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상과 수술, 재활로 이어지는 지리한 좌절의 시간을 견뎌내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김세진은 “당분간 ‘한물 간 선수’라는 소리 안 듣게 돼서 기분 좋은데요”라며 소감을 말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지난 1월16일은 94년 이후 줄곧 배구계의 ‘월드 스타’로 자리매김하며 대표적인 ‘오빠부대’를 이끌어 온 김세진(30·삼성화재)과 ‘취중토크’가 약속된 날이었다.
배구 2004V투어 인천대회를 눈앞에 두고 있던 상황이라 다른 때처럼 허리띠 풀어놓고 마음 편히 마실 수는 없었지만 숙소 부근의 삼겹살집에서 소주 한두 잔 걸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곱씹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이날의 술자리는 ‘스타 운동선수 김세진’보다 ‘아픔과 절망에서 빠져나온 남자 김세진’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제공했다. 추락을 모르고 비상만 하던 ‘월드스타’가 부상과 수술, 재활로 이어지는 지리한 시간 싸움의 터널을 뚫고 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엔 남다른 사연이 숨어 있었다.
“요즘 갑자기 뜨네요. 인터뷰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 이미 끝난 선수인줄 알았다가 다시 뛰어다니니까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소감이요? 당분간 ‘한물 간 선수’라는 소리 안 듣게 돼서 기분 좋은데요.”
오른쪽 무릎 부상과 수술, 재활로 보낸 2년여의 세월 동안 코트에서 자취를 감췄던 김세진은 지난 1월11일 끝난 배구 2004V투어 목포대회에서 MVP를 거머쥐며 요즘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물론 그 자신조차 재기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을 때 ‘아버지’ 신치용 감독의 무서운 집념과 변함없는 신뢰는 새로운 ‘인생의 방정식’을 세울 수 있었던 단단한 힘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 온 건 감독님 덕분이에요. 흔들리는 제자를 위해 갖은 ‘회유책’을 펼치시며 코스 이탈을 막아주셨거든요. 정말 좌절 많이 했었어요. 이름값이나 자존심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생각도 수차례 했었죠. 어떤 사람은 후배 장병철한테 김세진이 나이 들어서 밀려났다고 얘기해요. 하지만 제가 나이 먹어서가 아니라 병철이 실력이 월등해서 제 자리를 차지한 거예요.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건 순리예요. 아무리 애써도 막을 수 없는 흐름과 같죠.”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마구 헤매고 있을 때 혜성같이 나타난 소속팀의 후배 장병철은 ‘붙박이’ 주전 선수로 영원할 줄 알았던 대선배 김세진을 제치고 승승장구하며 그를 강하게 자극했다. ‘주전’과 ‘후보’가 자리바꿈을 하는 ‘현실’을 김세진은 처음에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밀려난다는 생각에 깨끗이 자리를 내주고 은퇴 수순을 밟아가려다가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부터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 목포 투어 때 받은 MVP상은 그동안 받았던 어떤 상보다도 값진 의미와 용기를 전해준 결코 잊지 못할 상입니다.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져서 상을 차지하긴 했지만 솔직히 지금도 여전히 불안한 상태예요. 당장 내일 또다시 다운돼서 코트에 서지 못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설령 그런 위기가 닥친다고 해도 좌절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이젠 무서울 게 없거든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여자보다 남자 친구를 더 좋아했어요. 지금의 아내랑 한창 데이트할 때도 친구가 호출하면 아내를 들여보내고 친구를 만나 밤새 술 마시고 놀았죠. 부킹으로 우리가 있는 룸에 들어온 여자도 본체만체했어요. 어쩔 수 없이 인사를 나누긴 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에 빠져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곤 했으니까요.”
친구가 김세진의 인생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절대 존재’였다면 술은 인생의 깊이를 알게 한 ‘보조 재료’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시기 시작한 술은 김세진과 절묘한 궁합을 이뤘다. 삼성화재 입단 후 우승 뒤풀이 때 맥주잔에다 소주를 부어 11잔을 스트레이트로 마셨다가 이틀 동안 의식을 잃었던 ‘사건’을 제외하고는 술에 취해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휴가 때는 2박3일 동안 마신 적도 있어요. 점심 때 반주로 시작한 술이 저녁과 밤으로 이어지다가 새벽에 멤버가 교체된 후 이른 아침 해장국과 해장술로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 집에 맥주를 사들고 가서 잠시 졸았다가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젊을’ 때 술을 너무 좋아해서 부상을 자주 당한 것 같아요.”
김세진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면 더 이상 취하질 않았다고 한다.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거나 정신을 잃어본 적이 ‘사건’ 이후론 없었다고 하니 그의 주량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시즌 끝나고 만났어야 하는데… 시즌 중이라 술을 막 마실 수도 없고. 술이 여러 잔 들어가면 말도 정말 잘하거든요.”
삼겹살집에서 ‘안주발’만 내세우는 자신이 못내 못마땅한 듯 시즌 중에 ‘취중토크’ 자리를 만든 기자한테 원망 아닌 원망의 소리를 내비치는 김세진이었다. ‘주당’인 그의 입장에선 마지노선인 소주 한두 잔으론 기별도 안 가는 상황이라 코앞에서 신나게 ‘술발’을 자랑하는 기자가 조금은 얄미울 법도 했다.
▲ 삼성화재는 겨울철 배구리그에서 연승을 거듭하며 수년째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벌이고 있다. 숙소 벽에 걸린 97년 우승 사진. | ||
“사회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선배들과 함께 강남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기도 했고 몇몇 뜻이 맞는 사람들과 홈쇼핑회사를 출범시키려다 포기한 적도 있어요. 이름만 빌려주고 법인회사를 운영하려다가 실패한 적도 있고. 하여튼 오지랖이 넓었죠. 하지만 돌아온 게, 손에 쥔 게 없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라고 봐요. 은퇴 후에 겪을 일을 미리 체험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자신은 운동선수로서도 그다지 모범적인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개인운동을 게을리 했고 감독이 시킨다고 무조건 따라하지도 않았다는 것. 감독 입장에선 결코 다루기 쉬운 선수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감독 앞에선 한없는 존경과 신뢰를 나타냈을 뿐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결코 저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감과 자만심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 속에 파묻혀 살았어도 무의식중에서라도 스승에 대한 예의만큼은 철저히 지키려고 했던 것.
“신치용 감독님과는 13년째 인연을 맺어 오고 있어요. 감독님이 항상 강조했던 말씀이 ‘항상 겸손하라’였어요. 입단해서부터 줄곧 그 말을 듣다보니 절로 세뇌가 됐어요. ‘잘난 선수’였을지는 몰라도 ‘건방진 선수’는 되기 싫었거든요. 아마 감독님께 먼저 인정받고 싶었던 게 감독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나타났을 거예요. 아부성 발언은 아니니까 오해 마세요. 감독님과 생활하다보면 절로 머리가 숙여지거든요.”
김세진은 감독한테 아부를 떨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신치용 감독을 ‘아버지’ ‘가족’이라고 칭하는 것도 오랜 인연과 그 인연 속에 녹아 있는 갖가지 사연들이 소속팀 감독과 선수 이상의 관계를 이어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요즘 시합 나갈 때는 ‘당장 내일 은퇴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요. 그러다보니 뭔가를 해보이려고 자꾸 ‘발악’하게 돼요. 이렇게 절실하게 운동했던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배구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하면 너무 상투적으로 들릴까요?”
김세진은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진 인생’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스타라는 그럴듯한 포장 속에 능력 이상의 평가와 대접을 받으며 배구선수 김세진이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팬들의 환호성은 바라지 않아요. 2년 정도 남은 선수 생활 동안 다치지 않고 꾸준히 코트에만 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이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 정말이더라고요.”
인생의 한 굴곡을 이제 막 헤쳐나온 김세진은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한 모습과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언변으로 자신을 보여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매번 삼성화재의 우승을 이끈 일등공신이지만 여전히 우승이 ‘고프고 마르다’는 그한테서 이전에 양주까지 준비해서 ‘취중토크’에 나온 ‘아버지’ 신치용 감독의 얼굴이 자꾸 오버랩됐다.