부분은 모형 총기와 같은 소품이 아닌 실제 총기다. 모두 정상적인 절차로는 수입이 불가능한 ‘인명 살상용 무기’다.
그런데 해당 총기들이 ‘영화 촬영용 소품’이라는 명목으로 경찰에 허가를 받아 국내에 대거 수입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촬영용으로 이런 실제 총기가 수입될 수 있었던 까닭은 총구 근처에 1㎝ 크기의 ‘어댑터’ 또는 ‘플러그’라는 이름의 나사 모양의 장치가 있어 안전하다는 게 허가 이유다. 해당 장치가 제대로 부착돼 있으면 공포탄만을 쏠 수 있다.
하지만 ‘텅스텐’으로 만들어진 총기 재질 특성상, 장치를 용접해 총구에 부착해도 제대로 붙지 않아 육각 드라이버 등으로 힘주어 흔들면 이를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실제 총이기 때문에 장치를 제거하면 실탄 발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경찰은 ‘예술 촬영용 총’은 실제 총기로 분류하지 않는다. 경찰청 총포화약계 관계자는 “영화 촬영에 쓰이는 총기들은 기타 뇌관의 원리를 이용한 장약총으로 분류한다”며 “장치가 부착돼 있어 실탄이 발사되지 않는다. 일반 총포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동안 유지돼 온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총단법) 3조를 보면 권총, 소총, 기관총 등은 각각 종류가 구분돼 있었지만 ‘예술촬영용 총’은 따로 명시돼 있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 권총과 소총이라도 ‘예술 촬영용 총’ 명목으로 수입되면 ‘기타 뇌관의 원리를 이용한 장약총’으로 한데 묶어 분류된다. ‘촬영용 총’이라는 것은 ‘용도’일 뿐, 안전장치 하나를 제외한 모든 부품이 실제 총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앞서의 무기와 다른 종류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엄격한 무기 수입 절차도 달라진다. 현행 총기 관리에 관한 법은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안법)’이다. 기존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총단법)’이 개정돼 지난 7일부터 시행됐다. 기존의 총단법과 개정된 총안법을 보면, 모두 ‘총기의 수입은 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권총, 소총, 기관총 등 총기의 경우엔 허가 권한의 위임조차 불가능하다. 경찰청장의 무기 수입 허가 절차는 신청부터 세관 통과까지 까다롭게 진행되며, 관리·사용 등에 있어서도 위치정보 제공 등 엄격한 기준이 정해져있다.
이후 실제 총들이 지방청장의 허가를 받는 ‘촬영용 총’으로 구분돼 국내에 들어오면서 수입, 관리 등의 절차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총이지만 ‘촬영용’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가짜 총’이라는 인식이 생겨 관리가 허술해졌다고 한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서류상으로는 무기들이 세관을 통과한 후 지정된 경비업체 입회하에 총기를 관리할 파출소까지 운송·영치해야 한다. 그러나 ‘가짜 총’이라는 인식 때문에 경찰이나 경비업체 등이 동행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1년엔 한 80대 노인이 경찰특공대가 사용하는 MP5, 실제 전쟁에 사용되는 독일제 저격용 총인 SVD, AK47의 성능이 개선된 최신형 AK57 등 22정을 자신의 차에 싣고 다니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또한 촬영용 총은 보통 3개월이나 6개월로 사용 기간을 지정해서 들여와 사용한 뒤 다시 해외로 반출해야 하는데 해당 관리 시스템도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촬영용 총’ 수입 과정에선 총기에 안전장치가 부착돼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다시 반출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절차도 없다. 세관에서도 ‘촬영용 총’으로 수입됐기 때문에 반출 과정에서 총기에 새겨진 총번만 확인할 뿐이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반출할 때 실제 총 한 정을 빼돌리고 해당 총번이 새겨진 모의 총기를 넣어 반출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