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26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김종필 전 총재(오른쪽)가 박근혜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
주당 2~3회 골프장 나들이가 이어질 만큼 그를 ‘모시겠다’는 옛 지인들도 주변에 넘쳐난다. 이 정도라면 노년의 JP로서는 전혀 외로울 것이 없다. 이따금 기분이 동하거나 호기에 발동이 걸리면 아직도 양주 서너 병쯤은 너끈하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그런 JP가 과연 지난 2월 20일 ‘자민련의 최후’(해단식)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JP의 반응을 놓고 김학원 대표 중심의 ‘(한나라당과의) 통합파’와 심대평 충남지사 주축의 ‘(국민중심당) 창당파’라는 노선이 다른 두 자민련 세력 사이에 옥신각신 억측이 무성하다. 해석 차이마저도 JP의 남은 유산쯤으로 서로 우기는 듯하다.
김 대표의 자민련이 한나라당과 흡수통합을 선언한 이튿날 국민중심당 심대평 공동대표는 곧바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외형은 지방자치 맏형 자격의 위치에 선 심 지사가 때마침 ‘지방정권 부패론’을 들고 나온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맞받아치고 나아가 전국 지방정치인의 기세를 모으기 위한 선전포고의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의 격발장치는 아무래도 ‘한-자 통합’에 닿아 있었다. 심 지사는 ‘한-자 통합’ 문제에 관해 “JP와 충분한 사전논의가 있었다”는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매우 차갑게 쏘아붙였다. “JP께 합당 여부를 묻든 묻지 않았든 간에 정계를 은퇴한 분까지 끌어들여 자기행동을 합리화하려는 무책임하고 구태의연한 발상”이라고 김 대표를 공박했다.
또한 심 지사 자신이 자민련 창당 주역의 한 사람으로 내각제를 중심으로 한 책임정치 구현의 기본이념을 갖고 창당했고 지금도 그 같은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고 말했다. 권력집중은 반드시 부패로 흐르게 마련이고 그래서 분권형 정치를 주장하며 민주주의 기본인 국민과 함께할 수 있는 정치형태를 추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심 지사는 이어 “창당 주역으로서 책임도 있겠지만 그간 당 운영을 해온 사람들의 책임도 크다”며 “한-자 통합이 과연 일개인의 정치적 이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말대로 국가를 위한 장고 끝의 선택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반문했다. 또한 한-자 통합이 국민중심당의 충청권 지지기반 확산을 차단하고 말살하려는 정치술수라며 신국환 공동대표와 함께 흥분과 결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국민들로부터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확실히 심판 받을 것이라고까지 일갈했다.
추측컨대 ‘한-자 통합’에 대한 JP의 입장은 사촌처제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관계를 감안하더라도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JP의 평소 성품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하라 말라’ 강권할 리 만무하다는 것이 가까운 주변사람들의 대체적인 중론이다. 그보다도 국민중심당 창당을 놓고 심 지사와 청구동 관계가 썩 매끄럽지 못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발기인대회 등 창당 전후 행사에 JP의 참석과 초청 여부를 놓고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모습이 적잖게 노출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창당 초청장이 행사 당일 청구동에 전달됐고 이를 들고 직접 찾아온 심·신 두 공동대표가 “점심이라도 대접을 하겠다”는 JP의 성의마저 뿌리친 것이 충청지역 유력 일간지에 1면 머리기사로 실리면서 갈등 양상이 더욱 표면화됐다. 앞서 JP는 김학원 대표의 자민련 세력과 심 지사의 신당추진 세력 사이에 통합신당 추진을 적극 주선하고 나서는 등 범충청권 정치의 통합화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직접 충청지역을 돌며 지지를 호소해 보겠다고 자처까지 하고 나선 몸이었다.
그럼에도 창당인사와 신년하례차 국가지도층 원로인사를 찾아 나선 두 공동대표의 일정이 또다시 말썽이 됐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3김’ 중 가장 늦은 예방일정이 JP 주변으로부터 섭섭함을 샀고 언론의 구설수에 올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두 공동대표는 ‘머피의 법칙’과 같이 꼬여만 가는 청구동과의 관계해소를 위해 내주쯤 골프회동을 서둘러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실기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한-자 통합’ 선언이 발표되기 직전인 지난주 말 JP와 김학원 대표, 이한동 전 총재, 조희욱 당 재정위원장 등이 골프회동을 가진 상황이다. 이 자리에서 자민련의 진로 문제에 관한 논의나 설명을 모두 끝낸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이에 앞서 그 전 주에 JP는 장충동 S호텔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초청 만찬을 갖고 자민련 및 김 대표의 거취문제에 대한 큰 가닥을 잡았던 것으로 한 측근은 전했다. 이 문제에 대해 박 대표 쪽이 보다 적극적인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대권행보를 향해 갈 길이 먼 박 대표의 입장에서 당연한 조치로 보인다.
남은 관심은 향후 JP의 움직임이다. 그렇다고 무대를 떠난 그가 당장 모종의 변화를 몰고올 것이란 기대는 아직 무리다. 늦어도 5월 지방선거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하게 될지 제한적이나마 충청권에 미칠 영향력에 관심이 쏠린다. 또한 그의 구체적인 정치행보가 되레 악수로 작용할 소지는 없을지 등의 다각적인 상황 고려가 따를 수밖에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국가적 명분을 들어 차기 대선에서 미약하나마 특정한 입장을 취하리란 관측이다. 현 정부 들어 극한 이념적 혼돈상황에서 보수본류를 자칭했던 노정치인으로서 입장을 밝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 역시 ‘충청권 결집의 호루라기’라면 양상은 사뭇 다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통적인 호남기반이 작동되는 한 충청권에 대한 JP의 개입 개연성은 높아 보인다.
박 대표가 서둘러 JP 접촉에 나선 것이나 JP가 이처럼 박 대표의 대권가도에 포석을 깔아주고 나선 것은 모두 충청권의 정치적 향배 때문이다. 충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에 걸쳐 대권에 실패한 이회창 전 총재의 전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충청권 문제의 큰 줄기를 미리부터 정리하겠다는 계산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JP를 지렛대로 이회창 복귀 가능성을 차단하는 동시에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충청권과 대립관계에 놓인 이명박 서울시장과의 레이스에서 선점효과도 겨냥했을 법하다.
JP와 박 대표의 관계는 이처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화학적 개념 이상의 것이다. 때문에 정치적 관계로 발전될 공산이 그만큼 높다는 것도 JP와 청구동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전하는 말이다.
김충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